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울려퍼진 15글자의 '주문'에 희비는 엇갈렸다. 국회 소추인단 측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고, 윤석열 전 대통령 대리인단 측은 좌절에 휩싸였다.
이날 오전 11시 윤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오전 10시 10분쯤부터 100여 석 규모의 헌재 대심판정 입장이 시작됐다.
4818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첨된 스무 명의 방청객들은 주머니에 있는 소지품을 모두 꺼내고 외투까지 벗은 채로 금속 탐지 검사를 한 뒤에서야 심판정에 들어설 수 있었다.
선고 30여분 전인 오전 10시 24분쯤,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인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대심판정에 들어섰다. 다른 소추위원들과 국회 탄핵소추단의 법률대리인들도 머지않아 속속 도착했다.
오전 10시 35분쯤에는 윤 전 대통령 측 대리인들도 심판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서로 대화를 하기도, 휴대전화를 보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대리인 윤갑근 변호사는 통화를 하다 방청석을 바라보기도 했다.
방청석에는 박범계 의원, 이성윤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나경원, 박대출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리 잡고 선고가 시작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선고 전, 국회(청구인) 측 대리인들은 비교적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국회 측 대리인들은 서로 웃으며 대화를 하기도,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반면 윤 전 대통령 측 대리인들은 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대리인인 김계리 변호사는 헌재 관계자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선고를 고작 2분 앞둔 오전 10시 58분쯤, 대심판정에는 고요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앞서 미소를 띄며 인사를 나누던 국회 측 대리인들까지도 점차 말 수가 줄고 표정이 굳어가는 모습이었다.
오전 10시 59분, 8인의 헌법재판관이 대심판정에 들어서 착석하자 긴장감은 극에 치달았다. 오전 11시 정각에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지금부터 2024헌나8 대통령 윤석열 탄핵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첫 마디로 선고 낭독을 시작했다.
선고 초반부터 문 대행이 국회의 탄핵소추나 소추사유에 절차적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로 판단하자, 국회 소추인단 측 민주당 의원들은 방청석에서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반면 윤 전 대통령 측 대리인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5가지의 탄핵 소추사유(△비상계엄 선포 정당성 △계엄포고령 위헌성 △군·경 동원 국회 활동 방해 △영장 없는 선관위 압수수색 △법조인 체포 지시)의 헌법·법률 위반 여부를 하나씩 따져보던 문 대행은 결국 5가지 모두 위헌, 위법하다고 인정했다.
이에 윤 전 대통령 측 대리인 석동현 변호사는 계속해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고, 차기환 변호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든 채 눈을 멍하니 감고 있었다.
오전 11시 22분,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15글자가 이내 대심판정을 가득 메웠고, 양 측의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민주당 측에서 함성 소리가 터져나왔고, 박범계 의원은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심판정에서 박수소리도 잠시 새어 나왔다. 국회 측 대리인 장순욱 변호사와 김진한 변호사는 서로를 얼싸안기도 했다. 국회 측 대리인단은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뒤 대심판정을 떠났다.
반면 윤 전 대통령 측은 좌절한 기색이 역력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충격에 휩싸인 듯 기운 없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국민의힘 측에서 "역사의 죄인이 된 것"이라고 말하자, 민주당 측에서는 "누가 역사의 죄인인가"라며 맞받아쳤다.
그간 서로 '파면' 혹은 '탄핵 기각·각하'를 자신하던 국회 측과 윤 전 대통령 측이지만, 이날 오전 11시 22분 대심판정에 울려퍼진 단 15글자는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