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일본과의 협상에서 최종합의에 방위비 문제를 포함시키지 않아, 사실상 관세와 안보를 묶는 '패키지딜'은 요원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과의 상호관세 부과시한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 양국 재무·통상 수장의 2+2 협의가 미 측의 요청으로 돌연 연기되는 등 어려움 속에 우리 정부는 막바지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외교가에 따르면 미·일 관세협상 결과 방위비 문제는 최종 합의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비공개 논의가 있었을 수 있지만 협상 결과에는 관세 및 통상 관련 내용만 포함됐다.
한국과 일본은 대미 무역 적자 규모나 지정학적 위치, 동맹관계라는 점 등 구조적으로 매우 비슷하다. 따라서 일본과의 협상에서도 미국이 원하는 방위비 인상 등이 포함될 것이란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협상 결과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김태황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트럼프가 '패키지딜'에 찬성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 '페인트(상대의 판단력을 흐리기 위해서 취하는 속임수)'였다"며 "지금은 미국의 단계적 딜에 응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우리 역시 패키지딜에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시간도 부족하다. 지금은 관세협상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이 타결을 이뤘다고 해서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면서도 "자동차와 철강에 집중해 상호관세를 맞춰야 한다. 정부가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FTA를 체결하지도 않은 일본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략을 전폭 수정하며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지만, 미국이 관세와 안보에 있어 각각 청구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커진 만큼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요한 것은 패키지딜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하는 '빅넘버'를 제시할 수 있느냐라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발표할 만한, '정치적으로 과시 가능한 숫자'를 제안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본과 미국의 협상에서도 결국 핵심은 일본의 '5500억 달러 대미투자'란 빅넘버였다. 양국 협상단은 투자펀드 규모를 4천억 달러 가량으로 논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으로 최종 합의에서는 5500억 달러로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최창환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의 5500억 달러 대미투자 합의는 눈에 띄는 빅넘버, 성과다. 우리가 거론하는 망사용료나 개별기업들이 발표하는 투자금액 등은 미국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며 "일례로 각 기업의 투자금액을 향후 3~5년치를 모두 모아 발표하는 식으로 의미있는 숫자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일본 역시 수차례 미국에 가 협상했지만 의미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듯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미가 당길만한 숫자를 제시하고 협상에 급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제시한 시한이 약 일주일 가량 남은 가운데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이견을 좁히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지시간 25일 열릴 예정이던 한-미 2+2 통상 협의'가 미국 측의 요청으로 취소돼 구윤철 기재부 장관의 출국이 취소된 상황이다.
24일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한미 간 협상이 막바지에, 꽤 중요한 국면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경제부처 각료들이 워싱턴에서 분야별 세부 협상을 하고 있다"며 "이 국면에서 제가 무역·통상·안보·동맹 등 한미관계의 전반에 걸쳐 총론적 협의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제 방문은 경제관료들이 하는 세부 협상을 지원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