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예라 "CBS 전국 청소년 콩쿨은 음악 인생의 단단한 밑거름"

[충북CBS 만나]
독일 하노버·드레스덴 국립 음대에서 학사부터 박사까지 10년간 수학
CBS 전국 청소년 음악 콩쿨, 참가 신청 접수중
CBS 콩쿨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자기 객관화' 및 '성장'의 기회
9월6일 CBS 전국청소년 음악 콩쿨 , "후회 없는 도전을 하라"

피아니스트 김예라 -제료제공

◇ 진행자:어릴 때 읽었던 책 한 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죠. 오늘 만날 분도 바로 그런 경험을 하신 분입니다. 깊이 있는 감성과 섬세한 해석으로 피아노 음악의 숨결을 전하는 피아니스트, 김예라 선생님을 초대했습니다. 김 선생님은 청주 출신으로,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독일 하노버와 드레스덴 국립음대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과 음악교육학을 동시에 전공하셨고요.

현재는 피아니스트로, 또 많은 후학들을 가르치며 활동하고 계십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선생님은 단 한 권의 책 속 주인공을 만나 피아니스트의 꿈을 품었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셨습니다. 즉흥 환상곡, 김예라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전해드립니다.

◆ 김예라:안녕하세요.

◇ 진행자:너무너무 아름다운 연주였는데요. 방금 들은 연주는 언제 어디서 연주하신 건가요?

◆ 김예라:사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확히 어디서 한 연주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나요. 이 곡을 워낙 자주 연주하다 보니까요. 지난주에도 연주했었고, 너무 많은 자리에서 연주했기 때문에 정확한 장소가 가물가물하네요.
그만큼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시는 곡이라 자주 연주하게 돼요. 물론 유명한 곡일수록 부담감도 크지만, 그만큼 좋은 피드백을 자주 받아서 제가 특히 좋아하는 곡이기도 해요.

◇ 진행자:연주자분들 얘기 들어보면, 알려진 곡일수록 오히려 더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 김예라:맞아요. 정말 부담돼요.

◇ 진행자:선생님의 음악 여정을 돌아보면, 첫째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고, 둘째는 꿈을 꾸었고, 셋째는 정말 많은 노력을 하셨더라고요. 어릴 적, 처음 음악을 어떻게 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피아니스트 김예라. 본인 제공

◆ 김예라:저희 집에 피아노가 한 대 있었어요. 사실 인테리어용이었죠. 그냥 관상용으로 거실 한쪽에 놓여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늘 그 피아노를 보며 자랐어요. 오고 가며 자꾸 보니까 어느 순간 저도 치고 싶더라고요.그래서 5살쯤 되었을 때, 피아노 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랐죠. 그런데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어요. 글도 제대로 못 읽는다면서요.

그래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가, 7살에 다시 한번 시도했어요.드디어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되었고, 정말 좋아하며 시작했죠.그 즈음,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께서 책을 한 권 선물해 주셨어요.제목은 '삶은 안단테로, 사랑은 비바체로'입니다.

◇ 진행자:너무 유명한  피아니스트 서혜경 선생님 관련 책이죠?

◆ 김예라:네, 맞아요.피아니스트 서혜경 선생님, 바이올리니스트 서혜주 선생님, 그리고 변호사 아드님을 키우신 어머니가 쓴 자서전 같은 책이에요. 그 책을 받았을 때, 어린 아이가 읽기엔 좀 두꺼웠어요. 하지만 피아노를 너무 좋아하던 때라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만으로도 흥미가 생겼죠. 책을 읽으면서 제가 몰랐던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어요.예원학교, 서울예고, 미국 줄리어드 음대, 카네기홀… 이런 명칭들을 처음 접했어요.

그때는 정말 단순하게, "학교는 저기밖에 없나보다. 그럼 나는 저길 가야지!" 하고 생각했어요.실제로는 도레도레 치고 있었고, 겨우 바이엘 시작할 때였는데 말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하게 순수했죠. 그렇지만 그 책이 제 인생을 바꿔줬어요. "나도 저 길을 갈 거야!" 하고 진지하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 진행자:네. 알겠습니다. 워낙 재능이 좀 있으셨고요. 또 고향인 그래서 청주를 일찌감치 떠났어요. 그리고 이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가장 치열하다는 예원학교 가셨고 서울예고를 거쳐서 유학길을 가셨어요. 서혜경 선생님의 길을 그대로 가셨네요. 근데  미국으로 가지 않으시고?

