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에 '공포 마케팅' 열 올리는 경영계, 사실은…

[공포 너머 '뉴노멀', 노란봉투법③]국회·정부 오가며 '노란봉투법 반대' 열 올리는 경총
"수백 개 노조가 교섭 요구하며 경영권 침해하면 원청 기업들은 해외로 이전할 것"이라지만
실제 법 내용·취지와 동떨어진 주장들…전문가들 "과도한 우려" 지적
이제 와서 '사회적 대화' 하자는 경영계…"노동자들이 교섭 호소하던 20여 년 뭐했나…'교섭'으로 대화하자"

연합뉴스
▶ 글 싣는 순서
①"전혀 새로운 법 아니다"…노란봉투법이 이미 늦은 이유
②노란봉투법 세계 상식선…"없으면? 통상 마찰 우려"
③노란봉투법에 '공포 마케팅' 열 올리는 경영계, 사실은…
(계속)

노란봉투법(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통과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경영계가 막판 여론 뒤집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경영계가 노란봉투법의 '부작용'이라며 극단적으로 과장된 주장을 펼친다고 반박한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지난 12일 여야 국회의원 298명 전원에게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는 노란봉투법에 대한 경영계의 '우려'가 담겼다.

손 회장은 서한에서 "원청기업들을 상대로 쟁의행위가 상시적으로 발생하여 원·하청 간 산업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라며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손 회장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비공개 조찬 회동을 갖고 노란봉투법 수정을 요구했다고 전해졌다. 앞서 지난달 25일 안호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만나고, 31일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비슷한 주장을 펼쳤던 터다.

당시 손 회장은 "사용자의 고도의 경영상 판단사항까지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어 사용자의 경영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원청 기업은 협력업체와 거래를 단절하거나 해외로 사업체를 이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백 개 노조가 교섭 요구한다? 애초 하청 노동자에 '개입'하지 말아야

하지만 "수십, 수백 개 하청업체 노조가 상시적으로 교섭을 요구"할 것이라는 주장은 다소 과장된 얘기다. 원청이 '모든 관련 하청업체'와 교섭할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라, 개정안에 적힌대로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경우에만 교섭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판례 등을 살펴보면 실제 적용될 요건은 더욱 엄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위와 같은 조건을 만족하더라도, 법원은 각 교섭 의제마다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 여부를 살펴보고, 꼭 원청과의 단체교섭을 거쳐야만 하는지 고려하라고 판단했다. 예컨데 지난해 CJ대한통운에게 택배노조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갖춘 여섯 개 의제를 놓고 교섭에 나서라고 한 판결이 대표적이다.

하청노동자가 원청사업주의 업무에 필수적·구조적으로 편입되거나, 경제적·조직적으로 종속된 상태인지 여부도 고려 대상이다. 그동안 법원에서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된 사례들은 원청기업이 자신의 사업 중 일부를 도급하면서 하청노동자들을 마치 원청 소속 노동자인 것처럼 노동조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경우들 뿐이다. 또 하청업체는 사실상 원청기업에만 의존해 독자적인 운영이 어려워서,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개선할 수 없던 사례들이다.

하청업체와 아무리 교섭해도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으니 '진짜 사장'인 원청과 교섭하라는 것이 노란봉투법이다. 애초 원청기업이 하청업체와 대등한 계약을 맺고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간섭하지 않는다면, 단체교섭에 나설 이유도, 노란봉투법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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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상 판단도 노동쟁의 대상? 노동자 보호 위한 최소한의 장치…오히려 합리적 교섭 이끌어


경영자의 투자 결정·사업장 이전·구조조정 등을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시키면, 노조 눈치를 보며 경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법 개정 취지와 거리가 있다.

뒤집어 말하면 그동안 사측이 정리해고, 인력감축을 벌여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여도, 이를 막으려 하면 '불법파업'으로 낙인찍히곤 했다. 노동자들로서는 임금, 노동시간보다 더 중요한 고용 자체를 보호할 수단을 빼앗겨왔던 셈이다.

노란봉투법은 이처럼 노동조건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 노동쟁의 대상으로 허용한다는 것일 뿐, 모든 투자 결정, 공장 증설 등까지 노동쟁의 대상으로 포함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노사가 서로 불법을 저지른다고 비난하며 극단적인 대립을 벌여왔던 과거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교섭을 택하도록 돕는다고도 볼 수 있다.

