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성> '제 2의 인생'이란 말을 많이 쓰지만요. 이 분처럼 제2의 인생을 여신 분은 많지 않으리라 봅니다. 강원도에서 교수로 정년을 맞이한 후 영화감독으로 데뷔해,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수상한 분이 있는데요. 이번주 위클리오늘, 단편영화 '웨딩드레스'의 김만재 감독 모시고 김 감독의 작품세계와 영화감독으로서의 제2의 인생은 어떠한지도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만재>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아직까지 감독이라는 호칭이 매우 낯선 김만재라고 합니다.
◇최진성> 환영합니다. 소개가 굉장히 독특하신데요?
◆김만재> 그래요? 쑥스러워서. 하하.
◇최진성> 이 소개를 왜 이렇게 하셨는지 저희가 잠시 후에 네 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은 감독이라는 호칭이 낯선 감독님의 이야기, 오늘 하나하나 풀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가 오프닝에서 말씀을 좀 드렸지만 제17회 서울 국제 노인 영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어떤 작품으로 수상하셨는지요?
◆김만재> 고맙습니다. '웨딩드레스'라는 작품으로 했어요.
◇최진성> '이건 어떤 영화제지?' 하고 봤는데 벌써 17회째를 맞이했다고 보면요. 역사가 돼 가고 있는 영화제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떤 영화제인지 간략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만재> 서울국제노인영화제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키워드가 '노인의 삶'이에요. 제가 출품했기 때문에 영화제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잘 몰랐어요.
영화제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소개해 드리면,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주최를 하는 거예요. 서울특별시립 기관인데, 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그 센터를 위탁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센터 관장님인 지웅 스님이 영화제 집행위원장도 겸하고 계시더라고요. 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스님이 집행위원장이시길래 불교계의 유명 감독이신가 착각했어요. 제가 아직 영화계를 잘 몰라서요. 하하.
◇최진성> (영화제를 면면을 보니) 최근에 화제였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나왔던 김금순 배우 홍보대사를 하기도 했었고요. 저도 영상 자료들을 찾아보니까 출품작들의 감독님들의 국적이 대만도 있고 해외 작품들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국제'라고 하는 타이틀이 왜 붙었는지 저도 알게 됐습니다.
◆김만재> 이게 '국제'하고 '국내'가 있고 (단편 뿐 아니라) 장편도 몇 편 있어요. 근데 장편은 경쟁하는 게 아니라 주최 측에서 다 초청하는 거고요. 그래서 경쟁하는 건 다 국제와 국내 둘 다 단편 영화만 하는 거죠.
◇최진성> 여기에서 더 의미 부여를 한다면 감독님의 작품 '웨딩드레스'가 단편 영화입니다. 결국 경쟁작이란 말씀. 하하.
◆김만재> 참, 그리고 덧붙여서 말씀을 드리면 여기는 청년 감독 부분하고 노인 감독 부분이 있어요. 제가 이거 신청을 할 때 어느 부분으로 할 건지 묻지도 않더라고요. 거기에 감독 나이를 쓰게 돼 있어요. 그래서 '내가 나이를 쓰면 알아서 노인 감독 부분이 되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분류를 했나 봐요.
◇최진성> 저도 보니까 청년 부문과 노인 부문이 있고, 실제로 청년 부문 수상한 감독을 보니까 젊으신 분이더라고요.
◆김만재> 그러니까 청년 부문은 무조건 주제가 노인에 관련된 이야기여야 되고요. 감독이 노인이면 꼭 그렇지 않아도 되나 봐요. 하하. 나이만 60세 이상이면 노인 감독으로 분류되나 봐요. 그러니까 이 '웨딩드레스'는 노인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선정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최진성>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니 더욱 궁금하거든요. 이번에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 '웨딩드레스' 어떤 작품이에요?