.◆ 김예라:맞아요. 그거 또 설명드릴 얘기가 있는데, 미국학교를  중학교 때 한번 도전을 해봤었는데, 저는 너무 무섭더라고요. 저에게 느껴지는 미국은 그 필라델피아 도시가 조금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흑인도 처음 봤고 일단 저가 떨어졌고요. 그리고 너무 비싸고 막 뭔가 음침하고 저에겐 미국에 원래 그런 게 아닌데 그곳에 그 날씨 그때가 그랬어요. 그래서 미국은 아니다. 그래서 이제 그럼 클래식의 본고장 독일로 가자 해서 방향을 튼 케이스이긴 한데….

◇ 진행자:네.  음악 인생에 이제 근육을 만드는 게 10대 시절이잖아요. 예원학교 때 서울예고 때 얘기를 잠깐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김예라:말씀 주신 것처럼 청주 출신이고, 또 학원에서 시작을 했잖아요. 책 한 권으로 용기 있게 시작을 한 친구이기 때문에 사실은 치열한 입시 전쟁에 뛰어들어서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근데 그 책을 통해서 목사님과 통해서  그 서혜경 선생님을 소개를 받고 ,그분이 직접 레슨을 못 해주니까, 제자를 지인을 소개를 해줘요. 자기 후배를. 그래서 저는 그분이 또 전부잖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서울과 청주를 오가면서 고속버스 타고 레슨을 다니기 시작을 했어요.

◇ 진행자:서혜경 선생님이  휼륭한 선생님을 소개해 주신 거예요?

◆ 김예라:네. 서혜경선생님이 청주에 독주회를 오셨을 때 , 목사님이랑 사인회 때 가서 그냥 무작정 저 오디션 볼래요? 저 배우고 싶어요. 정말 무식했죠?

◇ 진행자:얼마나 대견하셨을까요?

◆ 김예라:네. 서혜경 선생님이 ' 제가 미국에 있습니다' 하면서, 좋은선생님을 소개해주셨고,  예원을 준비하려면  입시에 집중하려고, 부모님을 떠나서 이모네 집에 있으면서 피아노 공부를 했습니다. 실은 많이 힘들었 많이 힘들고 처음에는 등수도 잘 안 나왔던 것 같은데 확실히 환경이 주는 게 무서운 것 같아요.

너무 극성 맞고 너무 열심히 하고 막 난다 긴다하는 애들이 모여 있고 ,또 콩쿨 수준도 다르고 또 연주회장 가도 공연의 수준이 너무 다르고 또 마스터 클래스가 막 열리고  좋은 정보들이 막 쏟아지니까 저의 장점이자 단점이 잘 빨아들이는 것 같아요. 책처럼. 그래서 저도 악착같이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등수부터 올려서 밑에부터 열심히 악착같이 했던 것 같아요.

김예라 피아니스트 본인 제공

◇ 진행자:네. 끈기가 있어야 되고요. 일단 욕심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 김예라:네. 엉덩이 힘도 좀 있어야 되고요.아무튼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됐죠. 원래 모토처럼 제가 학교를 스케치북에 적어서 책상에 붙여놨어요. 어릴 때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 줄리어드 음대, 난 이게 전부다. 그래서 긍정의 힘처럼 요즘은 그게 이슈 됐잖아요. 맨날 뭘 보고 선포하고 하면 힘이 있더라구요. 저는 그걸 몰랐는데 그냥 그걸 붙여놓고 맨날 봤어요.

맨날 보고 내가 갈 학교다. 근데 그렇게 이루어진 거죠.  그래서 어쨌든 나는 클래식을 할 거면 무조건 외국을 유학을 갈 건데 미국이 아니면 이제 독일, 그래도 브람스랑 베토벤과 바흐가 있는 3B…  나의 멋진 음악가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 그래서 저는 그래서 독일을 준비하게 됐고 감사하게 너무 좋은 학교죠.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 입학을 하게 됐었습니다.

◇ 진행자:네. 하노버 드레스덴 국립음대에서 공부를 하셨어요. 어떤 배움을 가졌었나요?

◆ 김예라:아무래도 두 개가 막 학교마다 차이가 있는 거는 사실은 그렇게 말하기는 어려운데 정말 유명하고 잘하는 사람을 사람이 모인 곳이었어요. 하노버가 특히,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시청각적으로 배우는 것도 많았던 것 같았어요.

