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2심 무죄 판결에 민주당 비명(비이재명)계 대권 잠룡들의 표정 관리가 쉽지 않다. 같은 당원으로서는 반겨야 할 소식이지만, 대권 가도가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李 '1극체제' 질문에 답 피한 김동연…비명 잠룡들 '잠행'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27일 이 대표의 2심 판결에 대해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한다"며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이제라도 바로잡히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경기도 수원 광교중앙역에서 진행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촉구 1인 시위 중 이 대표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다만 취재진은 '이 대표 '1극체제'가 공고해질 수 있다는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는데, 김 지사는 이에 답을 하지 않은 채 "지금의 대한민국의 어려움과 경제 재건을 위해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인용이 빠른 시간에 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고 중요한 일"이라고만 강조했다.
김 지사는 전날인 26일에도 "사필귀정. 검찰의 과도한 기소를 이제라도 바로 잡아 다행"이라고 짧게 입장을 밝혔을 뿐 말을 아꼈다.
전날 이 대표의 무죄 선고에 "다행이다", "사필귀정"이라고 환영했던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이날 공식 일정을 소화하지 않았다.
2심 선고 후 곧바로 경북으로 향해 이틀째 산불 피해지역 민심을 살핀 이 대표와는 대조적인 행보다.
대형 산불에 이재명만 '주목' 효과
이들이 공개 행보를 줄인 데 대해서는 활동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치권의 시선이 윤 대통령 탄핵심판과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쏠려 있던 상황에서, 이 대표가 2심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크게 힘을 받은 탓에 개별적인 목소리를 내도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힘들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발생한 대형 산불도 비명계 주자들의 입지를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한 것으로 보인다.
원내 제1당 대표인 이 대표는 관련 지원을 약속하며 언론과 지지층의 관심 속에 현장을 살필 수 있는 반면, 비명계 주자들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이날 의성 산불 현장에서 진화작전에 참여했던 용인 서부소방서 대원들을 직접 찾아 격려했지만, 산불이 영남을 중심으로 일어난 탓에 진압에 직접 관여하는 등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김 전 지사는 14일 간의 단식을 마친 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이다.
'李 흔들기' 나서지 못하는 잠룡들…전진하기, 멈추기 모두 부담
이 대표의 선거법 재판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아직 남아있지만, 비명계 주자들이 이를 적극 활용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2심 판결이 감형 등 일부 유죄 판단이 아닌 완전한 무죄 판결이었던 데다, 당내 최유력 주자가 1심 실형에서 2심 무죄로 겨우 생환해왔는데 이를 소재 삼아 또 다시 흔드는 것이 맞느냐는 지지층의 비판 여론 또한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명계 원외 전직 의원 모임인 '초일회' 간사 양기대 전 의원은 SNS를 통해 "대법원이 조기 확정판결을 통해 롤러코스터 같이 혼란을 준 1·2심의 엇갈린 판결을 정리해줘야 한다"며 대법원의 판단 결과를 촉구했지만, 비명계 잠룡 사이에서는 관련 언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
남은 변수로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꼽히지만, 파면이 결정될 경우에는 힘 있는 주자론에 의해 이 대표 쏠림현상이 커질 수 있다. 윤 대통령 복귀가 결정될 경우에는 조기대선 자체가 물 건너가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비명계 주자들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러다 보니 비명 잠룡 측 인사들 사이에서는 조기대선이 성사되더라도 경선에 나가지 않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법리스크 부담을 상당히 덜어낸 이 대표를 상대로 경쟁을 펼쳤다가 자칫 강성 당원들에게 상처만 받은 채 향후 정치 활동을 도모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이 대표의 2심 판결에 대한 김 전 총리의 SNS글에 "전혀 의미 없는…"이라고 비판하는 등 감정의 골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 비명계 인사는 "2심 판결로 이 대표의 존재감이 어느 때보다 두드러지게 된 탓에 자칫 경선이 당 지지층에게 '선의의 경쟁'이 아닌 '이재명 대(對) 이재명을 흠집 내려는 사람들'의 구도로 인식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며 "이미 각종 행보를 통해 사실상 대선 준비 움직임을 노출한 터라 고심이 깊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