◆김만재> 그러니까 시작하게 된 게 원래는 제가 웨딩드레스에 관한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게 돼서 다큐를 찍을까 했거든요. 근데 그 (다큐멘터리의) 대상이 되시는 분이 결국은 처음엔 호응해 주다가 나중에는 자기 못 찍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니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다 노출돼야 되잖아요. 자기 이야기가.
그래서 제가 이제 그럼 극영화로라도 만들어야 되겠다고 만든 건데요. 처음 기획 의도는 '웨딩드레스가 여성들의 로망이라고 생각하는데 과연 그럴까? 안 그럴 수도 있다'라는 그 전제에서 시작을 했고요.
여기 딸과 엄마가 나오는데 딸은 스몰 웨딩을 하고 싶어 해요. 그래서 웨딩드레스 같은 것도 입고 싶지 않고요. 근데 엄마는 굉장히 형편이 어려워 가지고 결혼식을 못 했어요. 그래서 웨딩드레스를 못 입은 거죠. 근데 이 엄마는 웨딩드레스 갖고 연연하는 엄마는 아니에요.
그러다가 어느 날 죽은 남편이 남긴 웨딩드레스 사진을 보게 돼요. 그러니까 좀 신파조가 있긴 하지만요. 하하. 남편이 '너무 미안해서 자기가 결혼 몇 주년 땐 꼭 웨딩드레스를 입게 해주고 싶다'고, 사진 뒤에다가 손편지로 쓴 그런 사진을 발견한 거죠.
그러면서 엄마가 좀 가슴이 아련해지는 그런 찰나에 딸이 이걸 알고 '아빠 대신 내가 그 아빠의 소원을 이루어줘야 되겠다'라고 서프라이즈 선물을 엄마에게 해주는, 하여튼 그런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별로 그렇게까지 따뜻하지 않은 사람인데, 아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너무나 나 같지 않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최진성> 하하. 그게 또 영화만의 매력이 아닐까요?
◆김만재> 하여튼 이걸로 찍기로 했으니까 되든 안 되든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웨딩드레스와 관련된 온갖 이야기를 다 모아가지고 쥐어 짜내서 만든 거죠.
◇최진성> 작품 러닝타임이 13분 정도, 그러니까 20분이 채 안 되는 길이인데 어떻게 담았을지 아무리 찾아봐도 작품을 못 보겠더라고요.
◆김만재> 정 궁금하시면 저희끼리 조촐하게 상영회 하는데 구경하러 오세요.
◇최진성> 알겠습니다. 언제 하는데요?
◆김만재> 7월 달에 할 예정입니다.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 제가 협동조합 플랫폼의 멤버인데 조합원들 중에서 한 명은 감독으로, 또 한 명은 배우로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끼리 파티하자고 그래가지고. 곧 할 겁니다.
◇최진성> 수상을 하면 기념을 해야죠. 스토리를 말씀해 주셨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좀 전하고자 하는 감독의 메시지도 있을 텐데요.
◆김만재> 저는 웨딩드레스를 여성하고만 관여시키는 거는 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웨딩드레스를 입었으면 좋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 남성들이에요. 막상 엄마와 딸은 웨딩드레스에 관심 없는데, (남편은 웨딩드레스를 못 입혀줘서 미안해하고) 딸의 남자친구는 나중에 후회할지 모르니까 꼭 웨딩드레스 입자고 하고요. 그래 가지고 그런 정형화된 이미지를 조금 비틀고 싶었던 그 생각 그런 생각도 있었습니다. 근데 그게 그렇게 잘 표현됐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최진성> 잘 표현이 됐으니까 또 수상도 하시지 않았을까, 아니, 그런데 보니까 제작진 모두 강원 분들과 함께 또 만드셨다고요?
◆김만재> 네네. 이게 원래 미디액트에서 극영화 수업 들으면서 한 거거든요. 제가 원래는 다큐만 했기 때문에, 다큐라고 해봤자 두 편 만들었지만 그걸 하다 보니까 '내가 영화를 하려면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 동네에서는 시나리오 쓸 줄 알아야 되는구나' 하고 절실하게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막 공부할 데를 찾았는데 마침 시간이 딱 맞았던 게 서울에 있는 미디액트에서 극영화 수업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배웠는데 이걸 배우면 수료작이라는 걸 내야 돼요. 그래서 '수료작은 반드시 해야 되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제가 서울에 살지 않으니까 하기가 되게 힘들잖아요.