◇ 진행자:다른 사람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나  치는 것을 보면서?

◆ 김예라:맞아요. 그리고 어떻게 연습을 하는지 그리고 자극도 되죠. 위축도 되지만 그래서 그런 게 주는 큰 힘이 있었고 드레스덴 같은 경우는 제 교수님이 너무 너무나 음악가셨어요. 그래서 조금 위축돼 있던 어떻게 보면 조금은 자신 없었던 저의 어떤 연약함, 그런 걸 엄청 훨훨 날게 해주신 분이라서 정말 저를 음악가로 대해주셨고 넌 정말 많은 걸 갖고 있다고 저를 되게 응원해 주시고 그때 많이 피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 두 곳 다 저에게는 너무 감사했던 곳이었네요.

◇ 진행자:학사부터 석사도 하시고 박사도 하시고 정말 10년 공부를 하신 거네요.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어땠나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일단 언어 문제도 있고요?

◆ 김예라: 맞아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다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만 남는다."소소한 좋은 기억들도 물론 많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굵직굵직한 에피소드들이 많이 떠올라요. 제가 처음 독일 학교에 입학했을 때, 피아노 전공으로 간 거잖아요. 그런데 교육학을 무조건 복수전공해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은 선택이 가능한데, 당시에는 페다고지(Pedagogy), 즉 교육학과 실기 전공을 병행해야 했어요. 이 말은 결국 독일인들과 같이 교육학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저는 당시 독일어로 ABCD(아베체데)를 배우는 수준이었어요. 피아노 실기는 합격했지만,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조건부 입학이었거든요. 학교 측에서 "6개월 안에 독일어 토플을 일정 점수 이상 통과하지 못하면 퇴학"이라고 했어요. 독일은 정말 '얄짤' 없어요. 피아노를 아무리 잘 쳐도, 기준을 못 넘기면 퇴학이에요. 그래서 너무 무서웠어요. 학교에서 쫓겨나면 안 되니까요. 그때부터 정말 미친 듯이 공부했어요.6개월 동안 심리학, 신체학, 실습, 논문까지 전부 따라가야 했어요. 진짜 울면서 했어요.

근데 사람이 진짜 '닥치면' 하게 되더라고요. 데드라인이 있으니까.특히 언어가 제일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 과정을 겪다 보니, 남들보다 더 빨리 늘었고, 어학 실력이 훨씬 좋아졌어요. 덕분에 교수님들도 저와의 소통이 점점 편해지셨고, 저 역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언어가 되니까요.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마인드 컨트롤도 하고, 주변에서 많이 응원해 주셔서 결국 해냈어요.졸업 연주를 마치고 나니 정말 뿌듯하고 감사했어요.10년의 시간이라는 게… 시원섭섭하면서도 아쉽고, 의미도 크고, 그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 진행자: 제가 선생님 연주를 몇 번 함께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마다 정말 느꼈던 게 뭐냐면 자신감과 주저함이 없으세요. 그게 참 감동이었어요. 음악도 물론 훌륭했지만, 그 자신감이 제일 인상 깊었어요.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나요?

◆ 김예라: 그래 보였어요? 너무 감사하네요.제 안에서는 사실 두근두근, 정말 긴장하고 있었을 텐데 겉으로 그렇게 보였다면,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

◇ 진행자: 국내외 콩쿨에서도 입상을 많이 하셨잖아요.어렸을 때부터 청주에 있던 동양일보 콩쿠르에서 언니, 오빠들 제치고 1등도 하셨고,여러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많이 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그 이야기들도 좀 들려주세요.

◆ 김예라: 네, 저에게는 동양일보 콩쿨이 정말 잊을 수 없는 무대예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만 해도 중부권에서 가장 큰 콩쿨 중 하나였어요. 신문사 주최 콩쿠르는 지금도 명성이 있잖아요? 그때가 예원학교에 합격하기 전이었는지, 후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초등학생이었던 제가 중고등부 참가자들까지 다 제치고 전체 대상을 받았어요. 그게 단순히 '내가 잘 쳤다'는 의미보다,"그래도 네가 이 길을 가도 괜찮아"라는 격려와 인정으로 다가왔어요. 책 한 권 들고 서울을 오가며,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던 저에게어떤 '방향'을 제시해 준, 너무나 감사한 상이었어요.

