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안효섭이 배우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열심히 써 내려가며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전 세계에서 K-팝과 K-콘텐츠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감독 매기 강·크리스 아펠한스) 속 보이그룹 사자보이즈의 진우 더빙 연기로 팬들의 마음을 녹였다. 안효섭의 목소리를 얻은 진우는 팬심을 훔쳤고, 안효섭은 진우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로 얼굴을 알린 안효섭은 '낭만닥터 김사부' 2, 3와 '사내맞선' 그리고 '홍천기'를 통해 충분히 여러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렇게 자신만의 챕터를 채워가고 있는 안효섭이 스크린 데뷔작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동명의 글로벌 메가 히트작을 영화화한 '전지적 독자 시점'(감독 김병우, 이하 '전독시')이다.
안효섭이 연기한 인물은 10년 넘게 연재된 소설의 유일한 독자인 김독자다. 김독자는 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으로 위로받던 학창 시절을 지나 평범한 게임 회사의 직원으로 살고 있는 인물이다.
안효섭이 '김독자'에게서 발견한 키워드 역시 '평범함'이었다. 그는 평범함에서 '보편성'을 발견했고, 거기서부터 자신만의 김독자를 써보기로 했다.
김독자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처음 독자를 만났을 때 제일 신경 쓴 부분이 '보편성'이었어요. 독자가 굉장히 일반적인 인물로 비치는데, '일반적인 게 뭘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한 거죠."
안효섭은 '일반적인 사람이 뭘까'라는 질문 자체가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어느 한 사람 똑같지 않고 모두 다를 것이고, 그 모두가 '일반적인 사람'이라고 봤다. 그렇게 '독자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왜 독자는 지금 이렇게 행동할까' 등 하나씩 질문을 던져가며 김독자의 인생을 톺아봤다.
안효섭이 톺아본 독자는 자기 의지대로가 아닌, 세상에 휘둘리며 살아온 인물이었다. "중심 없이 이리저리 계속 치이는 인물"이자 "자기 의지대로 무엇 하나 된 적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독자의 서사를 2시간 안에 모두 담아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기에, 영화 초반 오프닝이 중요했다.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장면이지만, 그 안에서 김독자란 어떤 인물인지 단번에 납득시켜야 했다.
"초반에 독자 캐릭터를 잡는 게 중요했어요. 되게 사소한 행동에서 이 사람이 어떤지 알 수 있잖아요. 문 잡는 장면이 딱 그랬던 거 같아요. 문을 잡아주면서도 놓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보였어요. 그런데 못 놨죠. 지하철에서 가방을 앞으로 메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독자에서 주인공이자 작가로…김독자의 '성장'
10년 넘게 이어지던 소설 연재가 끝나던 날, 주인공 유중혁(이민호)이 홀로 살아남는 결말에 김독자는 크게 실망한다. 바로 그날, 김독자는 눈앞에서 소설이 현실이 된 순간을 마주하며 혼자만 살아남는 결말이 아닌, 동료들과 함께 살아남아 소설의 결말을 바꾸겠다고 결심한다.
생명은 소중하니까 사람을 살리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로 움직이는 독자 앞에 나타난 유중혁은 계속 "과연 그럴까?"라는 '물음표'를 던진다. 독자에게 인간은 정말 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 묻는다. 그런 유중혁의 질문 앞에 독자는 계속 딜레마에 빠진다.
"물론 독자가 유중혁처럼 숱하게 회귀하는 경험을 못 해봤기에 그런 결정을 하는 걸 수 있지만, 독자는 마음을 다잡으면서 독자만의 선택을 해요. 끊임없이 시험해 오는 유중혁은 독자에게 커다란 벽이에요. 그리고 독자는 그걸 끊임없이 부수려는 인물이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부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부수고 있고 부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에서 독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시험이자, 넘어서야 할 큰 벽이 바로 충무로 그린존 시나리오다. 자신만의 해피엔딩을 보고자 하는 김독자에게 그린존은 반드시 넘어야 할 과거이자 새로운 선택을 할 기회다. 그렇기에 카메라는 처음 그린존에 선 김독자와 이후 그린존이 있던 자리에 선 김독자를 다르게 비춘다.
"사실 그게 저와 감독님의 제일 큰 이야깃거리였어요. 글로만 보면 당연히 영웅적으로 사람들 구할 거라고 상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현실에서 나는 남들이 모르는 답을 알고 있고, 살 수 있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선뜻 나설 수 있을까요? 그린존에 혼자 염치없게 서 있을 때, 심적으로 창피하고 부끄러웠어요. 그렇지만 발은 안 떨어지고…. 너무 수치스러운데 쉽게 발을 움직일 수 없어서, 그때 분장이 아니라 정말로 땀이 엄청나게 났어요. 그런 순간들이 독자에게 여러 번 찾아와요."
그러나 독자는 결국 자신만의 그린존에서 벗어나 행동하기로 한다. 그린존을 아이에게 양보하기도 한다. 정의감일 수도 있고, 수치심을 벗어나고자 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 안효섭은 이런 게 바로 독자의 순수한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러한 원석이 있기에 김독자가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강조했다.
'배우 안효섭'이란 소설의 엔딩은 어떤 모습일까
안효섭은 그동안 자신이 써온 배우로서의 소설을 훑어봤을 때, 묵묵히 최선을 다해 걸어온 발걸음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그는 "쉬엄쉬엄이 안 되는 성격"이라며 "그런 날들 돌아보면 수고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로서의 삶에 터닝 포인트가 됐던 챕터는 '낭만닥터 김사부 2'다. 당시 함께 호흡을 맞췄던 한석규는 안효섭에게 "연기 재밌지? 그런데 잘하면 더 재밌어"라고 말했다.
"그게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때부터 연기적인 열망이 더 커지기 시작했어요. 그러고 나서 그다음 작품들을 만나면서 점점 시야가 넓어진 거 같아요."
두 번째 터닝 포인트는 '전독시'다. 안효섭은 "영화라는 작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처음 본 작품이다. 너무 매료돼서 앞으로 더 사랑할 수 있게 된 거 같다"며 미소 지었다. 그에게 '배우 안효섭'이라는 소설의 엔딩은 어땠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저는 아직 제 소설이 안 끝났으면 좋겠어요. 전 미래를 그리는 사람은 아닌 거 같아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고, 내가 해낸 거에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이거든요. 그냥 계속 열심히 소설을 써가고 싶어요."
'전독시'와 다른 '전독시'만의 매력
스크린 데뷔작 '전독시'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린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만큼 부담도, 고민도, 책임감도 크게 다가왔지만 안효섭은 자신만의 '김독자'를 만들어냈다.
"영화 속 김독자는 보다 현실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비현실적인 세상을 마주했을 때 평범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행동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죠. 많은 관객이 독자의 마음에 탑승하지 못하면 끌고 가지 못한다고 생각했기에, 독자가 가진 현실적인 고민을 세세하게 살펴봤어요. 그게 원작과 다른 영화만의 차별화된 지점이 아닐까 싶어요."
그는 '전독시'가 국경을 뛰어넘는 '인류애'라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유중혁은 인간은 구제할 수 없고,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김독자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함께' 가야 한다는 답을 찾는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하고, 당신이 없으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전 세계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내용 아닐까요? 관객분들께서 2시간만큼은 모두가 독자라는 걸 인지하고, 모두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하고 나오면 좋겠어요. 그리고 '전독시'는 정말 극장에서 봐야지만 롤러코스터 타는 경험할 수 있어요. 사운드, 비주얼 등 너무나 맛볼 게 많은 영화기에 그런 경험을 놓치지 않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