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에 나부끼는 마른 가지와 억새풀 그리고 그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는 거위,
이슬 맺힌 새벽의 고요 속에서 움직이는 작은 벌레들까지.
-백승주 작가노트
풀숲에 동물들이 어우러져 있다.
동물들의 표정이 하나하나 마치 도예처럼 입체적으로 표현돼 있다.
대표적인 한국화가 김선두 화백(67, 중앙대 한국화과 명예교수)이 지도하는 전통문화재단 평생교육원 수묵드로잉 작가양성과정의 졸업기념 개인전 '탕진수묵전'이 열리고 있다.
'탕진수묵', 수묵을 탕진(蕩盡)하다는 뜻이다. 기존의 수묵화를 탕진해 버리고 필묵의 탄탄한 기본을 토대로 자유롭고 새로운 자신의 형식을 지닌 수묵화를 그릴 수 있는 한국화 작가 양성을 목표로, 김 화백이 지도하고 있는 수묵드로잉 작가양성과정의 이름이다.

사군자의 선, 즉 곡선(蘭난), 직선(竹죽), 반곡선(菊국), 반직선(梅매)을 바탕으로 한 '수묵드로잉' 수업을 통해 작가로서의 기초를 다지고 현대 미술의 새로운 장을 여는 작가를 키워내는 과정으로 2019년 2명, 2020년 1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데 이어 올해 안현, 서정연, 백승주, 손현기 작가를 졸업자로 냈다.
'탕진수묵' 18번째 전시 도예가 백승주 작가의 개인전 '풀숲의 시간'이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영갤러리에서 열린다.
2008년 27회 서울현대도예 공모전 조형 부문에 입선하기도 했다.
20일 전시장에서 만난 백 작가는 "도예는 가마에서 작품을 굽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 크기에 제약이 많았는데 화선지에 제한없이 그리는 수묵화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스승인 김선두 화백에 대해 "수업에서 '눈 감고 그리기', '한 호흡으로 그리기', '대가(大家)의 선으로 그리기' 등의 고된 연습을 통해 어느 순간 왜 이런 작업을 하게 되는지 알게 된다"며 "덕분에 선이 바뀌고 과감하게 되고, 어느 순간 엄청 잘 그려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몇년 전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인간이 죽을 때 되게 마르게 된다"며 "'마른 풀'은 삶과 죽음의 경계인데, 슬프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생명이 나니까 그런 순환 같은 것을 표현했다"고 전했다.
'대가(大家)의 선으로 그리기' 과정에서 마티스의 선으로 그린 자신의 반려묘를 모델로 한 작품도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