그리고 한국일보 콩쿨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그때도 선배들이 많은 무대에서 1등을 하게 됐는데,그런 상들이 꼭 제가 낙담하거나 자신감이 떨어졌을 때마다 한 번씩 자신감을 회복하고 다시 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줬던 것 같아요.

◇ 진행자: 콩쿠르가 참 중요하죠. CBS도 오는 9월 6일에 전국 청소년 콩쿨이 열립니다. 지금 참가 신청도 받고 있거든요. 콩쿨이 청소년 음악도들에게 여러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콩쿨을 통해서 건강 관리도 하게 되는 것 같고요.선배로서 격려의 말씀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 김예라: 콩쿨, 사실 무섭죠. 그렇지 않나요? 어떻게 보면 나 자신을 드러내야 하고 평가받는 자리니까요. 그런데 저는 콩쿨을 통해서 잃는 건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굳이 잃는다면 자존심? 잘 안 됐을 때 상처받을 수 있죠.하지만 저는 그런 건 빨리 깨지는 게 오히려 낫다고 생각해요.

콩쿨은 건강한 경쟁을 배우는 기회이고,무엇보다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무대예요. 저희 같은 연주자들은 무대 경험이 많을수록 좋아요. 무대에서 내가 어떤 점이 강하고, 또 어떤 부분이 약한지를 알 수 있고요. 피드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해요. 혼자 방에서 잘 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김예라 피아니스트 본인 제공

◇ 진행자: 그럼요, 객관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죠?

◆ 김예라: 네, 맞아요. 그래서 저는 콩쿨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CBS 콩쿨은 청주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인정받는 콩쿨이잖아요. 이런 무대에 나가보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이 돼요. 다른 친구들의 연주도 들을 수 있고,나의 현재 위치를 객관적으로 점검받는 기회가 되니까요.

◇ 진행자: 콩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성장통을 겪게 되잖아요.마음가짐이나 연습 태도에도 변화가 생기고요.어떻게 보세요?

◆ 김예라: 맞아요. 콩쿨은 특히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잖아요. 그 시기가 연주자에게는 가장 실력이 많이 오르는 순간이기도 해요. 레슨도 훨씬 집중해서 받고, 연습도 초인적으로 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실력적으로도 분명히 성장이 있고,무엇보다도 좌절과 성취를 모두 경험할 수 있어요.

결과가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데요. 그 두 감정을 모두 감당하고 이겨내는 마음의 힘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항상 잘될 수는 없고, 항상 안 되지도 않잖아요. 콩쿨을 통해 그걸 몸으로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도전 자체가 무조건 중요하다고 봅니다.

◇ 진행자: 콩쿨을 통해서 자기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배우게 되죠. 몸 상태나 생활 리듬도 잘 챙기게 되고요. 그게 바로 음악가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 콩쿨이 음악 인생에 어떤 밑거름이 될 수 있을지,선생님의 경험자로서 좀 더 이야기해 주세요.

◆ 김예라: 물론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그 등수나 명성이 주는 힘도 분명히 있어요. 프로필에 쓰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도,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시간 동안 실력이 오르고,자기 관리, 시간 관리, 연습 방법, 끈기, 인내 같은음악가로서 꼭 필요한 덕목들을 배울 수 있어요.

정말 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그걸 참고 이겨내는 과정이앞으로 계속 연주하며 살아가야 할 저희에게 굉장히 큰 힘이 돼요. 그래서 저는 콩쿨이 단순한 경연이 아니라 음악 인생 전체를 이끌어줄 수 있는 자산이라고 생각해요.청소년 여러분도 꼭 도전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진행자: 네. 선생님처럼 전문 연주자가 되지 않더라도, 음악 선생님이 되거나 다른 길을 가더라도, 콩쿨을 통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거잖아요. 자신이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도 알아볼 수 있고요. 콩쿨 참가를 망설이는 청소년이나 부모님들께 조언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 김예라: 네. 저는 항상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말해요. 특히 어릴수록 다양한 경험과 무대 경험을 쌓아두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망설이지 마시고 꼭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 진행자: 네, 알겠습니다.콩쿨에서 입상의 기쁨도 경험하셨고,또 아픔도 겪으셨겠네요. 아무리 잘하는 연주자라도 매번 1등 할 수는 없잖아요. 선생님은 독일에서 음악 교사 자격증도 취득하셨죠? 독일의 음악 교육 시스템은 한국과 어떻게 다를까요?