그래서 '그냥 나 혼자 강릉에서 찍겠다'고 작정을 하고 제가 인디하우스 조합원이어서요.
◇최진성> 인디하우스가 사회적 협동조합이죠?
◆김만재> 네, 강릉에 있는 독립 영화인들이 만든 사회적 협동조합이죠.
◇최진성> 보니까 조직된 지 한 6~7년 정도 된 것 같더라고요.
◆김만재> 네, 그래서 약간의 인맥도 있었어요. 제가 배우나 감독은 아니지만요. 그래서 다 그냥 SOS를 쳐가지고, 사실 배우도 못 구했었거든요. 강릉시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사무국장 허장휘씨가 엄마 역을 하기로 했는데, 엄마 역할을 제외하고는 캐스팅이 하나도 안 됐어요. 그 다음 주에 찍어야 되는데.
강원독립 영화계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이하음 배우가 있어요. 그래서 얼굴은 아는 사이니까 무작정 전화해가지고 "나 캐스팅 못 했다"고 그랬더니 "그럼 제가 딸 역할 해주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충분히 지불할 돈도 없다"고 그랬더니 "정확하게 알려주고 되는 대로 하면 된다"고 하는 거에요.
근데 "엄마 말고 다른 배우들 캐스팅 안 됐는데 어떡해요?" 그랬더니 "어떤 역이에요?"하더니만 자기가 연락해서 하여튼 거의 한두 시간 안에 다 캐스팅 해 줬어요.
◇최진성> 독립 영화계에서는 오랜 경력을 갖고 있는 배우들이니까, 뭐 사람들이 같이 도왔네요.
◆김만재>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정말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을 거에요. 친한 인디하우스 조합원은 "이건 너 혼자 만든 게 아니라 조합원들이 함께 만들어서 완성한 거기 때문에 정말 두 번째 작품도 만들 수 있는지 우리가 봐야 된다"고 했어요. 하하하.
여기에 감독의 실력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르니까요. 하여튼 스태프들이 저를 좋아했는데, 그 이유가 감독이 뭘 알아야지 지시를 내리는데 감독이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냥 배우들이 하라는 대로 하니까 "이렇게 말 잘 듣는 감독은 처음 봤다"고 그래서 저를 아주 좋아했어요. 하하.
거기에 촬영도 두 명의 감독들이 또 해줬는데 감독이 촬영 지시를 되게 잘 내려야 되거든요. 감독이 '콘티'라는 걸 만들어야 돼요. 근데 전 그걸 만들 줄 모르니까요. 유명한 봉준호 감독 이런 사람들이 만든 콘티집을 봤어요.
제 실력에 어떻게 그렇게 만들어요? 카메라 무빙도 모르는 판국에. 그래 가지고 굉장히 솔직하게, 저는 솔직하게 얘기했어요. "나는 카메라에 대해서 지시를 내릴 실력이 안 된다, 그냥 알아서 해줘야 된다"라고 했어요.
또 배우들한테는 "나는 액션 지시를 내릴 만한 능력이 안 된다, 그러니까 알아서 연기해 달라" 뭐 그냥 솔직하게. 제일 최악이 능력도 없는 게 능력 있는 척하는 게 제일 꼴볼견이잖아요.
◇최진성> 맞아요. 척하는!
◆김만재> 근데 저는 정말 실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처음부터 그렇다고 얘기하고 그렇게 시작했어요.
◇최진성> 솔직한 감독님 김만재 감독님과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하하.
◆김만재> 하하. 다들 힘들어 했어요.
