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걸음 내디딘 '발레리나', '존 윅'의 무게 이겨내길[최영주의 영화관]

외화 '발레리나'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독보적인 세계관과 세계관 이상으로 독보적인 캐릭터로 전 세계 액션 영화 팬들을 사로잡은 '존 윅' 시리즈가 더 넓은 세계로 발돋움을 시도했다.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아쉬움으로 내디딘 한발, 바로 '발레리나'다.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이브(아나 데 아르마스)는 전설적인 킬러 존 윅(키아누 리브스)을 배출한 암살자 양성 조직 루스카 로마에서 혹독한 훈련 끝에 발레리나이자 킬러로 성장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자들을 쫓던 이브는 킬러들이 장악한 정체불명의 도시로 향하고 그곳에서 끝없는 사투에 휘말린다. 킬러들과의 싸움 한복판, 이브의 눈앞에 존 윅이 모습을 드러낸다.
 
외화 '발레리나'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키우던 반려견의 복수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사람을 죽이던 존 윅이란 킬러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스턴트맨 출신답게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은 자신의 역량을 집중해 타격감 넘치는 스타일리시한 액션 시리즈 '존 윅'을 만들어냈다.
 
인기 액션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한 '존 윅' 시리즈의 스핀오프 '발레리나'는 부기맨 존 윅 대신 여성 액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세계관 확장을 시도했다.
 
'툼레이더' '언더월드' '레지던트 이블' '올드 가드' 시리즈 등 종종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액션 프랜차이즈가 나왔지만 자주 볼 수는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액션 프랜차이즈의 새 역사를 쓴 시리즈 속에서 새로운 여성 액션 캐릭터가 나왔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기대 속에 열어본 '발레리나'는 어쩐지 '존 윅'이라는 거대한 세계관 안에서 존 윅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의 무게에 짓눌린 느낌이다.
 
외화 '발레리나'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존 윅' 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은 것 중 하나는 '유니크'과 '간결함'이다. '존 윅' 시리즈는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으면서도 간단한 이유인 '감히 내 개를 죽여?'에서 출발해 곧바로 액션의 향연으로 나아간다.
 
'존 윅'이 어떤 인물인지 설명하는 데 긴 시간을 들이기보다 한 단어로 정의될 만큼 간결하고도 강렬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존 윅을 정의하는 것은 '액션'이고, 그렇기에 액션을 통해 존 윅이 어떤 인물인지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인다.
 
이런 게 가능한 건, '존 윅' 세계관의 매력 중 하나이기도 한 만화적인 설정에 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먼치킨 같은 캐릭터가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세계에서 다양한 액션을 통해 쾌감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만화적'이라는 설정은 때로는 개연성이 부족해도, 논리적인 비약이 존재해도 캐릭터와 액션으로 그 빈틈을 채워 넣는 것이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발레리나'는 일반적인 복수 서사를 통해 이브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여느 복수물을 동반한 액션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패턴이다. 그러다 보니 이브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설정 안에서 머물고, '존 윅'이라는 독특한 세계관 안에서 충분한 매력을 빛내지 못한다.
 
외화 '발레리나'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캐릭터성이 약하다 보니 영화에 존 윅이 짧게나마 등장할 때, 그 순간 이브의 매력은 쉽게 묻히고 존 윅의 존재감이 거대하게 다가온다. 결국 '발레리나'는 독창적인 또 하나의 캐릭터 탄생과 세계관 연장이라는 역할을 온전하게 수행하지 못한 채 밋밋한 스핀오프의 시작을 열었다.
 
아쉬운 점이 많은 스핀오프지만, 그래도 '존 윅' 시리즈 제작진답게 온갖 액션 신을 보여준다. 총과 칼은 기본이고 스케이트 신발 등 이브의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무기화된다. 특히 화염방사기를 통한 액션의 스케일은 눈요깃거리로서 확실하다. 우스갯소리지만, 화염방사기 액션 시퀀스는 빌런들의 출신과 엮어보면 다른 의미로 재밌는 지점이다.
 
또 루스카 로마 출신다운 이브만의 액션 코레오그라피(Choreography·안무를 의미하는 용어로, 특정 음악에 맞춰 춤을 구성하는 예술적 작업을 지칭) 역시 볼거리다. 무엇보다 아나 데 아르마스가 구르고 또 구르며 보여주는 생고생 액션이야말로 '발레리나'의 포인트 중 하나다. 과연 이브가 어디까지 무엇을 활용해 액션을 펼치며 몇 명이나 죽이는지 살펴보는 것 역시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아쉬움을 가졌지만, 이제 이브에 대한 소개와 배경 설명은 끝났다.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기에 충분히 그 가능성을 보여준 이브와 '발레리나'가 다음 이야기를 통해 더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하며 아쉬움을 반전시키길 바란다.
 
외화 '발레리나'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토탈 리콜'(2012) '다이 하드 4.0'(2007) '언더월드' 시리즈의 연출자답게 렌 와이즈먼 감독은 기본은 해냈다. 하나의 세계관을 운영해봤던 만큼 높은 이해도를 갖고 움직였고, 여성 주연 액션물을 다뤄본 감독답게 이브의 액션을 돋보이게 했다.
 
'발레리나'에서 단연 고생한 인물은 아나 데 아르마스다. '블레이드 러너 2049' '007: 노 타임 투 다이' '나이브스 아웃' '블론드' 등을 통해 착실하게 연기력과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아나 데 아르마스는 액션 장르에서도 활약을 펼치며 다시 한번 자신을 입증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콘티넨탈 뉴욕 컨시어지인 샤론 역의 랜스 레드딕이 여전히 '존 윅' 세계관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건 뭉클한 감정을 안긴다. 다음 시리즈에서도 레드딕이 여전히 콘티넨탈 뉴욕을 지킬 것만 같다.
 
개봉 전부터 화제였던 게 정두홍 무술감독과 '소녀시대' 출신 배우 최수영의 출연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둘의 캐릭터와 액션에 임팩트가 없는 탓에 큰 감흥을 주진 못한다.
 
124분 상영, 8월 6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외화 '발레리나' 포스터. 판씨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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