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상영이 끝난 후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에는 한 편의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참여한 여러 사람의 이름이 담겨 있습니다. '엔딩크레딧'에서는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기까지 달려온 다양한 영화인들과 영화에 숨겨진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살아 있는 시체인 좀비라고 생각하면 공포스럽지만, 묘하게 사랑스러운 좀비가 있다. '좀비'와 '사랑스럽다'라는 이질적인 두 단어를 아무런 거부 반응 없이 조합시킨 건 바로 배우 최유리의 힘이다.
2009년생인 최유리는 지난 2014년 MBC 어린이 프로그램 '동물가족 체험기 와일드 패밀리'로 데뷔한 후 드라마 '아이가 다섯' '마더' '프리스트' '하자있는 인간들' '이태원 클라쓰', 영화 '비밀' '원더풀 고스트' '외계+인 1, 2부' '검은 수녀들'을 통해 연기 내공을 쌓아온 베테랑 배우다.
필감성 감독은 최유리를 두고 "모두를 무장 해제시키는 귀여움과 묘한 슬픔이 공존하는 얼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유리는 귀엽고 사랑스러움과 동시에 아련한 기억과 슬픔을 품은 좀비가 되어버린 딸 수아를 완성했다. 그의 호연은 아빠 정환 역의 조정석의 열연과 어우러지며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고 있다.
조정석은 현장에서 부녀 호흡을 맞춘 최유리를 "어른스러운 배우"였다고 말했다. '좀비딸' 개봉 이후 서울 양천구 CBS노컷뉴스 사옥에서 만난 최유리는 조정석의 말처럼 어른스러우면서도 동시에 16살 특유의 사랑스러움을 동시에 지닌 배우였다.
어린 누군가에서 수아로 오롯이 선 최유리
▷ 어린 이안('외계+인'), 어린 은심('소풍'), 어린 미카엘라의 룸메이트('검은 수녀들') 등 '어린 누구'가 아닌 '수아'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좀 더 소감이 남다르지 않을까 싶다.
배우 최유리(이하 최유리)> '좀비딸'이 첫 주연작이다 보니까 물론 책임감도 있지만, 오히려 즐거운 마음이 더 컸다. 현장에서 느꼈던 즐거움과 기쁜 마음, 해피 에너지가 영화를 보신 관객분들께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 '좀비딸' 원작 웹툰의 팬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어떤 점이 인상 깊은 웹툰이었나?
최유리> 워낙에 재밌는 걸 좋아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다양한 웹툰을 보는 건 아니지만, 몇 안 되게 꾸준하게 보는 웹툰 중 하나가 '좀비딸'이었다. 특유의 익살스럽고 유쾌한 분위기가 정말 매력적이어서 자연스럽게 '좀비딸'에 스며들었다. 원작 웹툰 자체가 분량이 많다 보니 처음에는 어떻게 영화에 담겼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됐는데, 원작 특유의 분위기는 그대로 담겨 있으면서도 영화만의 매력 역시 잘 담고 있어서 원작 팬으로서 만족했다.
▷ 시나리오를 읽고 느낀 수아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리고 배우로서 수아라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어떤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최유리> 수아는 나와 비슷하게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10대 소녀다. 그런 만큼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소녀의 모습을 그려내려 했다. 동시에 웹툰 속 수아의 사랑스러움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 부분에 가장 많이 집중했다. 그리고 보통 좀비를 떠올리면 대개는 공포 분위기를 많이 떠올리는데, 영화 속 수아는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있는 만큼 사랑스러운 매력도 있다. 좀비 수아의 인간성이 남아있다는 부분에서 제일 흥미를 느꼈다.
▷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좀비가 되어 버린 딸'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사춘기가 되어 버린 딸'이라는 말의 만화적, 영화적 상상력이 극대화된 표현일 수 있겠다는 점이었다. 극적인 표현을 하나씩 벗겨보면 그 안에 남는 건 사춘기 딸과 아빠의 이야기다. 그런 지점에서 좀비딸 수아에게 이입한 지점도 있었지 않을까 싶다.
