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정부 개입 노동 탄압 당했다"

'반체제 운동'으로 규정하고 경찰 등 동원해 와해 시도
"종교·정치적 표현·노동기본권 등 침해…관련 기관들 사과해야"
진실화해위, 2023년 8월부터 관련 조사 착수
우리나라 노동·민주화 운동의 유산

인천도시산업선교회(현 미문의일꾼교회) 모습. 주영민 기자

인천도시산업선교회와 구성원 등이 군부독재 시절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탄압한 정부기관들이 사과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전날 열린 제103차 위원회에서 '인천도시산업선교회(현재 미문의일꾼교회)와 김정택 목사(75) 등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을 비롯한 17개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으로 결정했다고 2일 밝혔다.
 

'반체제 운동'으로 규정하고 경찰 등 동원해 와해 시도

이 사건은 1970~1980년대 인천도시산업선교회와 그 구성원들이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노동교육과 노동조합 설립 및 활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당시 국군 보안사령부(국군기무사령부)와 경찰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해 사찰과 위협을 받은 사건이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보안사령부는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인천의 17개 종교시설내사를 비롯해 민간인을 정보원으로 활용했고, 현역 병사를 투입해 동향감시 등의 공작을 계획·진행했다.
 
당시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역시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의 활동을 불순한 '반체제 운동'으로 규정하고 경찰과 당시 노동청(고용노동부) 등을 동원해 전담반을 구성해 조직 와해를 시도했다. 특히 인천도시산업선교회 구성원의 자택을 법원의 영장 없이 침입한 사실 등이 처음 확인됐다.
 
또 이 선교회에서 직책을 가지고 활동하던 김 목사 등에 대해서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친척 등 주변인까지 사찰하고 내사를 벌였으며, 이른바 '도시산업선교회계열 근로자'와 이들의 친인척·일반 신도까지 공작 대상으로 삼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종교·정치적 표현·노동기본권 등 침해…관련 기관들 사과해야"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이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인천도시산업 선교회와 구성원들, 일반 신도를 비롯한 관련 노동자들이 보안사령부와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국가 공권력으로부터 헌법상 종교의 자유 및 종교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일반적 행동의 자유, 노동기본권 등을 침해받았다고 본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보안사령부·중앙정보부·경찰·노동청 등 국가 공권력이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탄압하고 그 구성원들에 대한 인권을 침해한 사실에 대해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진실화해위, 2023년 8월부터 관련 조사 착수

앞서 진실화해위원회는 2023년 8월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 조사는 당시 선교회 소속 목사·실무자·교인 등은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신청하면서 이뤄졌다.
 
이 사건은 1기 진실화해위원회와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등의 조사에서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에 대한 국정원과 경찰 등 국가기관이 저지른 인권침해 피해가 일부 확인됐다.
 
그러나 당시 조사에서는 진실규명대상자가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의 구성원이 아니어서 구체적인 인권침해를 규명할 수 없었다. 이에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조사를 결정했다.
 

우리나라 노동·민주화 운동의 유산

인천도시산업선교회는 195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문제와 도시빈민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활동한 개신교의 산업선교 단체로 1961년 설립됐다.
 
이 교회는 1970년대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도시빈민과 직장인, 노동자들의 선교와 교양 교육, 구호 활동을 전개했으며, 노동자들의 소모임 구성, 노동조건 개선과 민주노조 운동을 지원했고, 민주화 운동을 진행했다. 우리나라 노동 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이 교회 담임목사였던 고(故) 조지 오글(1929~2020·한국 이름 오명걸) 목사는 1974년 11월 '인민혁명당 조작 사건(이하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양심수들을 위해 공개 기도회를 열었다가 박정희 정부에 의해 강제 추방된 바 있다.
 
인혁당 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의 조작에 의해 도예종 등의 인물들이 기소돼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날조사건이다. 국가가 법을 이용해 무고한 국민을 살해한 사법살인 사건이자 박정희 정권 시기에 일어난 대표적 인권 탄압 사례로 손꼽힌다.
 
이 교회는 1978년 파업 중이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반대파가 똥물을 뿌린 '동일방직 사건' 당시 조합원들이 피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 교회의 4대 총무였던 김정택 목사는 계엄 치하였던 1979년 11월 25일 서울 YWCA회관에서 열린 '위장결혼식' 집회의 사회를 맡았다가 국가 공권력의 사찰 대상이 됐다. 이 집회 참가자들은 당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앞장서 대통령을 간접선거로 뽑으려는 움직임에 맞서 대통령 직선제, 유신헌법 폐지 등을 요구했다. 이후 김 목사는 당시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고(故) 백기완(1932~2021) 통일문제연구소장 등과 함께 고문을 당했다.
 
이 교회의 소유권자인 기독교대한감리회유지재단은 인천도시산업선교회 건물과 경기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교회 건물은 '반드시 보존해야 하는 교회'라고 평가한 바 있다. 제암리 교회는 일제 강점기인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이 제암리교회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한 민간인을 학살한 제암리 학살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다. 즉 인천도시산업선교회 건물이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밀접한 제암리교회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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