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가 없는 유령 법인을 이용해 대학병원 이사장 일가 등에게 50억 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60대 남성이 재판에 넘겨졌다.
18일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범죄조사부는 의약품 도매업체 대표 A(67)씨와 A씨에게 리베이트를 받은 대학병원 이사장 등 총 8명을 배임 수·증재, 의료법 위반·약사법 위반, 입찰방해,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지난 8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A 씨는 2019~2024년 대학병원 측과 대형 종합병원 이사장 등에게 50억 원가량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A 씨는 실체가 없는 유령 법인을 설립한 뒤 각 병원 이사장 및 그 가족들이 지분을 취득하게 해 배당금을 받게 하거나, 이사장의 가족 등을 직원으로 허위 등재해 급여를 수수하는 등의 방식을 사용했다. 유령법인의 소재지는 A 씨 회사의 창고였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9년부터 6년간 대형 종합병원 이사장 등에게 34억원가량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실체가 없는 유령 법인을 만들어 병원 이사장이나 가족들에게 지분을 취득하게 하고, 배당금을 주거나 허위로 이사장 주변인을 고용해 급여를 주는 등 방식을 사용했다. 법인카드와 법인 명의 골프장 회원권을 사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등 16억원 상당의 추가 리베이트도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령 법인 사무실은 A씨가 대표로 있는 B약품 빌딩 안에 마련돼 서류나 집기를 보관하는 창고로만 사용됐다. 서류상으로는 유령 법인이 의약품을 공급하는 것처럼 위장했지만, 실제 의약품을 관리하고 배송하는 물류 업무는 모두 B약품이 직접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해당 사건을 "의약품 도매상과 병원 간 새로운 유형의 리베이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제약사나 의약품 유통업계가 영업을 뛰면서 병원 등에 현금이나 상품권을 선물하는 등 경제적 이익을 직접 제공했으나, 이번 사례는 처벌을 피하기 위해 유통과정에서 유령 법인을 만들고 이를 앞세워 배당금·급여 등을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줬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 A씨에게 리베이트를 받은 대학병원 이사장 C(70)씨는 또 다른 도매상들로부터도 약 12억 5천만 원에 달하는 리베이트를 수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 대가로 도매상들과 담합해 이들이 의약품 공급업체로 낙찰되도록 입찰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 구매관리팀이 낙찰업체, 들러리업체, 입찰가, 낙찰가 등을 미리 정한 입찰 전 예상 시나리오를 짜고, 거래 업체들은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입찰에 참여해 리베이트를 제공한 업체가 결국 낙찰되는 식이다. 검찰은 "앞으로도 의료 서비스 품질과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하는 리베이트 등 의료 범죄에 엄정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