최유리> 맞다. 수아가 인간 시절일 때는 아빠에서 괜히 틱틱 대고 까칠하게 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사춘기를 겪는 입장에서 수아에게 공감도 됐다. 결론적으로만 보자면, 변해버린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관객분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라 생각했다. 이런 질문을 떠올리며 촬영에 임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수아에게 몰입이 잘 됐던 거 같다.
▷ 좀비가 되기 위해 감독님과 함께 촬영 들어가기 4개월 전부터 열심히 준비했다고 들었다.
최유리> 워낙에 몸을 잘 못 쓰는 편이기도 하고, 좀비 캐릭터는 처음이다 보니 나에겐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런데 워낙 새로운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서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 여타 좀비물과 다르게 공격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가족애를 주제로 하는 만큼 좀비 수아한테도 모르게 귀여운 모습이 묻어나오면 좋겠다고 감독님이 말씀하셨다. 나도 감독님 말씀에 동의해서 좀비 특유의 무섭지만 사랑스러운 느낌을 살리는 연습을 많이 했다.
▷ 보아의 'No.1' 댄스 신이 인상적이었다. 아빠 정환 역의 조정석 못지않은 춤솜씨였다.
최유리> 몸치라서 좀비 연기보다 춤이 더 어려웠다.(웃음) 수업 첫날 내가 춤추는 걸 보고 안무가 선생님과 감독님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그 이후 꾸준하게 연습하고 노력하면서 나아졌고, 결과적으로는 두 분의 손을 거치면서 몸치 정도는 아닌 수준으로 추게 됐다. 영화에서도 뚝딱거리는 모습이 덜 담겨서 다행이라 생각한다.(웃음)
▷ 좀비가 됐지만 흐릿하나마 인간으로서의 기억을 갖고, 또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상대를 마주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러한 미묘한 감정들을 드러나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은근하게 전달하는 연기가 어렵진 않았을까 싶다.
최유리> 어느 날 감독님께서 좀비 느낌이 들되 동물의 움직임을 참고하면 좋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서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반려동물 친구들을 참고했다. 사나운데 또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도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참고하면 수아를 완성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수아의 인간성을 표현하는 게 어려웠지만, 어려웠던 만큼 정성이 들어갔고, 그만큼 즐거웠다.
최유리의 좀비 수아 동화되기 대작전
▷ 마지막에 군인들이 출동했을 때 정환이 자기를 물라고 한 후, 좀비가 된 정환이 수아를 지키려다 쓰러진다. 이 장면은 정말 많은 관객을 울렸다. 그만큼 연기하는 배우로서도 감정적으로 많이 힘든 장면 아니었을까 싶다.
최유리> 우리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정환이 진행한 훈련의 성과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나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한 장면 중 하나다. 그 장면 촬영했을 때는 이미 수아가 완벽하게 몰입된 상태라서 좀비 상태에서는 감정 표현이 원활하게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슬픈 감정을 억누르는데 초점을 맞췄다. 나 스스로도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그날 몇몇 분은 현장에서 훌쩍이기도 했다.
▷ 촬영하면서 많이 고민했고 또 어렵지만 해내고 나니 보람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장면을 꼽아본다면 무엇이 있을까?
최유리> 우리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 중 하나가 수아가 좀비 상태로 보아의 'No.1' 춤을 추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 아직 수아에게는 인간 시절 기억이 남아있고, 어쩌면 향후 진행될 방향을 가르쳐주는 요소 중 하나라 생각한다. 수아가 보아 노래에 반응하는 걸 보고 정환도 수아가 살아있다는 걸 아는 장면이다. 그 중요함을 알고 있었기에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좀비 상태로 춤을 춘다는 게 말 만큼 쉽지 않았다. 현장에서 좀비 안무가 선생님과 감독님의 디렉팅이 합쳐져서 안무를 몇 번 수정하고 난 뒤의 좀비 상태 보아 춤이 나오게 됐다. 그때 내가 아직 수아에게는 완벽하게 동화하기 직전이었는데, 그 장면을 촬영하면서 동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정말 대단한 배우,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다. 조정석, 이정은, 윤경호, 조여정 등 선배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며 어떤 점들을 느끼고 배웠을지 궁금하다.
