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관 두통 일으킨 MWC…中 맹추격 손놓다 잡힌다[기자수첩]

MWC 화두였던 중국의 모바일·인공지능(AI) 굴기
화웨이 부스 찾은 과기부 장관 "머리 많이 아팠다"
화웨이, 전시장 1관 통임대, 삼성 정조준한 샤오미
중국기업, 전체 33개 부문 중 14개 수상…한국은 4개
"그래도 여전히 중국은 붙어볼만"…자체 AI 개발 계속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3대 IT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5'가 개막한 지난 3일(현지시간) 화웨이의 부스 전경. 연합뉴스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3대 IT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5'가 개막한 지난 3일(현지시간) 화웨이의 부스 전경. 연합뉴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CT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5' 출장을 준비할 때부터 주인공은 중국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제기된 중국 인공지능(AI) '딥시크 논란' 이후 별다른 공세를 취하지 않은 중국 기업들이 MWC에서 제대로 재도약을 다짐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래도 내심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더라'며 중국의 기술력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홈그라운드도 아닌 먼 나라 스페인에서 열리는 원정 경기를 중국이 얼마나 잘 치를 수 있을지 확신도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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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의심은 MWC가 열린 첫날, 그것도 행사장 입구에 걸린 화웨이와 샤오미의 큰 광고 현수막을 보면서 단 10분만에 가시기 시작했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는 전체 8개관 중 제1관을 통째로 빌려 전시를 열었다. 삼성전자 전시관의 5배 크기였다. 그리고 제1관의 절반은 따로 비즈니스 구역으로 설정해 사전 예약자들만 입장 가능하게 막아 놓았다. 가지 말라면 더 가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본능이자 본성이라고 했던가. 다행히 화웨이는 사전에 한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전시관 투어 예약을 받았던 터라 이튿날 입장 QR코드를 받고 들어갈 수 있었다.

화웨이는 세계 최초로 두 번 접는 폴더블폰(트리폴드폰) '메이트XT'를 선보였다. 여기에 운전자가 차량에 탑승하지 않고도 원격 조작이 가능한 5G 기반 원격 운전 시스템은 물론, AI 기반 콘텐츠 제작 기술도 선보였다. 기술 스케일이 남달랐다.
 

과기부 장관에게 두통을 선사한 화웨이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5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25'(MWC 2025) 현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5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25'(MWC 2025) 현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화웨이의 활약상은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머리도 아프게 했다. 직접 바르셀로나로 날아간 유 장관은 화웨이 전시관을 방문한 뒤 "머리가 많이 아팠다"고 본심을 말해버렸다.
 
유 장관은 지난 5일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취재진들과 만나 "화웨이가 워낙 급성장을 하고 있고, 얼마나 성장했나 보기 위해 들어갔는데 저도 놀랐다"면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도) 쉽지 않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화웨이의 소재·부품·안테나 기술이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일부 신기술은 미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라고 추켜세웠다. 중국을 '패싱'하고 있는 현 정권의 장관이 대놓고 중국을 칭찬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을 정도로 중국 기업의 기술력은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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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자기기 업체 샤오미 역시 독일 카메라 브랜드 '라이카(Leica)'와 협업해 고급 광학 기술을 적용한 '샤오미 15 울트라'를 한화 약 220만원 가격에 공개했다. 이는 삼성 갤럭시S 시리즈와 비슷한 가격대로 사실상 이제는 가성비가 아닌 기술로 직접 경쟁해보겠다는 의미였다. 적어도 이날 만큼은 '저가 중국산'이라는 표현이 무색해졌다.
 
샤오미가 스마트폰 카메라에 힘을 주자 때마침 삼성전자도 지난 4일 현지에서 국내 기자들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갤럭시 S25 시리즈의 '혁신적인 카메라 기술'을 강조했다. 이미 예정된 기자회견이었다고는 하지만 샤오미를 의식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실제 기자회견장 현장에서 샤오미 관련 질문이 쇄도했다.
 
제3관에 위치한 샤오미 부스는 연일 관람객과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오죽하면 국내 기자들을 대상으로 슈퍼카급 전기차 'SU7 울트라' 시승 예약을 받기로 했다가 취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중국 기업의 인기는 폐막 전날 열린 '글로벌 모바일 어워즈(Global Mobile Awards)' 결과로도 드러났다. 화웨이, 샤오미 등 중국 기업이 전체 33개 부문 중 14개 분야에서 수상했다. 한국은 SK텔레콤만 4개 부문을 수상하는데 그쳤다.

MWC에 참여한 한국 기업들도 AI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자체 AI를 기반으로 한 보안 관련 기술 등을 선보이며 선방했다.
 
하지만 미국 CES 대신 스페인 MWC에 전력투구하는 중국 기업들과 단순 비교하기에는 기술의 정교함이나 스케일 측면에서 떨어진다는 지적이 현장에서도 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 플랫폼 자체를 개발하는 것은 미국과 같은 패권 국가에서나 할 수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다만 플랫폼이 일단 갖춰지면 한국에는 유수의 데이터베이스가 있는 만큼, 그 어떤 나라들보다 AI 시대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체 AI 기술 개발에 완전히 손을 놓고 있다가는 과거 1980~90년대 일본의 '반도체 실기'를 답습할 우려가 있다.
 
유상임 장관도 MWC 현장에서 "미국은 돈, 기술, 인력 등 1국 체제라 싸우기 어렵지만 중국은 붙어볼 만 해 보인다"며 "대표 파운데이션 모델이 나올 수 있도록 빠르게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구입해 국가 AI 컴퓨팅센터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옛날 방식만 고집해 변화의 시기를 놓치면 아예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 꼭 1등이 될 수 없더라도 독자적인 AI 플랫폼 개발을 지속해야하는 이유다.

전 세계가 AI 전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 국가 주도의 빠른 상황 판단과 정책 추진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정치 상황 속에서도 과기부 등 정부 주도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불확실성이 다 걷히기를 기다리기에는 중국의 기술 추격이 너무나 빠르고 위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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