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리스닝 계열의 노래로 주로 활동해 온, 탄탄한 라이브 실력과 여유로운 무대 매너를 지닌, 직접 곡을 쓰는 팀. 그룹 보이넥스트도어(BOYNEXTDOOR)에게 가진 인상이었다. 27일 오후 5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케이스포돔)에서 단독 콘서트로 만난 보이넥스트도어는, 솔직히 예상을 빗나갔다. 음원으로만 접할 때보다 공연장에서 볼 때 더 좋은 무대가 많았고, 무엇보다 한 편의 '공연'으로서 즐길 거리도 풍성했다.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 동안 열린 보이넥스트도어의 '노크 온 볼륨 원 파이널'(KNOCK ON Vol.1 FINAL)은 여전히 수많은 가수가 '꿈의 무대'라고 말하는 체조경기장에서 개최됐다. 소속사 케이오지(KOZ)엔터테인먼트가 관객 수를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사흘 내내 '전석 매진'될 정도로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그라운드를 스탠딩으로 운영한 이번 공연은, 육안으로 확인했을 때도 시야제한석의 맨 끝자리까지도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마치 라이브 클럽이나 바에 온 것처럼, 번쩍이는 금빛으로 팀명 보이넥스트도어의 영문명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모든 무대에 함께한 라이브 밴드의 진가는 오프닝에서부터 나타났다. 대형 전광판에선 붉은 커튼이 열려 공연의 시작을 알렸고, 웨이터와 웨이트리스 복장을 한 댄서들은 분주하게 쇼를 준비하는 모양새였다. 쇼의 주인공인 보이넥스트도어는 반짝이는 흰옷을 입고 화려하게 등장했다.
"렛츠 고 크레이지"(Let's Go Crazy)라는 태산의 외침 이후 나온 첫 곡은 '나이스 가이'(Nice Guy)였다. 음원으로 들을 때는 약간 슴슴한 부분도 있다고 느꼈던 '나이스 가이'를 밴드 편곡 아래 라이브로 들으니, 노래의 원형은 같은데도 훨씬 더 해상도 높은 버전으로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이번 공연에 관한 호기심이 발동한 순간이었다. 공연에 오지 않았다면 이토록 흥겨운 '나이스 가이'를 접할 수 없었겠구나 싶어서. 넘치게 뿌린 금빛 콘페티가 파티의 분위기를 돋웠다.
하늘색을 강조한 아기자기한 영상과 마치 커다란 곰 인형 안에 녹음된 목소리처럼 한껏 귀엽게 '아이 러브 유'라고 한 명재현, 둘씩 짝을 지어 보여준 짧은 매력 발산 시간이 어우러진 '세레나데'(Serenade)가 두 번째 곡이었다. 투어 중 발매한 네 번째 미니앨범 '노 장르'(No Genre) 수록곡 '123-78'이 그 뒤를 이었다.
피아노와 금관 악기 소리가 잘 녹아든 '123-78'은 1960년대 팝 소울 사운드를 가져온 곡이라 그런지 밴드 라이브와 궁합이 특히 좋았다. 에펠탑과 강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야경을 띄운 화면과, 가벼운 탭댄스 동작을 필두로 한 노래 자체의 경쾌한 분위기 때문에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가사를 지닌 곡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초반에 가장 두드러졌던 파티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한 곡이 '123-78'이 아닐까 싶었다.
역주행에 성공해 보이넥스트도어의 히트곡이자 대표곡이 된 '오늘만 아이 러브 유(I LOVE YOU)'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연출에도 공을 들인 티가 나서 반가웠다. 일상을 이야기함으로써 대중과 공감대를 형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보이넥스트도어는 데뷔 싱글부터 작사와 작곡에 참여해 온 바 있다.
"그날 이후로 난 이렇게 살고 더는 기타 한 번도 들지 못하고" "추억 팔아서 곡이나 쓰는 건 딱 죽기보다 싫은데" "영감을 받은 척하고 뻔한 가사를 써봐도 돌고 돌아 종착지는 결국 you" "너에 대한 노래 아닌 척 살아가겠지 오늘 내일 또 모레 지겹지만" 등의 가사에선, 대외적으로 '연애'와는 선을 그어야 하는 아이돌이면서 직접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붙이는 팀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이 동시에 드러나 새삼 흥미롭게 들렸다.
픽셀을 사용한 화면, 등장인물이 대사를 치듯 띄운 가사로 고전 게임 분위기를 물씬 풍긴 '오늘만 아이 러브 유' 역시 댄스파티처럼 무대를 구성했다. '아티스트 보이넥스트도어' '파티를 여는 남자 성호 리우 명재현 태산 이한 운학'처럼 평범하게 시작해서 '세레나데 부르는 사람들 우나기 링자님' '잠 못 자게 고백하는 사람 낭만보이' '꽃단장하는 남자 그레이트명' 등 멤버들과 팬들은 아는 애칭을 적극 활용한 길고 긴 엔딩 크레딧은 귀엽고 기발했다.