노동자 불법은 손해배상 청구 못한다? 보호 범위를 확대했을 뿐, 여전히 불법 행위에는 책임 뒤따라

노조·노동자가 심각한 불법을 저질러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노란봉투법은 정당한 노조활동의 보호범위를 넓힐 뿐, 이를 벗어나는 불법행위는 여전히 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 다만 쟁의행위에 단순 가담한 개별 조합원들까지 사실상 개인이 갚을 수 없는 거액의 손배 책임을 떠안지 않도록, 전후 정황을 고려해 제한된 비율만큼 배상하도록 일종의 안전장치를 둔 것이다.

그럼에도 경영계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노사관계 질서 전반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원청이 고용하지 않은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통제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질서, 자체 생존이 불가능한 영세 하청업체가 원청의 꼭두각시로 운영되는 질서,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질서, 노동자가 항의하면 '불법' 낙인을 찍고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는, 개별 노동자에게 '노조만 탈퇴하면 손배 대상에서 빼주겠다'고 회유하는 질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에 지금 노란봉투법이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둔 것이다.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귀천 교수는 "원하청 격차 등을 통해서 많은 이윤을 획득하며 사업을 영위해왔는데, 그동안 구축했던 격차를 바꿔야 한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2000년대 초반부터 20여 년 이상 노동 유연화, 외주화를 통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진행됐는데, 이제 노동계는 한계에 도달했고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론 경영계로서는 기존 질서가 흔들리는 것 자체를 불확실성으로 보고 꺼릴 수 있다"면서도 "어차피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지 않는다고 해도 관련 법적 분쟁이 없어지지 않는다. 벌써부터 과도하게 걱정하기보다는 법 통과 이후를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춘석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거수 표결을 하고 있다. 이날 법사위는 윤석열 정부 당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불발된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을 여당(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의결했다. 윤창원 기자

사회적 대화 요구하는 경영계, 지난 20여 년 동안 뭐했나…"이제 '교섭'으로 대화할 때"

경영계가 문제 삼는 또 다른 지점은 노란봉투법에 대한 '절차' 문제다. 사용자의 범위를 바꾸는 중차대한 법 개정 문제를 사회적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경총은 노란봉투법의 '대안'을 마련했다며 안호영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에게 관련 문건을 전달했다. 손 회장은 "사용자가 너무 과다하게 손해배상액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그 상한을 시행령에서 별도로 정하고, 근로자들의 생계 유지를 위해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의 경우에도 급여는 압류하지 못하도록"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노란봉투법을 제정하라는 목소리는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두산중공업 고(故) 배달호 열사, 한진중공업 고(故) 김주익 열사가 거액의 손해배상과 임금 가압류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손배소'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량해고에 맞서 파업했다가 약 47억 원의 손해배상을 떠안게 된 쌍용차 노동자들을 도우려던 시민들의 모금 운동에서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이후 수많은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하고, 길거리 천막과 송전탑, 굴뚝, 공장 옥상, 옥외광고판 등에서 노숙·고공농성을 벌이고, 곡기를 끊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던 지난 20여 년 동안, 경영계는 줄곧 '노란봉투법 반대' 입장만 고수했다. 이에 대해 경총 관계자는 "애초 노란봉투법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당연히 경영계가 대화를 요청할 이유가 없지 않았겠느냐"며 "지금 여당이 지나치게 법 통과를 서두르기 때문에 차근차근 대화로 풀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는 그동안 수차례 공개토론, 사회적 대화를 제안할 때에는 응하지 않다가, 올해 법 통과를 눈앞에 두자 서둘러 사회적 대화를 핑계로 노란봉투법의 발목을 잡으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다못해 지난 윤석열 정부 시절 노란봉투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에도 '대화'의 기회는 충분히 있었는데, 이제 와서 하루아침에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반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 손에손을잡고) 윤지선 활동가는 "2003년 두 열사께서 돌아가신 후 사회적 대화 물꼬가 트였지만, 당시 경총의 방해로 손배 청구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고, 가압류 문제도 최저생계비를 보전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지적하고, "지금 경영계가 국회의원, 장관을 언제든 만나 불평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경영계와 노동자 간 힘의 불균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의 노란봉투법 개정안조차 헌법, 국제규범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고, 경총 의견을 반영해 윤석열 정부 시절 논의했던 개정안보다 크게 양보한 결과"라며 "그런데도 경영계 의견을 더 들어달라고 욕심을 부리는 이 순간, 노동자들은 교섭 한 번 해보려 회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제 경영계가 '교섭'을 통해 노동자들과 대화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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