◇최진성> 아까 말씀하셨지만 원래 다큐멘터리를 제작을 하고 또 관심도 더 많았던 분야가 다큐멘터리라고 하셨습니다. 보니까 데뷔작이 2021년에, 그럼 이게 다큐멘터리인 거죠? 'J와 나'. 이게 보니까 또 햇시네마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에요. 아니 근데 뭐 작품은 몇 작품 안 된다고 하시는데 내는 작품마다 상을 타시니까요.
◆김만재> 저는 다큐 작품이 너무 잘 돼 가지고요. 독립영화계는 내가 작품만 내기만 하면 상 받는 건가 보다 하고 정말 착각했어요. 하하.
근데 '웨딩드레스'로 극영화를 냈는데 너무너무 안 되는 거예요. 스태프들이 너무 고생했기 때문에 꼭 선정되고 싶었는데 말이죠. 수상이 문제가 아니라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싶었는데 너무너무 안 돼가지고 (낙심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서울노인국제영화제에서 선정해 줘서 정말로 정말로 정말 감사하게 여겼었습니다.
◇최진성> 이젠 그다음 작품에서는 감독님의 역량이 더 드러난다면 아마 동일한 결과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김만재> 처음에는 되게 수상에 연연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 저 1년 동안 공부는 엄청 열심히 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잘하는 게 공부하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는 되게 열심히 했고요. 그리고 제가 뭐가 부족한지, 자아 비판을 또 잘해요. 하하.
한 가지 또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저 같은 경우에는 정말 '강릉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게 가능했다고 할 수가 있어요. 많이 하는 질문 중에 '강릉이 되게 열악한 환경인데 이런 데서 어떻게 하느냐' 이거든요. 근데 실은 안을 들여다보면 정말 저는 강릉이 아니었으면 이런 건 저는 꿈도 못 꿨을 거예요.
왜냐하면 연구년을 할 때, '1년 동안 내가 새로운 걸 배워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가지고요.
◇최진성> 지금 들으시는 분들이 갑자기 영화 얘기하다가 연구년이 왜 나오고 하느냐 하는데 우리 감독님이 사실 감독 이전에 하시던 일이?
◆김만재> 네, 제가 돈 벌어먹고 살던 게. 하하.
◇최진성> 교수님이셨어요.
◆김만재> 강릉원주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에서 30년 동안 가르쳤어요.
◇최진성> 도시계획·부동산. 영화도 아니고?
◆김만재> 네, 전혀 상관없는.
◇최진성> 이화여대를 나오셔서 서울대학교 도시계획학 석사 하셨거든요. 박사는 또 미국에서 영화랑은 전혀 관련이 없었던 교수의 삶을 살아오셨던 거죠.
◆김만재> 제가 영화를 할 거라고는 저는 정말 상상도 못했었거든요. 이건 제가 원하던, 그러니까 원하는지와 상관없이, 그러니까 제가 계획한 삶은 아니에요. 10여 년 전에, 연구년 때는 1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거거든요. 표방하기는 자기 관련된 연구를 하라는 건데, 사실은 1년 동안 새로운 걸 하고 싶었어요. 완전히 나의 세계와는 다른.
근데 그때 든 생각이 '영상 미디어가 앞으로는 미래 세계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기술적인 걸 지금 1년 동안 배워야 되겠다' 그 생각이 딱 든 거예요. 그래서 강릉시 영상미디어 센터를 찾아갔더니 거기서 이마리오 감독이 다큐 수업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초 듣고 심화 듣고, 그때마다 작품 만들어 내라니까 또 만들어냈고요.
◇최진성> 정말 실례가 되는 질문이지만 그때 나이가 그럼 몇 살이셨던 거예요.
◆김만재> 하하. 제가 계산을 그런 걸 잘 못해서. 그래도 그때는 50대였어요. 50대. 심화 수업을 받을 때 만든 작품이, 제 말하기가 좀 그렇긴 한데 '50대에 고아가 된다는 것' 뭐 그런 거였거든요.
◇최진성> 궁금해지는 제목인데요?
