아직 터지지 않았을뿐…'셀프 폭탄' 시대, 민간시설이 위험하다

최근 "폭탄 터트리겠다" 협박 신고 잇따라
아직까진 허위신고…하지만 매번 출동해야
유튜브 보고 폭탄 만드는 시대…진입장벽↓
다중이용시설 타깃됐지만, 제도는 미비
안전관리조직 없고, 건축사가 총괄담당자
"제도 바꿔 테러위험성 평가·안전관리 필요"

1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진행된 정부서울청사 폭발물 테러 대응 합동훈련에서 경찰특공대, 군부대 폭발물 처리반 등 유관기간이 출동해 폭발물을 처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백화점이나 상가 등을 겨냥한 폭발물 협박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아직까지는 모두 허위 신고로 확인되고 있지만 '양치기 소년'으로 단정 지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온라인 정보만으로 누구나 쉽게 사제 폭탄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인 데다, 현재 주요 타깃이 되고 있는 다중이용시설의 테러예방대책 및 안전관리 역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폭탄 만드는 시대…허위냐 테러냐


지난 17일 경기 수원의 패스트 푸드점에 폭발물이 설치될 것 같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온라인에 "배달이 늦고 직원들이 불친절하다"는 글과 함께 폭탄 테러 의심 글이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경찰 수사 결과 범인은 배달기사였다. 매장 관계자로부터 배달 지연으로 질책 받자 온라인에 글을 작성한 뒤 해당 글을 봤다며 신고까지 한 것. 그러는 사이 패스트 푸드점이 입점해있는 건물에서 400여명이 대피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달 초에는 신세계백화점을 겨냥한 폭파 신고가 잇따랐다. 서울 중구 본점에 이어 경기도와 광주광역시 백화점들을 겨냥한 허위신고가 접수됐다. 그 여파로 이용객들이 대피하고 영업도 일시중단하는 등 피해가 있었다.

얼핏 보기엔 허무맹랑한 신고로 볼 수 있지만 결코 무시하고 넘길 수는 없는 상황이다. 온라인에서 검색되는 정보만으로 비전문가들도 폭탄을 제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9년 경북 상주에서는 고등학생이 집에서 폭탄을 만들었다가 적발됐다. 당시 보호관찰 대상이던 A군을 찾은 보호관찰관은 집 안에서 화약 냄새가 나는 걸 수상히 여기다 폭탄을 발견했다. 경찰 조사에서 A군은 유튜브를 보고 '파이프 폭탄'을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광주광역시에서는 70대 B씨가 부탄가스와 시너를 결합한 폭발성 물건을 터트렸다가 검거됐다. B씨는 한 치과병원 입구에 폭발물이 든 택배상자를 놓고 달아났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부탄가스가 터지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10대부터 70대까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얼마든지 폭발성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상황. 대테러안보연구원 전경훈 연구원은 "현재 온라인 검색만으로도 손쉽게 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허위 신고에 대해선 강력하게 처벌을 해야 한다"며 "처벌뿐 아니라 교육과정에도 테러의 위험성과 대비하는 방법 등도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테러 취약' 다중이용시설…"제도 개선해야"

19일 오후 경주역에서 열린 APEC 대비 및 2025 을지연습에서 참가 인원들이 테러 상황 등에 대한 대처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현재 폭발물 협박 대상에 오르는 다중이용시설이 테러안전관리와 대책 마련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백화점이나 상가 건물 등 민간이 관리하다 보니 △안전관리 인력 부족 △대응장비 미흡 △충격·폭발 방호 취약 등의 문제가 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연구원) 오한길 연구사가 지난해 발표한 '다중이용시설 테러안전관리체계 발전 방안'에도 이런 분석이 담겨 있다.

연구원이 수도권과 부산의 다중이용시설 4곳을 직접 방문해 조사한 결과, 테러 발생 시 총괄 대응이 가능한 안전관리조직이 전무했다. 일부 시설은 안전관리조직을 갖췄지만 대부분 용역업체가 담당하고 있어 유사시 적극적인 대응이 어렵다고 연구원은 지적했다. 테러 의심 사건이 발생해 이용객을 대피시킬 경우 영업손실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져야 해서다.

테러에 대응하거나 시설의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총괄관리자의 자격 역시 대테러에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건축사나 기술사, 7년 이상 산업기사 등 테러와는 무관한 경력이 대부분인 것으로 조사됐다.

공공기관에 비해 폭발이나 충격을 대비한 방호 대비도 취약한 것으로 파악됐다. 상인 조합으로 이뤄진 소규모 다중이용시설의 경우엔 예산 문제로 기본적인 대응장비를 갖추기 어려운 곳들도 있었다.

안전 매뉴얼도 부실했다. 형식적으로 대피 계획을 수립한 곳이 있었고, 테러 안전교육을 화재 교육으로 대체하는 등 전담 교육도 부족했다.

연구원은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수준진단과 안전 컨설팅, 지도점검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차량 돌진 폭발이나 흉기난동 같은 테러를 막기 위한 취약요인 식별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품 반출입을 검색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설비, 외부 시야를 확보하는 방호 디자인으로 설계 등을 제시했다.

큰 틀에서는 제도적 개선을 강조했다. 현행법상 다중이용시설에서 발생하는 테러에 대한 규정이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매뉴얼 등이 부재하다는 것. 테러가 사회재난 범주에 속하지 않다 보니 적정성 평가 등에 허점이 있는 것이다. 이에 재난안전법 등 관련법에도 테러를 포함시켜 보다 큰 폭에서 테러를 관리하고 대응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미국의 경우 정부에서 각 다중이용시설에 최신 테러위협정보를 공유하고, 취약요소가 있으면 개선 요청을 할 수 있다.

연구원은 관련법에 △시설별 테러위험성 평가 실시 △테러안전관리 등을 추가로 보완하는 한편, 테러안전관리 체크리스트를 제공하고 테러이용수단에 대한 교육훈련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