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퇴직연금 가상자산 투자를 허용하면서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이 본격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차기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가상자산 규제 완화 기조를 이어갈지가 관건으로 분석된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DC형(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의 가상자산 투자를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대장인 비트코인의 가격은 한때 코인베이스 기준 역대 최고가에 근접한 12만달러를 돌파했고, 업비트에서는 1억 6700만원까지 오르며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전체 12조 2천억달러 규모의 미국 퇴직연금 시장은 약 9천만명이 가입한 '401(k)'가 핵심이다. 규모만 8조 7천만달러(약 1경 1075조원)에 달하는 401(k)는 전체의 85%가 주식과 채권을 담고 있다.
퇴직연금 구조상 당장 가상자산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가지는 않더라도 점진적인 투자 확대가 나타나고, 가상자산의 안정화에 기여할 전망이다.
DC형 퇴직연금은 노동자가 소득 일부를 적립하면 같은 금액을 고용주가 지급하는 형태다. 고용주가 투자 방안을 제시하면 노동자가 선택한 옵션으로 운용된다.
미래에셋증권 김성근 연구원은 "지금까지 미국 노동부의 다소 보수적인 권고로 고용자는 투자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명확하고 수익이 안정적인 옵션만 고집했다"면서 "노동부가 현재 '매우 위험'으로 된 권고 수위를 낮추고 SEC(증권거래위원회)가 연금형 가상자산 상품 출시 관련 규정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고용주도 가상자산 옵션을 보다 부담 없이 제시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삼성증권 홍진현 연구원은 "이번 정책 변화는 미국을 중심으로 가상자산 시장의 제도권 편입 흐름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중장기적으로 자금 유입 기반 확대와 시장 구조 안정화 가능성을 높인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정책은 '가상자산 대통령'을 자처한 트럼프 행정부의 일관된 행보다.
백악관은 지난달 30일 보고서에서 가상자산 산업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의 '규제 과잉'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혁신 친화적'으로 전환했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으로 스테이블코인 관련 '지니어스법(Genius Act)' 처리와 가상자산의 전략 비축 등을 성과로 거론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개인이 중개인 없이 가상자산으로 보관하고 개인 간 거래할 수 있도록 가상자산 사업자에 은행비밀법(BSA) 의무를 적용해선 안 된다고 권고하는 등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는 청사진도 공개했다.
다만 은행비밀법을 적용하지 않으면 가상자산을 자금세탁과 테러 등에 이용할 수 있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당국이 업계에 관련 의무 및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는 권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가상자산을 불법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남아 있고, 규제 완화 혜택이 개인 투자자가 아닌 법인에 집중됐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트럼프 대통령 이후 행정부가 가상자산에 친화적인 정책을 유지할지도 미지수다.
국제금융센터 강봉주 부전문위원은 "정권에 관계없이 정책이 유지되려면 가상자산의 불법적 활용에 대한 우려가 불식되고, 경제 전체에 상당한 긍정적 파급 효과가 지속돼야 한다"면서 "업계에 대한 자금세탁 방지 의무 등을 완화할 경우 불법 활용자의 신원 파악이 곤란할 수 있고, 경제적 사회적 파급 효과가 어떻게 발생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이 부족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