◆김만재>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거든요. 한 5년쯤 더 사시겠다고 나름대로 제 인생에서 계획이 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에 관한 걸 만들려니까 기획하면서부터 울기 시작해 가지고 수업 시간에서 이거 얘기할 때마다 울었어요. 저랑 수업 같이 듣는 애들이 저보다 한참 어린 애들인데 막 울고. 또 맨 마지막 상영할 때도 앞에 나가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또 찔찔찔찔 울고. 그런데 그게 너무나 저한테 심리적 치유가 됐어요.
그러니까 이 작품을 통해서 엄마하고 정말 제대로 된 이별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영화와 예술이 심리 치료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 제가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것까진 좋은데 이게 (만들 때)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드니까. 제가 교수하면서 할 짓이 못 되더라고요.
1년 동안 저는 기술을 배우러 간 거지 다큐 작품하러 간 게 아니었는데, 이마리오 감독은 다큐의 정신과 다큐를 어떻게 만들어야 되는지 그런 기본 가치와 정신을 가르쳐 준 거예요. 그래서 그런 거 따라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아, 이게 다큐를 하려면 정말 자기를 드러내면서 해야 되는구나' 그것까진 좋았는데, 하여튼 에너지가 너무너무 많이 들어서 그때 포기하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 했죠. 제가 직업 윤리가 엄청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돈 받는 데가 있는데 뭐 딴 짓 하기는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그때 깨끗이 포기를 했는데요.
2021년에 강릉시 영상미디어센터에 사무국장 하던 허장휘씨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 제가 강릉 레드 스타킹이라는 독서 모임의 멤버였어요.
허 사무국장이 거기 와가지고 자기가 여성 감독과 강릉에 있는 여성 집단을 대상으로 다큐 수업을 하나 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뭐 그거 할 생각 있냐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 멤버들은 영화 만드는 게 뭔지 모르니까 다 철없이 그냥 다들 "아, 우리 해요. 뭐 하고 싶다"고 그러는 거예요.
하여튼 그래 가지고 난 속으로 '얘네들 너무 진짜 너무 모른다' 그러면서 할까 말까 되게 고민했거든요. 그러다가 '그냥 뭐 하자' 하고 또 조직에서 하는 일에 또 열심히 해야 되니까 했는데, 그래서 그때 'J와 나'를 만들었어요.
◆김만재> 근데 'J와 나' 만들어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사람들이 좋다고 안 그랬으면 저는 이걸로 끝났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저기 내는 데마다 막 선정이 되면서 관객들을 만나가지고 상영하고 또 비평가들이 되게 거친데 아주 독특하다고 계속 이렇게 하라고 막 그러면서 호평을 해주니까 '내가 영화에 재능이 있나' 하고 착각이 드는 거예요.
◇최진성> 하하. 착각이 아니죠.
◆김만재> 그래 가지고 '이제 정년퇴직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막 잘한다고 하니까 나 해볼까'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근데 극영화는 너무 경쟁이 치열하고 힘들어 가지고. 하하.
◇최진성> 사실은 이번에 우수상 수상하시면서 소감 들어보니까, "사실 이때가 나의 능력에 대해서 의심하던 때"라고 말씀하셔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김만재> 그런 말 했었나요?
◇최진성> 네. "나는 과연 능력 있는 사람인가"
◆김만재> 저는 그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불행하게도 제가 살던 때에는 우리나라가 너무 못 살아가지고 과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굉장히 그냥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살면서, 내가 뭔가 이루어내야만 하는, 저는 평생 그런 식으로 삶을 살아왔거든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에너지 들이고 돈 들이고 다 해가지고 극영화 만들었는데 아무도 안 본다? 그럼 나는 이렇게 재능이 없으면 하지 말아야 된다'고 저는 그런 생각이 좀 들거든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영화 만드는 애들이 이렇게 넘치는데, 나까지 그렇게 보태가지고 해야 되나' 이제 그런 찰나에, 제 자신이 이렇게 의심스러울 때 딱 의심스러울 때, 그래도 이렇게 상을 받으니까요. '너 포기하지 말고 다음 작품 그럼 또 해볼래?' 그런 위안을 주는 착각에 또 빠지게 해주는 거죠. 하하. 사람이 약간 좀 그런 게 있어야지. 하하.
