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원 들인 부산 광복로 분수광장, 수개월째 운영계획 '無'

부산 중구, 21억원 들여 분수·미디어파사드 등 조성
관광객·인근 상인 "광장 있는 줄도 몰랐다"
활용 계획 안 세워…담당 부서도 시설마다 달라
시민단체 "안일한 행정…체계적 계획 수립 필요"

부산 중구 광복로 분수광장 전경. 김혜민 기자

부산 중구가 새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며 혈세 수십억원을 들여 광복로 분수광장을 조성해 놓고도 아직 구체적인 활용 방안조차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평일 오후 부산 중구 남포역 인근에 마련된 광복로 분수광장. 가동한 흔적이 없는 바닥분수 주변으로 물줄기 대신 커다란 화분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바닥에 설치된 조명시설은 화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분수 옆쪽에 세워진 대형 전광판에선 방문객 눈길을 사로잡을 이색 영상 대신 중구 홍보 영상만 반복 재생됐다. 이마저도 오후 6시가 되니 화면이 꺼졌다.
 

광복로 찾은 관광객들 "분수광장 어디 있나"

이곳을 지나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광장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전남 여수에서 온 김종숙(60대·여)씨는 "어디가 분수광장인가. 물이 안 올라와서 분수가 있는 줄 몰랐다"라며 "대형 스크린에서 영상이 나오는 것 같은데 잘 안 보인다. 걸어 다니는 사람보단 지나가는 차량에서 더 잘 보일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북 전주에서 온 여행객 구자옥(40대·남)씨도 "유심히 살펴보기 전까지는 분수인 줄 몰랐다"라며 "여름에 잠깐 시원하게 할 용도로 광장을 만든 건 아닐 거고, 관리 비용도 계속 들 텐데 차라리 365일 사용할 수 있는 그늘막이나 벤치가 있는 게 훨씬 도움 될 거 같다"고 말했다.
 
광장 조성으로 관광객이 유입될 거라고 기대했던 주변 상인들 사이에서도 쓴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근 식당 주인 이옥란(50대·여)씨는 "분수가 나오는 건 딱 한 번 본 것 같다. 가게 위치를 설명할 때도 '광복로 분수광장'이라고 하면 손님들이 '그런 데가 있느냐'고 되묻는다"라며 "일부러 이걸 보러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예산을 많이 들여 만들었는데 효과가 없는 거 같다"고 말했다.

부산 중구 광복로 분수광장 바닥분수 주변을 대형 화분이 가로막고 있다. 김혜민 기자

혈세 21억원 들였는데…시설만 '덩그러니'

광복로 분수광장은 지역 관광과 상권 활성화를 목적으로 중구청이 조성한 공간이다. 바닥분수와 미디어파사드, 조명 등을 설치하는 데 예산 21억원이 투입됐다. 이 가운데 10억원은 행정안전부 지방소멸대응기금이며, 시비 6억원과 구비 5억원을 매칭했다.

바닥분수는 지난해 11월 준공식 때 한 차례 가동한 뒤, 겨울철 결빙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한 번도 켜지 않았다. 바닥에 조명이 설치돼 있으나 이를 활용한 프로그램이나 계획도 없는 실정이다. 다대포 낙조분수를 운영하는 사하구가 겨울철에도 조명을 활용한 '빛 축제'를 열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대비된다.

계절과 상관없이 다양한 이색 영상물을 송출할 수 있는 미디어파사드도 이렇다 할 활용 방안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준공식 때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중구 소개 영상만 송출하고 있다. 관광객을 끌어들일 체계적인 정책 구상 없이 예산을 들여 시설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다보니 빚어진 사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부산 중구의회 강희은 의원은 "조성 전부터 인근 백화점에 대형 분수가 있어 비슷한 시설은 별 효과가 없을 거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중구는 유동 인구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조성에 나섰다"며 "지역 대표 랜드마크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으나, 현재 운영 계획조차 수립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광복로 분수광장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중구 홍보영상이 송출되고 있다. 김혜민 기자

애써 만든 시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태의 이면에는 구청 내부 '담당 부서' 지정 문제도 있다. 광복로 분수광장은 준공 때까지 중구청 건설과가 업무를 담당했는데, 이후 관리를 맡을 부서가 지정되지 않은 채 붕 뜬 상태가 이어졌다. 내부 논의 끝에 지난 1월 관리 부서를 정했는데 바닥분수는 안전도시과, 미디어파사드는 문화관광과가 운영을 맡기로 했다.

부산 중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시설 준공을 마친 후 올해 1월 관리 부서가 지정돼 아직 운영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라며 "바닥분수는 안전도시과에서 4~5월쯤 운영을 시작하려고 잠정 계획하고 있다. 미디어파사드는 문화관광과에서 하반기부터 자체 제작 콘텐츠를 마련해 구 시책 등을 알리려 한다"고 말했다.

지역에서는 지금까지 수개월째 시설을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한 데 더해, 같은 공간에 있는 시설을 서로 다른 부서가 맡으면서 향후 운영 시점이나 방법에도 엇박자가 나는 건 안일한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부산참여연대 양미숙 사무처장은 "세심하고 장기적인 계획 없이 예산을 썼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방소멸대응기금까지 투입해 지었다면 시설을 어떻게 운영할 지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당연히 수반돼야 한다"며 "이 시설 자체가 인구 소멸 해결에 정말 필요한지도 의문이지만, 기왕에 지었다면 운영 부서를 단일화해 체계적인 운영 계획을 세우는 등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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