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트럼프가 혹한 '마스가(MASGA)'…3500억 달러의 득실은

연합뉴스

한미 간 이뤄진 관세협상 결과의 이해득실을 놓고 논란이 일 조짐이다. 정부는 국익을 최우선시 한 협상의 결과라고 한 반면 내 준 것에 비해 챙긴 실리가 작다는 주장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면서 성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양상이다.
 
31일 타결된 한미 관세협상의 핵심 내용은 우리 정부가 3500억 달러의 투자펀드를 조성하고 LNG 등 미국산 에너지 1천억 달러 어치를 3.5년에 걸쳐 구입해 주는 대가로 미국 정부가 한국의 대미 수출품에 매기는 관세율을 25%→15%로 깎아주는 것이다.
 
3500억 달러 가운데 1500억 달러는 '조선협력' 전용으로 조성되고 나머지 2천억 달러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바이오 등 우리 주력 수출분야의 투자재원으로 활용된다. 이 투자를 통해 거둔 수익의 90%는 미국에 귀속시키기로 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 입장에서는 민감한 품목들인 쌀과 소고기는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명 대통령은 협상타결 직후 "3500억 달러 규모의 펀드는 양국 전략산업 협력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으로 조선,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에너지 등 우리가 강점을 가진 산업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의 적극적인 미국 시장 진출을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이 없어지고, 오히려 주요 경쟁국보다 관세율이 낮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진 것이 수출경쟁에 도움이 될 것이란 점을 성과로 꼽았다.

트루스소셜 캡처

한국이 미국시장으로 수출하는 품목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완성차를 포함한 자동차 산업 분야다.
 
트럼프정부 2기 출범 이전의 주요국 관세율을 보면, 최대경쟁국인 일본이 2.5%, EU 3~4%인 반면 한국은 FTA 상대국으로 0%관세율을 적용받아오다, 이번 협상으로 15%로 키높이가 맞춰졌다. 일본은 12.5%, EU는 약 11~12% 포인트가 높아졌고 우리나라는 15%가 높아졌다.
 
단순 비교로도, 협상 결과로 인해 한국 완성차에 붙는 관세가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걸 알 수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가 '12.5% 관세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했었다'는 것도 일본과의 관세율 차이 때문에 한국 자동차 수출에 미칠 파급영향을 고려한 때문이다.
 
협상 결과 가운데 국민 관심이 가장 큰 부분은 관세율 인하의 대가로 한국이 미국측에 제공하기로 한 반대급부의 크기이다. '3500억 달러 + 1천억 달러'가 과연 적정한가 하는 지점이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시장에서 우리의 경쟁상대국인 EU와 일본이 약속한 투자규모 7천억 달러와 5500억 달러에 비해 적은 액수로 보이지만, 이 투자재원을 감당할 경제규모를 놓고 비교하면 3500억 달러가 얼마나 큰 돈인지 금방 나타난다.
 
EU의 명목 GDP(2024년)는 19조 달러, 일본은 6.7조 달러로 경제규모가 한국의 2~6배를 넘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액 5500억과 7천억 달러가 한국보다 많아 보이지만 감당할 여력이 더 커 보인다. 정부는 우리기업이 주도하는 조선업펀드(1500억 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투자규모가 일본의 36%라고 강조하는데, 이 역시 미국에 투자해야 할 돈인 건 분명하다.
 
미(美) 상무부 경제분석국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세계 각국이 미국에 투자한 총액은 1510억 달러이고 우리나라는 미국에 5.6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번에 받아 든 투자약속액 3500억 달러는 지난해 투자규모의 625배나 되는 천문학적인 수치이다. 투자액이 아깝지 않으려면 최대한 뽑아내야 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협상결과로는 언제까지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지 등 각론이 분명치 않지만 협상안에 서명하고 나면 투자를 피해갈 길은 없다. 이렇게 되면 향후 수년간 국내 투자재원이 메말라 정작 국내에서는 투자기근이 발생할 수 있다. 시급한 저출산고령화나 AI.항공.우주산업 등 새 정부의 투자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기획재정부 제공

협상의 세부내용이 불명확하거나 한미간 견해가 다른 지점도 여럿 눈에 띤다. 소고기와 쌀 등 농산물 추가 개방이나 3500억 달러 투자액에서 나오는 수익액의 처리방법 등은 후속협상에서 그 내용을 명확히 해야 하는 과제로 떠올랐다.
 
우리 정부는 상대국에 최강의 압박을 가하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전략에도 불구하고 조선업 중심의 이른바 '마스가(MASGA) 패키지'를 내세워 경쟁국과 동일한 관세율을 적용받는 성과를 거뒀지만, 트럼프가 늘 그렇듯이 각론이 불분명한 협상결과를 서둘러 공개한데서 비롯된 이견 조율과 투자의 집행방법 등 세부협상에 집중해야 한다.

이번 협상 결과로 한미정상회담은 이달(8월)중순 개최가 기정사실화됐다. 양국 정상의 협상테이블에는 관세협상 뿐아니라 한미간 이견이 있는 방위비 증액과 북핵문제, 대 중국 대응 공조 등 한층 복합적이고 난해한 문제들이 오를 것이 뻔하다. 일본과 EU협상의 사례 처럼, 즉석에서 투자액을 바꿔적는 것과 유사한 청구서가 날아들 수도 있다.

우리 정부가 히든 카드로 제시한 '미국 조선업 부활'이 관세협상의 물꼬를 트면서 커다란 줄기가 잡혔지만 투자액과 에너지 구입의 세부 방법론은 양국이 정상회담 등의 계기에 더욱 구체화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각론을 세워 나간다면 '내 준 액수가 크다'는 비판적 시각도 누그러들 것이다. 후속협상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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