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은 원수가 아닙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광복절 경축사를 하며 현장에서 추가한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또 "신뢰를 회복하고 단절된 대화를 복원하는 길에 북측이 화답하길 기대합니다"라는 배포 원문에 "인내하고"를 더 넣어서 연설을 했다.
'남과 북은 원수가 아니고 인내하겠다'는 발언에는 이 대통령이 추구하는 대북정책과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가 잘 드러나 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에 대해 '적대적 두 국가'를 강조하지만 이 대통령은 남북이 '적대적인 원수'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남측에서 할 수 있는 조치를 먼저 하고 북측의 호응을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남과 북은 원수가 아니라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 관계라고 정의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남북기본합의서에 담긴 이 정신은 6.15 공동선언, 10.4 선언, 판문점 선언, 9.19 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남북 간 합의를 관통"하고 있으며, 따라서 "정부는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가능한 사안은 바로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北 체제존중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 않해"
이 대통령은 특히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가 남북관계의 대전제로서 이전 정부와 달리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고 '일체의 적대행위'를 하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이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 단계적으로 복원하는 한편 '공리공영·유무상통 원칙'에 따라 남북의 교류협력 기반을 회복하고 공동성장의 여건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평화공존'을 위해 북측의 호응 하에 9.19 군사합의를 복원해나가고 '한반도 공동성장'을 위해 남북 교류협력 복원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北 무시전략에도 이 대통령 실질적 조치 지속 추진 방침
이 대통령은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예전 정부처럼 북한에 제시하는 특별한 방안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현 정부가 출범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요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먼 미래를 말하기에 앞서 지금 당장 신뢰 회복과 대화 복원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라는 이 대통령의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취임 직후부터 전단 살포 중단,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의 조치를 취했다"며 "앞으로도 정부는 실질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를 일관되게 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동생 김여정 부부장이 전날 정부의 각종 긴장완화 조치들을 평가절하면서 비난하는 담화를 냈고, 김 위원장도 15일 북한 매체에 보도된 '조국해방의 날', 즉 광복절 첫 연설에서 남측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는 이전의 '무시전략'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에 개의치않고 이 대통령은 '실질적 조치들'의 일관되고도 인내심 있는 추진 방침을 밝히며 북측의 호응을 촉구한 셈이다.
"비핵화 매우 어려운 과제지만 실마리 찾을 것"
이 대통령이 "평화로운 한반도는 핵 없는 한반도"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도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비핵화는 단기에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매우 어려운 과제임을 인정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남북, 미북 대화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통해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면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대를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가 매우 어려운 과제이기는 하지만 '평화로운 한반도'를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에 남북, 북미대화는 물론 국제사회 협력을 통해 단계적으로 '비핵화의 실마리'를 모색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북한은 비핵화 불가론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 대목에 대한 반발도 예상된다. 김여정 부부장은 전날 담화에서 한국이 "잠꼬대같은 '비핵화'를 염불처럼 외우며 우리 국가의 헌법을 정면 부정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싸울 필요가 없는, 즉 평화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
이 대통령은 "분단으로 인해 지속된 남북 대결은 우리 삶을 위협하고, 경제발전을 제약하고, 나라의 미래에 심각한 장애"가 된다며 평화야말로 "안전한 일상의 기본이고, 민주주의의 토대이며, 경제 발전의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일관되고도 인내심 있는 대북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내부의 통합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평화의 중요성과 경제적 이익을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환기시킨 것으로 관측된다.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보다,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 즉 평화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아니겠습니까"라는 이 대통령의 반문에는 이런 인식이 반영돼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