◇최진성> 그러니까요. 또 상금도 받으셨어요.
◆김만재> 상금도 중요해요.
◇최진성> 다음 작품에 대한 또 하나의 시드가 된.
◆김만재> 제가 지금 시나리오 좀 쓴 게 있는데 요즘 좀 읽어보면, '웨딩드레스'보다는 성장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되게 이게 만족스럽고요.
그럼 뭐 해요? 시나리오는 영화로 만들어야지! 그래야 의미가 있는 건데 (공모전에) 계속 이게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이제 이걸 작품으로 만들면 '나는 감독으로 엄청 성장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다'라는 그 확신은 들어요. 그래서 얼마 전에 또 (시나리오) 공모전을 또 냈는데 뭐 될 것 같지 않아요. 하하.
◇최진성> 지금 말씀 들어보면 거의 '이제 그만둘까' 할 때쯤에 뭐가 또 결과가 들려오니까요.
◆김만재> 사람들이 "상금 300만원 받았으니까 여기다 돈 조금 더 보태 가지고 극영화 만들라" 이런 얘기 하는데, 그래서 '만들어 볼까' 뭐 그러다가 "난 만들 거다"고 또 큰소리 치고 다니고 있어요. 하하하.
◇최진성> 감독님들이 작품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건 바로 또 이런 건가봐요.
◆김만재> 그냥 자기 착각과 최면이 있어야지 계속해 나가지, 안 그러면 다운돼서 하기 힘들어요. 하하.
◇최진성> 착각과 최면이라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이것을 또 '철학'이라고 부르지 않잖습니까. 강릉에서의 열악한 이런 것보다도, 강릉에서 교수로서는 은퇴하시고 영화감독으로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강릉을 배경으로 지금 시나리오도 쓰고 계시잖습니까. 담아내고 싶은 어떤 그림들, 짧게 말씀해 주신다면요?
◆김만재> 제가 쓴 시나리오가 다 강릉 배경이에요. 그래서 'J와 나'에 나왔던 그 J가 독특한 사람이거든요. 그 사람이 사실 타로를 할 줄 알아요. 정년 퇴직한 교수인데.
거기에 이제 아이디어를 얻어서 정년 퇴직한 타로 할 줄 아는 교수가 죄책감을 느끼는 이 부분, 실제로는 죄책감을 느끼는 게 아닌데 약간 그런 설정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간 게 '타로의 그림자'라는 게 있고요.
강릉시 영상미디어센터가 폐관이 됐어요. 어느 날 갑자기. 그래서 제가 너무 열받아 가지고 그걸 또 모티브로 해 가지고 만든 시나리오도 있는데 그거는 제가 보기에 시나리오 수준이 낮아서 더 수정해야 돼요.
하여튼 이걸 다듬어서 하면은 이번에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 나가 보니까, 이 영화가 여기에 딱 맞는 작품이란 착각이 또 드네요. 하하.
◇최진성> 착각이 또 열매로 맺혀질 거라 믿습니다. 하하. 얘기 나누다 보니까 시간 정말 빨리 지나가는데 어떻게 보면 50대에 처음 영화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해서 퇴직 후에 60대에 또 이런 수상 소식도 전해주시는 보니까요. '나도 지금 해봐도 될까?'라고 고민하는 분들에게는 감독님의 스토리가 또 하나의 동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분들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생각도 해보게 되는데 혹시 그런 분들에게 영화의 꿈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혹시 해주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김만재> 제가 뭐 굉장한 사람은 아니지만 하여튼 '원하는 게 있으면 저질러 보시길' 정말 강력하게 추천 드립니다! 제가 50대 때 생각하고 한 게 아니라 그냥 한 거였거든요. 그다음에도 영화 'J와 나' 만들 때도 전혀 무슨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니에요. 제가 계획을 공부한 사람이지만 인생이 제 계획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 우연함이 주는 인생이 또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분이 계시면 일단 인근 미디어센터에서 교육 프로그램이 있으면 하여튼 좀 배우시면 너무 좋을 것 같고요. 근데 강릉에 있는 분들은 불행하게도 미디어센터가 없어져서 배우러 다닐 데가 없어요.
