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배구 우리카드의 미들 블로커 이상현(26·201cm)이 지난 시즌의 부진을 딛고 더 성장한 모습을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시즌 우리카드는 리그 4위에 머물러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 2017-2018시즌(6위) 이후 7년 만에 봄 배구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21-2022시즌 프로에 데뷔한 이상현으로선 처음으로 봄 배구 없이 시즌을 마친 것이다.
5일 인천 송림체육관에서 만난 이상현은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해 많이 어색했다. 팬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커서 마지막 경기에 최선을 다했다"며 "개인적으로, 팀적으로도 많이 아쉬운 시즌이었다"고 돌아봤다.
시즌은 일찍 끝났지만 쉴 틈은 없었다. 지난 5월부터 대표팀에 소집돼 6월 바레인에서 열린 아시아배구연맹(AVC) 네이션스컵에 출전했고, 최근에는 브라질 전지훈련까지 다녀왔다.
하지만 이상현은 "대표팀에 간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자부심과 명예가 따른다"면서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지만, 동료들과 재미있게 배구를 했다"며 씩씩하게 웃었다.
휴식이 부족했던 탓인지 이상현은 탈이 났다. 오는 17일 중국 장쑤성 장자강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컨디션 난조로 대표팀에서 하차했고, 김준우(삼성화재)가 대체 발탁됐다.
이상현은 "사실 대표팀에서 운동하면서 몸 상태가 100%였던 적이 없었다"며 "동료들에게 미안했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다. 아픈 데가 많으면 민폐만 끼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오는 9월 필리핀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만큼은 반드시 뛰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상현은 "감독님께서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해서 열심히 재활하고 있다"며 "세계선수권에서 뛰는 건 값진 경험이라 꼭 출전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최근 꾸준히 대표팀에 승선하다가 잠시 하차한 이상현은 "동아시아선수권에서 랭킹 포인트를 쌓아야 해서 우승을 목표로 삼았는데,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며 "중간에 빠져서 팀 분위기를 망친 것 같아서 미안함도 크다. 돌아가면 밝은 분위기를 주려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상현은 세대교체를 진행 중인 대표팀의 핵심 미들 블로커다. 하지만 김준우를 비롯해 김민재, 최준혁(이상 대한항공) 등과의 포지션 경쟁도 만만치 않다.
이에 이상현은 "대표팀에서의 경쟁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경쟁의식을 갖고 노력하면서 성장하게 된다"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덕분에 실력이 많이 발전하는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소속팀에서도 마찬가지다. 베테랑 조근호가 합류해 미들 블로커 뎁스가 탄탄해졌다고 말한 이상현은 "당연히 뛸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베테랑 형들이 많으니까 경쟁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겠다"고 말했다.
세대교체의 중심에 선 만큼 책임감도 크다. 이상현은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선수들이 잘해야 한다. 중책을 맡은 만큼 더 노력하고 있다"며 "아직 부족하고 배울 게 많다. 더 많이 경험하고 느끼면서 성장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지난 시즌의 부진도 털어내야 한다. 속공은 4위(60%)로 준수했지만, 블로킹은 세트당 0.53개로 7위에 그쳤다. 2년 차인 2022-2023시즌 풀타임을 소화하고, 2023-2024시즌 블로킹 1위(세트당 0.70개)에 올라 생애 첫 베스트 7을 수상하는 등 성장세를 보이다가 잠시 주춤했던 것이다.
이상현은 "새롭게 오신 감독님의 전술에 적응하는 시간이었고, 새로운 배구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 같다"며 "속공은 괜찮았지만, 블로킹은 확실히 떨어졌던 것 같다. 답답한 마음에 여러 방법을 시도해 봤다"라고 회상했다.
팀 성적도 아쉬웠던 터라 데뷔 후 최악의 시즌이 되고 말았다. 이에 이상현은 "기본기를 더 탄탄하게 갖춰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기를 잘하면 팀이 편해지고 내 가치도 올라간다는 걸 깨달았다"며 "블로킹도 더 잘해야 한다. 새 시즌에는 반드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반등을 다짐했다.
자신의 경기 영상을 보며 많은 피드백을 얻었다. 이상현은 "지난 시즌 영상을 다 봤는데, 내가 봐도 안타깝고 왜 이렇게 했나 싶은 장면이 많았다"며 "재작년 영상을 보면 내가 봐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영상을 보며 자신감을 찾으려고 한다"고 했다.
2년 전 좋은 기억을 떠올리면 '살아있는 전설' 신영석(한국전력)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2017-2018시즌에 이어 6년 연속 블로킹 1위에 올랐던 신영석의 자리를 빼앗았다.
자신의 롤 모델을 뛰어넘은 것만큼 벅찬 순간이 있을까. 이상현은 "영석이 형은 대학교 동문이다. 대학생 때 학교에 찾아오셔서 같이 운동한 적이 있는데, 그때 보고 배울 점이 많다는 걸 느꼈다"며 "프로에 온 뒤 상대 팀으로 만나면 항상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동경심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며 "아직 실력은 부족하지만 같은 시대에 배구를 하고, 보고 배우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꼭 영석이 형만큼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런 신영석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이상현이다. 블로킹 1위에 오른 순간 "드디어 나를 뛰어넘는 미들블로커가 나왔구나"라며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이상현은 "진심으로 기뻐해 주셨고, 축하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전했다.
당시 신영석을 블로킹 1위를 놓쳤지만, 2017-2018시즌에 이어 7년 연속 베스트 7에 올랐다. 이를 보며 이상현은 "(베스트 7을) 많이 받으면 설렘이 있을지 궁금하다. 계속 받을 때마다 '좋은 상이구나'라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새 시즌에는 다시 베스트 7을 차지하고, 우승까지 노려보겠다는 각오다. 이상현은 "그때의 성취감과 기쁨을 잊을 수 없다. 이번 시즌에는 무조건 베스트 7을 수상하고 싶다"며 "팀도 뎁스가 탄탄해서 우승을 못 할 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꼭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겠다"고 다짐했다.
또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앞둔 시즌인 만큼 좋은 활약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상현은 "부담감보다는 첫 FA라서 설렌다. 동기인 (김)영준이랑 재활하면서 '다치지 말고,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자'라는 말을 했다"며 "얼른 내가 어떤 선수인지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내가 한 만큼 평가받는 게 FA인데, 잘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끝으로 이상현은 "다치지 않고 한 시즌을 건강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또 프로라면 항상 열심히 하고 잘해야 하는 게 의무"라며 "만족스럽지 못한 시즌을 겪고 스스로 채찍질을 많이 했다. 이번에는 스스로 잘했다고 느끼는 시즌이 됐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해서 베스트 7에 오르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싶다"며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