'노 장르'에 수록된 신곡이자 이번 콘서트로 무대를 최초 공개한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은 쉽게 떠올리지 못했던 '보이넥스트도어'와 '시티팝'의 조합이 상당히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곡이었다. 기타, 드럼, 피아노, 베이스 연주 덕분에 곡이 훨씬 더 잘 살았다. 멤버들의 청량한 음색이 강조된 '암네시아'(Amnesia), 가슴 뛰는 밴드 사운드 '페이드 어웨이'(Fade away)까지 더해져 가장 만족도가 높은 구간이었다.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록스타' 같이 펑키한 '아이 필 굿'(I Feel Good), 부모님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한밤중의 일탈을 개구쟁이의 시선으로 담은 '부모님 관람불가', 리우가 창작한 안무로 솔로 댄스 퍼포먼스를 펼친 '뭣 같아', 아마도 이날 공연 열기에 정점을 찍은 떼창 유발 곡이 아니었을까 싶은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는 보이넥스트도어의 기세가 빛을 발한 무대였다.
"상처 입고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을 위해서 노래를 해 줄 수 있는 팀"(명재현)이라며 준비한 '위로하는 곡'은 예상치 못했기에 새로웠다. 후반부 피아노 솔로 연주가 감미로웠던 미디엄 템포 발라드 '크라잉'(Crying)에는 같은 앨범 타이틀곡 제목인 '뭣 같아'라는 가사가 들어간 게 깨알 재미 포인트였다.
'디어 마이 달링'(Dear. My Darling)은 원핀 조명을 받으며 등장한 성호가 기타를 연주하려다가 '카포'가 없어 잠시 지연되는 가벼운 해프닝이 있었다. 도입부 기타 연주가 귀에 꽂히는 팝 록 트랙 '돌멩이' 또한 밴드와의 합이 잘 맞았다.
형 라인, 동생 라인으로 각각 나누어 유닛 무대를 공개하기도 했다. 올해 4월 팀 유튜브 채널에 올린 프라이머리의 '씨스루'는 성호-리우-명재현이, 데이식스(DAY6)의 '콩그레츄레이션'(Congratulations)를는 태산-이한-운학이 소화했다.
오프닝 멘트 때 명재현은 "마음에 드는 만큼 소리 질러!"라고 외친 후, 팬들의 함성이 어마어마하자 "꽤 맘에 드나 봄?"이라며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앙코르 메들리까지 27곡으로 이루어진, 빈틈없이 꽉 찬 이날 콘서트를 묘사하기에도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케이스포돔을 저희가 처음 왔지만, 3일 동안 콘서트 하니까 느낀 게 뭐냐면 정말 꿈꾸던 무대이긴 한데 원도어(공식 팬덤명)를 다 담기에는 너무 작다"라며 "원도어를 다 담을 수 있고 저희가 무한한 가능성의 무대를 다 보여드리려면 여기는 좁구나! 원도어를 더 많이 만나려면 우리가 더 많이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라고 한 성호는 가족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예삐캣삐 박성호' 등의 문구가 쓰인 현수막으로 응원하는 가족의 모습이 전광판에 비치기도 했다.
명재현은 콘서트 준비 중 힘든 일이 있어 혼자 오랫동안 걷고 돌아온 날, 운학과 이한이 달려 나와 '힘든 일이 있으면 제발 티 좀 내줬으면 좋겠다'라며 먼저 울었다는 일화를 전하며 본인도 울었다. 행복한 감정을 원도어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명재현은 "그런 감정을 음악에 잘 넣을 수 있게 하루하루 허투루 쓰지 않겠다.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다"라며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운학 역시 '우리 아들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는 어머니의 말을 전하면서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참다가 결국 울었다. 그러면서 이내 "큰일 났다, 오늘 친구들 왔는데!"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운학은 "단 한 순간도 잊고 싶었던 순간이 없을 정도로 너무 행복한 순간들이었고 그게 다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순간이어서 너무 행복했다"라고 밝혔다.
태산은 "'아, 우리 무대를 잘 즐겨주시고 계시는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잘 즐겨주셔서 굉장히 뿌듯했다"라며 "빨리 무대를 하고 싶다, 더 큰 공연장에서 볼륨 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재밌었다. 볼륨 원이 끝난다고 하니까 아쉬운 점이 남아있는데 팬분들과 저희가 볼륨 원으로서 정말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거 같아서 후회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저희랑 함께할 때는 계속 좋은 영향만 받았으면 좋겠다. 응원해 주시는 만큼 저희도 좋은 영향력 미치는 아티스트 되겠다"라고 덧붙였다.
이한은 "처음에 저희가 이제 막 데뷔했을 때는 음악방송 사전녹화 가면 딱 50명 정도 입장하셨었는데 딱 첫 방(송)할 때 그걸 보고 '와, 우리한테도 팬이 있네?' 너무 신기해 하면서 우리한테도 팬들이 찾아와 주셨다 하고 신났었다"라며 "앞으로도 이렇게 큰 무대에서 여러분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정말 많이 기대하고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다. 언제나 든든한 응원을 보내주신다는 거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형들과 운학이와 친구 태산이와 앞으로 나아가겠다"라고 말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던 운학이 무대 위에선 다시 노래하고 랩할 수 있고, 본인도 어제 침 맞고 오늘 물리치료 받았지만 춤을 추었다고 언급한 리우는 "원도어 앞에 서면 없던 힘도 다 나와서 결국은 보이넥스트도어가 된다고 말하고 싶다"라며 "늘 좋은 에너지만 받아 갔으면 좋겠다. 늘 앞으로도 여러분 옆에서 398년 함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시작해 총 13개 도시에서 23회 공연한 '노크 온 볼륨 원'은 이로써 마무리됐다. 보이넥스트도어는 오는 8월 2~3일(현지 시각)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그랜트 공원에서 열리는 '롤라팔루자 시카고'(Lollapalooza Chicago)에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