그래서 저도 이제 도계에 다니거든요. 왔다 갔다 3시간 걸리는데 거기 프로그램 들으러 다니고요. 속초도 이번에 개관한다고 그래요. 속초도 괜찮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다닐 생각이에요.
그래서 하여튼 저의 강력한 희망은, 시장님이 그러실지 안 그러실지 참 모르겠지만, 내년 예산에 강릉시 영상미디어센터 재개관을 위한 예산을 편성해 주시면 너무 감사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진성> 그 안에서 영화인의 꿈을 갖게 된 거니까요.
◆김만재> 그렇죠. 저는 나이는 이렇지만 강릉시 영상미디어센터의 '키즈'예요. 하하.
◇최진성> 앞으로 활동 계획은요?
◆김만재> 저는 이렇게 하다 보니까 같은 거를 하는 것은 심심해서 못 참는 것 같아요. 하여튼 그래서 다큐는 이마리오 감독이 제작하는 <열역학 제2법칙>이라는 다큐가 있어요. 거기에 다른 감독들하고 공동으로 다큐 작업에 참여하고 있고요.
그리고 시나리오도 계속 수정하고 계속해서 이게 공모전에서 떨어지거나 말거나 하여튼 내고 있고요. 그리고 이번 주 토요일부터는 장편 시나리오 공부하는 데 또 참여해 가지고 장편을 쓸 예정입니다.
제가 대단한 능력이 있거나 영화계에서 굉장히 어떻게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저도 너무너무 잘 알아요. 그래도 저 같은 사람이 뭘 하다 보면 '조금의 기회는 있지 않을까' 하여튼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은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신없이 이거저거 장르도 가리지 않고 영화 작업하잖아요. 이게 사실 남들보다 죽을 시간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저는 되게 열심히 작품을 만들어야 되더라고요. 뭐 하여튼 그런 취지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최진성> 저는 오늘 말씀 너무 재미있게 들었고 앞으로 또 활동하는 모습들도 기대되고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오늘 시간이 좀 남으면 노래를 들으면서 마치려고 했는데 시간이 안 될 것 같습니다. 근데 BTS를 정말 좋아하신다고요? 아미세요?
◆김만재> 네네, 좀 오래됐죠.
◇최진성> 얼마나 되셨어요?
◆김만재> 정확하게는 저도 모르겠어요. 다른 애들은 무슨 곡에 꽂히면서 아미가 됐다고 그러는데 저는 이게 일종의 사회 현상으로 분석하다가 걔네들한테 빠졌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명확하게 연도가 있는 건 아니에요. 하하. 참 어떨 때 '봄날'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버스 정류장, 어마무시한 자산인데 강릉에서 너무 천대 받고 있어서 너무 그게 가슴 아파요.
◇최진성> 그래도 다시 만들어서 지금.
◆김만재> 네, 있긴 있지만 그것과 연계해 가지고 해외에서 오는 아미들이 편하게 올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어요.
◇최진성> 그래서 어떤 곡 듣고 싶으셨어요?
◆김만재> 요즘 너무 덥잖아요. 그래서 신나는 제이홉의 신곡 '킬링 잇 걸' 들으면 우리 다 힘이 나면서 좋을 것 같아요.
◇최진성> 오늘 이곡 신청 받으면서, 최진성의 위클리오늘 정말 편안하게 얘기하시지만 또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김만재 영화감독과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만재>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