최유리> 영화가 코믹 드라마인 만큼 코미디와 드라마를 넘나들면서 전환점을 확확 바꾸는 게 정말 중요했는데, 조정석 선배님이 그걸 너무 훌륭하게 해내시는 걸 보면서 감탄했다. 매번 감탄하며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빠를 비롯해 할머니(이정은), 삼촌(윤경호), 선생님(조여정) 모두 평소에도 제게 장난을 쳐주시고, 중요한 장면에서는 선뜻 조언도 해주신 덕분에 긴장하기보다는 늘 편한 상태로 지낼 수 있었다.
놀이공원 촬영 신을 찍을 때 간식 차가 왔었다. 조정석, 윤경호 선배님이 속한 팔공산 멤버들이 보내주신 간식 차였다. 간식 차 오기 얼마 전에 조정석, 윤경호 선배님이 나한테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뭐냐고 물으셨는데, 단순한 질문인 줄 알고 샌드위치와 닭꼬치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간식 차로 그 메뉴로 온 거다. 그때 깜짝 놀랐다. 그날 샌드위치를 4개를 먹었다.(웃음) 덕분에 정말 맛있는 촬영 시간을 보냈다. 정말 감사했다.
▷ 애용이를 연기한 고양이 금동 배우의 열연에 많은 관객이 녹아내리고 있다. 금동 배우와 함께한 현장은 어땠나? 어떤 장점을 가진 배우였나?
최유리> 금동이는 우리 현장의 에이스였다. 고양이라서 사람이 많은 촬영장이 불편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제약을 받아서 연기를 제대로 펼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금동이가 정말 대단한 게 불편한 내색 하나도 없이 자신의 역할을 최대로 끌어내서 연기에 집중했다. 정말 신기하고 존경스러웠다.(웃음) 연기를 굉장히 잘하는 게 쉬는 시간이면 금동이로 있다가 촬영 들어가면 어느 순간 애용이로 확 바뀌었다. 현장의 모든 사람이 금동이를 사랑했다.
캐릭터를 탐구하고, 울림을 주는 배우로 나아가기
▷ 좀 추상적이고 모호한 질문일 수 있는데, 배우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지, 연기란 무엇일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최유리> 배우는 연기를 하는 직업이자 캐릭터를 탐구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또 연기는 그 자체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인물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그 캐릭터의 경험을 내가 직접 경험해보고, 그 과정에서 캐릭터와 점점 친해져서 나중에는 그 캐릭터 자체가 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난 그런 과정이 즐겁다.
▷ 하고 싶은 것도, 배워야 할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 시기다. 어떤 것들을 해나가며 배우로서 성장하고 싶다고 생각해 봤을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최유리> 울림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 울림을 주는 배우가 되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배우가 되어야 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하려면 일상생활에서 얻는 영감뿐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분야에서도 영감을 얻어서 참고하면 조금 더 풍부한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좀비딸'을 찍으면서 동물을 레퍼런스로 삼는다는 건 이전엔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배우로서 많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게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서 인간 최유리에게도 정말 좋은 도움을 주고 많은 영향을 끼칠 거 같다.
▷ 예비 관객들에게 '좀비딸'을 홍보해야 할 시간이다. '좀비딸'을 왜 극장에서 관람하면 더 재밌는지, 그 'No.1' 포인트를 알려달라.
최유리> 우리 영화 '좀비딸'은 좀비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보다 애틋하고 따뜻한 가족애를 주제로 한 영화다. 우리 영화를 본다면, 정말 스크린 너머로 함께하고 있는 기분이 들 거다. 그러한 해피 에너지를 조금 더 큰 스크린으로 본다면 더욱 공감도 가고 몰입될 것이라 생각한다. 올해 여름이 무진장 더운데, 시원한 극장에서 극캉스를 보내면 좋을 거 같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