◆ 김예라: 네. 저는 독일에서 정식 음악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실제로 독일의 뮤직슐레(Musikschule), 음악학교에서 출강도 했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독일에도 음악학교가 있지만,한국처럼 예중·예고 같은 특목고 시스템은 없어요. 좀 더 통합형 시스템에 가까워요. 일반 학교의 음악 프로그램에 플러스되는 느낌이랄까요? 사교육이나 콩쿨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더 많고요. 그래서 경쟁 분위기 자체가 한국보다 훨씬 적어요.

독일은 도시마다 국립 음대들이 있고,물론 베를린 음대나 하노버 음대처럼유명하고 입학이 어려운 학교도 있지만,대부분은 학교보다 교수님을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교육 철학이나 스타일을 따라가는 거죠. 그래서 굳이 한국처럼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음악학교에 다니면서도 "이게 음악학교 맞아?" 싶을 만큼자연스럽고 덜 부담스러운 분위기예요.

물론 실기시험, 입학시험은 있어요. 그런데 제가 느낀 독일 학생들은어릴 땐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 보여도,나중에 갈수록 정말 꾸준히 성장해요. 우리나라는 어릴 때부터 엄청난 집중과 경쟁이 있지만, 독일 친구들은 그 에너지를 아껴두었다가 점점 꺼내 쓰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잘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진행자: 음악하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면에서  결국 한국식 스파르타 시스템이 맞는 걸까요, 선생님?

◆ 김예라: 네, 테크닉적인 부분에서는 저도 동의해요. 하지만 또 한편으론, 마음의 소소한 행복들을 추구하는 독일 친구들의 삶도 있더라고요. 우리나라와는 다른 면들이 있는 것 같아요.결국 장단점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 진행자: 선생님은 전문 연주와 교육을 병행하고 계시잖아요. 두 일이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하시나요?

◆ 김예라: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제가 직접 연주를 하고 있기 때문에,제자들에게 시청각적인 교육이 가능하죠.무대에 섰을 때에는 단순히 말로만 전하는 것과는 다른 테크닉과 감각이 필요해요. 그걸 실질적으로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연주와 교육은 서로 보완이 됩니다.

그리고 제 레슨 스튜디오에 오셔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제일 연습을 많이 해요. 학생들도 항상 "선생님, 그 모습에 자극받아요.저희가 더 부끄러워져요"라고 말해줘요. 저 스스로도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계속 연습하고 있고요. 그 에너지로 또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 과정이 선순환이 되는 것 같아요. 두 가지 역할 모두 잘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진행자: 네. 학생들이 음악적으로 고민이 많죠?

◆ 김예라: 그럼요.감수성도 예민한 나이이고,또 그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가 저인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 하면 더 잘 칠 수 있을지,어떻게 하면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을지,어떻게 몸을 이완하면서 연주할 수 있을지, 무대 공포증에 대한 걱정도 많고요.가장 큰 고민은 역시 진로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저와 자연스럽게 나누고 있는 것 같아요.

◇ 진행자: 이제 소식을 전해드리면서 인사드려야 할 시간이네요. 다음 달에 연주회가 예정되어 있다고 들었어요?

◆ 김예라: 네, 맞습니다.8월 10일(일요일) 오후 3시,연세대학교 내 금호아트홀에서 듀오 피아노 리사이틀이 있어요. 그리고 8월 30일(토요일) 오후 4시,청주 하우스 콘서트 썸머 페스티벌에서 '피아노 5중주 '송어'를 연주할 예정이에요. 저에게도 처음 도전하는 곡이라 기대가 큽니다. 혹시 청취자분들 중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금호아트홀 리사이틀 초대권을 드릴 수도 있으니 문의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진행자: 이야기를 들으니 벌써부터 기대되고 설레네요.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들을 곡이 선생님이 연주하신 쇼팽의 스케르초 1번이에요. 입시곡으로도 많이 연주되는 곡이죠?

◆ 김예라: 네, 맞아요.이번 CBS 콩쿨에서도 이 곡으로 출전하는 학생들,꽤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진행자: 네, 저희는 김예라 선생님의쇼팽 스케르초 1번 연주를 들으며 인사드리겠습니다. CBS 전국 청소년 콩쿨, 9월 6일, 지금 참가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CBS 만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CBS 제공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