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은 인간의 본능이다. 생존을 위해 포도당을 갈망해온 인류는 꿀과 식물의 수액에서 시작해 기원전 500년경 인도에서 설탕 정제 기술을 개발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그러나 '설탕 전쟁'이 보여주는 설탕의 역사는 결코 달콤함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
저자는 30여 년간 세계 각지를 경험하며 쌓아온 역사적 감수성과 방대한 자료 조사로, 설탕을 둘러싼 제국주의 팽창과 식민 착취, 대규모 인구 이동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했다.
영국의 차 문화와 설탕의 결합, 카리브해 플랜테이션에서의 노예 노동, 브라질·쿠바·아이티 등지의 식민지 역사까지, 설탕 한 스푼 속에 숨겨진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가 드러난다.
책은 설탕 산업이 어떻게 유럽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 한가운데 놓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주민과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어떤 잔혹한 착취를 당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준다.
포르투갈의 마데이라·브라질, 영국의 자메이카·바베이도스, 프랑스의 생도맹그가 '설탕 기지'로 변모했고, 19세기에는 유럽 설탕 수요의 90%를 카리브해가 공급했다는 통계는 그 규모를 실감케 한다.
저자는 또 설탕이 한국 근현대사와 맞닿은 지점에도 주목한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이 한인 최초의 공식 이민지였다는 사실, 그곳에서의 열악한 노동과 차별, 그리고 장인환·전명운 같은 이민 노동자 출신 청년들이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핀 역사가 이어진다.
설탕의 달콤함 뒤에는 제국주의의 탐욕과 식민지민의 눈물이 교차하고, 그 위에 한민족의 발자취가 또렷하게 남아 있음을 일깨운다.
'향신료 전쟁'의 후속작인 이번 책은 설탕을 매개로 세계사와 한국사를 나란히 펼쳐 보이며,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한 조각 단맛에 숨은 거대한 역사의 이면을 발굴해낸다.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