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엔진 껐다'부터 발표?…사조위 조사방식 논란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9일 전남 무안공항에서 발생해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착륙 참사 원인을 조사 중인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참사기 엔진은 결함이 없으며, 엔진이 꺼져 있었다'는 중간 결론을 먼저 발표하려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사조위는 '조종사가 조류 충돌로 더 많이 손상된 엔진이 아닌, 반대편 엔진을 끈 정황이 있다'는 취지의 설명을 유가족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같은 내용의 언론 브리핑을 예정했다가 유가족 반발로 무산됐다.
 
유가족 측은 21일 CBS노컷뉴스에 "아무 증거나 근거 자료 없이 '이런 팩트만 확인했으니 믿으라'는 식의 조사 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받아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사고를 참사로 키운 로컬라이저 둔덕 등 다른 사안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채, 조종사 과실을 단정한 엔진 조사 결과를 먼저 공개한 데 의구심이 컸다.

조종사가 반대편 엔진 끈 정황 제기…유족 측 "섣부른 결론"

무안(전남)=황진환 기자

국토부는 지난 19일 오후 3시 무안공항 관리동 3층 대회의실에서 사조위의 '12·29 여객기 참사 엔진 정밀 조사 결과' 브리핑을 예정했지만, 오후 4시 30분 현장 브리핑이 취소됐다고 공지했다. 언론 브리핑에 앞서 유가족을 대상으로 먼저 조사 결과를 공개했는데, 유가족들이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언론 브리핑에 반대하면서다.

사조위는 유가족 대상 브리핑에서 '엔진 결함은 없었으며, 엔진이 꺼져 있었다'는 중간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조류 충돌 이후 조종사가 충돌로 더 크게 손상된 오른쪽 엔진이 아닌 왼쪽 엔진을 끈 정황이 있으며, 이로 인해 두 엔진 모두 출력을 잃으면서 엔진전력장치(IDG)가 작동을 멈춘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유가족 측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뒷받침할 근거 자료가 전혀 제시되지 않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가족을 대리하는 공익인권법재단공감 황필규 변호사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사조위가 '어떠한 조사를 했고, 결과가 이렇다'는 식의 결론만 얘기한 뒤, 유족들이 수치나 근거를 물어보면 다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며 "유족 입장에선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사조위가 유가족과 언론 대상 설명을 위해 준비한 4페이지 분량의 보도자료 중 조사 결과를 담은 분량은 1페이지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마저도 IDG가 작동을 멈춘 정황 등의 내용은 자료엔 적지 않고 구두로만 설명했는데, 추후 책임소재를 염두에 두고 "(정보를) 취사선택해서 편의적으로 얘기하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는 게 황 변호사 지적이다.  

사조위는 현장에서 수거한 엔진 2개를 모두 엔진제작사 사프란(Safran)의 소재지인 프랑스로 보내 검사를 진행해 왔다. 검사에는 사조위 조사관들과 프랑스 및 미국 조사당국 관계자들도 참여해 왔다.

항공사고철도조사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둔덕 감시 결과는 발표도 않고…조종사 책임부터 먼저 부각"

지난 19일 무안국제공항 관리동 3층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엔진 정밀조사 결과 브리핑이 취소된 후 김유진 유가족 대표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사조위의 조사 단계는 전체 9단계 중 5단계로, 분야별 사실조사 정보를 통합해 사실조사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공청회를 열어 사실정보를 검증·보완해 사고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황 변호사는 "조사 과제별로, 엔진이든 둔덕이든, 보고서가 채택되면 종합해서 공개하고 설명을 하든, 아니면 각각의 조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보고서를 발표·공개하고 '다만 다른 조사와 관련해 한계가 있는 점을 유의해 달라'는 식의 단서를 붙이면 될 일인데, 근거도 없는 앙상한 결론만 내밀고 나머지는 공개 안 하기로 했다"면서 "설명도 근거도 제시 안 할 거면 왜 이렇게 엔진에 대한 결론을 급박하게 내려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둔덕 관련해선 설명만 있었을 뿐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고 했다. 황 변호사는 "(사조위에)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나왔는데 왜 발표 안 하냐'고 물으니, '예민하고 복잡해서 안 된다'고 하더라"면서 "에어부산 화재 때는 1월 말 사고나고 3월 초쯤 국과수 감식 결과가 나와 사조위가 결과 발표를 했는데, 무안공항 둔덕은 이번에 설명하면서도 국과수 감식 결과는 공개를 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유가족 대표 김유진씨도 지난 19일 무안공항 언론 브리핑이 무산된 뒤 현장에서 취재진에게 "(유가족이) 먼저 (사조위에) 요청드린 기록들이 있다. 7개월 동안 요청한 기록들과 조사 결과를 먼저 공개하고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며 사조위 조사 과정의 독립성과 신뢰성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둔덕 조사 결과를 제외한 채 조종사 과실이 있을 수 있는 엔진 조사 결과부터 발표하려 한 사조위의 이번 브리핑 시도에 조종사들도 반발하고 있다.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는 21일 성명서를 내고 "사조위의 일방적인 발표를 강력히 규탄하며, 조종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맞선다"고 밝혔다.

협회는 "조류 충돌로 인한 양쪽 엔진 손상과 로컬라이저 둔덕이라는 중대한 위험 요인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종사에게 결정적인 과실이 있는 것처럼 국민에게 인식시키려 했다"면서 "아직 조사 중인 사안을 마치 결론인 양 왜곡한 것으로, 항공기 시스템 전반의 복합적 기여 요인을 무시한 잘못된 조사 행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조위는 불투명한 조사진행과 책임전가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비행기록장치(FDR), 음성기록장치(CVR)를 포함한 전체 사고 조사 관련 자료를 공개해 투명하고 공정한 조사를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또 "사고 조사에 유가족 단체가 지정하는 외부 민간 전문가를 참여시키고 조사 진행 전 과정을 재검토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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