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죽음'보다 '권력'이 더 두려운가

전북 전주에 6일째 폭염특보가 내려진 25일,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창호 교체 작업을 하는 한 노동자의 얼굴에 땀이 가득하다. 연합뉴스

'전쟁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1984년 '얼굴없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가 썼던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노동의 절망적 현실을 생생히 그려내 금서로 지정되고도 100만부가 팔렸다는 시집이기도 하다.
 
박노해는 밤일(밤샘 근로)을 노동자의 모든 것, 급기야는 목숨까지도 앗아갈 수 있는 '전쟁'으로 묘사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전쟁같은 밤일에서 벗어났는가?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경기 시흥시 SPC 삼립 시흥 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가운데 허영인 SPC그룹 회장(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지난 27일 국내 1위의 제빵 업체인 SPC가 12시간 야근을 철폐하고 작업장 환경 개선 등에 620여억원을 투입하기로 발표했다.
 
SPC에서는 새벽 근무 시간에 기계에 끼어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잇따랐다.
 
그럼에도 회사는 장시간 밤샘 근로 제도를 고수해왔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SPC 공장을 직접 찾아 장시간 밤샘 근로 문제를 집중 질타한지 이틀만에 개선책을 밝힌 것이다.
 
'죽음'보다 '권력'이 더 두려웠던 것일까.
 
포스코이앤씨도 대통령의 질타 반나절 만에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사장이 29일 인천 송도 본사에서 연이은 현장 사망사고와 관련한 담화문 발표에 앞서 관계자들과 사과 인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올해 포스코이앤씨 현장에서 연이은 산업재해 사고로 노동자들이 숨진 사실을 언급하며 질타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이 29일 오전 포스코 이앤씨 건설 현장에서 잇따른 사망 사고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하자 이날 오후 대표가 나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모든 현장에서 작업을 중지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 공사 현장에서는 붕괴와 추락 등으로 올들어서만 근로자 4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한국의 산재 사망자는 589명으로 전년보다 9명이 줄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사망 산재 다발 업종인 건설업이 경기 위축으로 공사 현장과 취업자 숫자 자체가 줄면서 산재 사망자가 줄었고 제조업 등 그 외의 업종은 오히려 사망자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근로자 1만명 당 산재 사망률도 지난해 기준 0.98로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OECD 기준에 따른 산재 사망률도 지난 2023년 기준 0.43으로 OECD 평균보다는 2배 정도 높아 하위권에 속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2일 경기도 남양주시 건설공사 현장을 방문해 건설노동자들의 안전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사망 산재가 끊이지 않는데도 경제계는 사망 산재 시 기업주를 형사 처벌하도록 한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해왔다. 기업주가 형사처벌 당하면 기업이 망하고 그 결과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게 되니 기업주 처벌 조항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부 기업주들은 산재 발생 시 자신을 대신해 형사처벌 받을 수 있는 직원을 '바지 사장'으로 앉히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그러면서 '사장 시키려면 월급을 올려줘야 하니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라는 불평을 쏟아 놓기도 한다.
 
어떤 기업주들은 '아무리 안전 교육을 시켜도  현장 근로자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근로자 탓을 하기도 한다.
 
안전 문제를 비용과 규제로만 인식하는 수준이다.
 
SPC 사고와 관련해 동종업계 기업주에게 '사망 사고가 잇따를 수 밖에 없는 위험한 설비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저희 회사도 똑같은 설비를 쓰는데, 사고가 일어날 수 없는 시설이에요. 사고가 났다는 것은 설비가 낡았다고 밖에 볼 수 없어요"
 
후진국형 산재 사망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안전에 대한 기업의 투자와 함께 기업주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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