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가 검찰과 당내 인사들이 "짜고 한 짓"이라고 주장하면서, 비명(非이재명)계 잠룡들과의 연쇄 회동으로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던 당내 계파 갈등을 다시 끌어올렸다.
이 대표 측은 과거사에 대한 언급이었을 뿐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비명계는 이미 분노한 상황이다. 일각에선 이 대표가 유일하게 만나지 않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에 대한 앙금이 여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李 "검찰 수사와 당 유력인사 '사퇴종용' 시점 같았다" 폭로
이 대표는 5일 공개된 유튜브 '매불쇼'에 출연, 2023년 9월 있었던 체포동의안 표결 당시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해 언급했다. 자신이 당 대표로 있는 민주당에서 40여명에 가까운 가결 표가 나올 것을 "예상했다"면서, 이 같은 비명계의 행보 뒤에 검찰이 있었다고 주장했다.그는 "당시 검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벌인 일, 타임 스케쥴에 따라서 한 일 등과 당내에서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면서 나한테 비공식적으로 요구한 것, 협상으로 제시한 것을 맞춰보니까 이미 다 짜고한 짓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짰다는 증거는 없고 추측"이라면서도 "타이밍이 연관성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2023년) 6월에 민주당에서 유력한 분이 제게 '사법 처리가 될 것이니까 당 대표를 그만둬라. 그만두지 않으면 일이 생길 것 같으니 본인을 위해서나 당을 위해서나 (대표직을) 사퇴해라'"라고 말했다며 "시점도 정해줬는데, 나중에 보니 영장 청구 시점하고 딱, 거의 맞아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당시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됐던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해 총선 당시 '비명횡사'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대다수 탈락한데 대해서는 "당원들이 책임을 물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가결표를 던진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도 말했는데, 이 과정에서 "당이 살려면, 민주당이라고 하는 것을 '사적 욕망의 도구'로 쓰고 상대 정당 또는 이 아주 폭력적인 집단(검찰)하고 암거래를 하는 이 집단들이 살아남아 있으면 당이 뭐가 되겠느냐"고 거친 표현을 쏟아내기도 했다.
李 "이미 다 지난 일"이라지만 비명계 "뒤에서 칼 꽂아"
이같은 이 대표의 '폭로성' 발언에 대해 당내에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친명계는 당시 상황에 대한 일종의 소회이자, 당 개혁의 움직임이었을 뿐이라고 옹호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진행자가 이 대표의 지난 여정을 훑는 과정에서 '그 때는 이랬다. 저 때는 저랬다' 정도로 과거 일을 얘기한 것"이라며 "친명이나 비명 등을 크게 신경 쓴 발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표결 당시와 전후 상황을 고려했을 때 당 대표로서 어떤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의 차원"이라며 "앙심이나 보복 등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 본인도 이에 대한 의미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미 다 지난 일"이라며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당에 있는 모든 역량을 다 모아서 혼란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비명계가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도 "아직도 비명계, 그런 것이 (당내에) 있느냐"며 "입장이 다른 분들이 있겠지만, 이 엄혹한 환경에서 우리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우리가 할 일을 함께 손잡고 해가면 좋겠다"고 답했다.
반면, 비명계는 '음모론'이라며 거세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대거 낙선하며 원외에서 모임을 꾸린 비명계 조직인 초일회는 "이 대표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동료의원들이 검찰이나 국민의힘과 내통했다고 한 것은 동료에 대한 인격모독이고 심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즉각 막말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이 대표가 당내 통합을 얘기하면서 분열주의적 발언을 한 것에 대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웃고 뒤에서 칼꽂는 격"이라며 "통합행보는 쇼였느냐"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한 비명계 대권 잠룡 인사 측 관계자는 "비명계와의 통합행보로 공든 탑을 잘 쌓고 있었는데, 한 방에 무너뜨린 것"이라며 "비명계가 분노하는 것은 이 대표가 사실과 다른 얘기, 즉 민주당 의원으로서 검찰, 윤석열 정부, 한동훈 당시 법무장관과 손을 잡았다는 것은 굉장히 모욕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대표로서는 당시 전략을 당초 가결에서 '부결 호소'로 바꾼 것이 가장 아팠을 것"이라며 "그 결과가 공천 학살로 이어졌는데, 이번 발언도 이러한 정치보복의 명분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재명-이낙연 갈등 효과?…"이제는 통합대상 아냐"
당내 일각에서는 이번 폭로가 지난 대선 경선에서 이 대표와 경쟁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진 이낙연 전 국무총리에 대한 대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표는 최근 비명계 대권 잠룡과 연쇄 회동을 가졌지만, 이 전 총리와는 아무런 일정을 잡고 있지 않다.
이 대표 측은 이 전 총리와 일정을 조율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 전 총리 측도 만날 마음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의 관계는 과거 경선 과정에서 빚어졌던 상호비방을 기점으로, 최근까지도 악화일로다.
이 전 총리는 체포동의안 표결 당시 의원직 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를 따랐던 민주당 의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의혹이 당내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전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과 이 대표를 동시에 청산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보다 10살 이상 어린 이 대표를 '구시대의 인물'이자 12.3 내란사태로 탄핵심판 결정을 앞두고 있는 윤 대통령과 동급인 인물로 치부한 셈이다.
비명계 대권 잠룡 중 한 명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이에 대해 "우리는 통합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 전 총리는 배제를 이야기한다"며 "너무 멀리 나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 비명계 인사는 "이 대표와 이 전 총리는 '같은 하늘에서 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는 수준으로 멀어진 상태"라며 "이 전 총리는 이제 통합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