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정부가 '산업재해 근절'을 강조하며 건설사들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연일 높이고 있다. 건설업계는 현장 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정부가 규제와 더불어 구조적 문제점 개선에도 힘을 쏟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통령 면허취소 언급에 장관의 경제적 제재 경고까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직업능력심사평가원에서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건설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2025년 기준 국내 시공순위 20대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모였다.김 장관은 "CEO부터 안전을 세밀하게 챙겨야 한다"며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사용 가능한 안전예산의 규모를 늘리고 전 임원들이 안전을 최우선시 하는 풍토를 조성해야한다"고 말했다.이어 "안전 수칙 위반이나 중대재해 발생 시 다양한 경제적 제재 방식을 정부에서 논의 중"이라며 "이러한 조치들이 단순한 기업 옥죄기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계속되는 건설현장 사고의 원인을 "밑단으로 갈수록 돈을 줄어들고 위험은 그대로 전가되는" 불법 하도급 시스템에 돌렸다. 김 장관은 "안전을 소홀히 해서 아낄 수 있는 비용보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손해가 더 큰 시스템을 만들어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데 돈을 아끼거나, 안전보다 납품기한을 우선시하는 관행을 바로 잡겠다"고 강조했다.
노동부 장관의 '엄포'는 충분히 예상됐던 바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 들어 인명사고가 빈번한 포스코이앤씨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비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대통령의 지적 뒤에도 다시 사고가 발생하자 이번에는 '면허취소'까지 언급해 건설업계는 패닉에 빠졌다. 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지난 9일에는 DL건설 사고발생 보고를 받고 "앞으로 모든 산재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르게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최우선 관심이 산업재해, 특히 건설현장 사고에 맞춰지자 정부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권창준 고용부 차관은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통한 과태료, 과징금 부과 근거를 마련하고 사망사고 재발 시 건설업 등록 말소 및 공공입찰 제한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시공사 제재 몰두하지만…구조적 문제는 따로 있다
건설업계는 냉가슴만 앓고 있는 형국이다. 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당연히 동의하지만 정부가 모든 역량을 건설사 제재에만 쏟고 있다는 불만도 감지된다. 발주·감리·설계·원청·하청 단계로 이뤄지는 건설업 특성상 이들 모두가 안전에 책임을 져야 실효성이 생기는데, 시공사만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발주하는 공공 부문 사업이 대표적이다. 예비타당성조사에서부터 공사비를 줄이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최저가 입찰의 결과, 비슷한 규모 사업이라도 민간보다 큰 격차가 나는 공사비로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공기도 촉박해지고 정상적인 안전예산 확보도 어렵다. 김영훈 장관이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데 돈을 아끼거나, 안전보다 납품기한을 우선시하는 관행을 바로 잡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그 관행을 부추기는 주체중 하나가 정부였던 셈이다.
영국의 건설설계관리규제법(CDM, Construction Design and Management)은 이런 모순 해결을 시도한 좋은 예다. 건설 현장에서의 안전, 보건, 복지 강화를 목적으로 제정된 CDM 규정은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발주·설계·시공·하도급업체·근로자 모두가 안전과 위험 관리에 명확한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특히 발주자(Client)의 경우 프로젝트의 안전 책임을 최종적으로 지는 주체로 규정한다. 발주자에게도 안전관리를 다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안전예산 확보에 적극적이다. 2015년에는 안전 책임을 시공사에게 떠넘길 수 없도록 발주자의 책임을 더욱 강화시켰다. 영국의 CDM 규정을 한국에 적용하면 정부도 안전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불법 하도급 시스템의 근본적 해결에도 정부 차원의 역할이 필요하다. 제조라인이 깔리고 생산을 시작하면 큰 변화가 없는 제조업과 달리 건설업은 공사 시작 뒤 3~4년이면 현장이 없어지는 '프로젝트' 성격이 강하다. 다른 업종에 비해 유달리 비정규직 비중이 큰 이유다.
여기에 특수 공정에 특화된 '십장' 문화가 고착화 되면서 대형 건설업체 조차 십장들을 통제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안전한 작업을 위해 충분한 공사기간을 담보할 수 있도록 '작업개시서'를 받아야만 작업을 시작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현장을 맡아야 수익이 극대화 되는 십장들은 작업개시서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미리 작업해 놓고 다른 현장에 가는 등 '두탕'을 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한다.
수천 세대 아파트 단지 공사 같은 경우 이런 십장들의 일탈을 모두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 제도권 밖에서 활동하는 십장들을 제도권을 안으로 들이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