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북핵 대응책으로 제기되던 이른바 '핵 잠재력 확보론'이 다시 '신중론'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국제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만큼,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위원장 위성락 의원)는 지난달 28일 출범식에서 <트럼프 2기 한국의 북핵정책 - 북한 "핵보유국 지위"와 한국 "핵무장" 논쟁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국립외교원 전봉근 명예교수의 특별 강연을 진행했다.
핵무기의 원료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2가지다. 원심분리기 등을 통해 우라늄의 농도를 높여 농축한 고농축우라늄(HEU), 우라늄으로 원자로를 가동시킨 뒤 사용한 핵연료를 질산에 녹여 플루토늄을 뽑아내는 습식 재처리(PUREX)가 있다.
한국은 한미 원자력 협정에 의해 두 가지 모두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다. 다만 고위급 협의를 거치면 농축도 20%(저농축우라늄, LEU)까지 우라늄을 농축하는 일은 가능하다. 무기급으로 쓸 수 있는 우라늄의 농축도는 90% 정도다.
강연에선 우리가 이 같은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의 현실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전 명예교수는 "우리가 최소한 50년 동안 우라늄 농축·사용후 핵연료봉 재처리 기술을 갖길 원했는데, 단 한 발자국도 들어가 보지 못해서 이를 아는 기술자가 전무하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재처리는 난이도는 다소 쉽지만, 방사능 오염이 크게 생긴다. 원전의 10배쯤 나오는데, 원전도 짓기 어려운 마당에 재처리 시설을 어디에 짓느냐"며 "우라늄 농축은 방사능 오염은 별로 나오지 않지만, 자체적으로 기술을 만들어서 안정화시키는 데 3년 이상 걸린다. 그 동안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을 견뎌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처럼 농축·재처리를 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일본은 1950년대에 이미 기술을 확보했다"며 "1974년에 인도가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미국은 기존에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는 나라들이 새롭게 기술을 받지 못하게 하겠다는 원칙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버스는 이미 떠났다"며, 그 전에 기술을 확보한 일본처럼 우라늄 농축·사용후 핵연료봉 재처리로 '핵 잠재력을 갖자'는 주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최근 민주당에서는 '자체 핵무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당 인사 대부분이 주장하는 것처럼 '핵 잠재력'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었다. 우리 정부의 연속된 기조였던 '원자력 이용 확대'를 농축·재처리까지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17일 당 국방안보특별위원회 강연에서 개인의 생각이자 당론은 아니라고 전제를 달면서도 "핵무장이라고 하는 주제를 우리 스스로 금기시할 필요가 없다"며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관이 상시적으로 나와 있는데, 사찰을 받으면서 사용후 핵연료봉 재처리를 하자"고 주장했다.
같은 달 20일 민주당·조국혁신당 의원들이 모인 국회 한반도평화포럼 토론회에서도 세종연구소 이종석 명예연구위원(전 통일부 장관)·김정섭 수석연구위원(전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에 의해 우리가 핵 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북한 핵 문제가 더 이상 북미간의 협상으로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미중·미러 '신냉전' 구도의 일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북핵 문제가 단기간에 풀리기 매우 어려우므로 우리 또한 안전보장을 받기 위해 핵 잠재력 기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다만 민주당에서는 '핵 잠재력'이라는 용어에 대체적으로 선을 긋고 있다는 점이 여당과의 차이다. 평화적 이용을 추구하고, '무기로서의 전용'으로 비춰질 수 있는 용어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당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실제 속뜻은 비슷할지언정 그 자체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자체 핵무장 추진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전 명예교수는 "한미동맹이 깨지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플랜 B로서 핵무장이 필요할 수도 있다"면서도 "유일하게 플랜 C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에너지 안보, 즉 원자력의 지속적인 이용을 위한 평화적 농축·재처리를 하겠다고 하는 방법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원전을 27개 가동하고 있는데, 전 세계 농축 핵연료의 47%를 러시아가 공급한다. 미국과 서방은 이 핵연료 구매에 제동을 걸고 있다"며 "우리는 핵연료 30% 이상을 러시아에서 사오는데 정작 농축 시설이 없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원전이 27개나 되는데, 러시아에서 농축 핵연료를 사오지 않으려면 직접 농축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며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 평화용 농축 재처리를 해야겠다는 내용으로 공감대를 구축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힘을 합쳐 대미 외교를 할 때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위성락 위원장도 "최근 핵무장이나 핵 잠재력에 대한 논의의 한 자락이 우리 당으로도 들어와 있다"며 "지금부터 어떻게든 담론을 잘 만들어서 (정책) 방향을 정립해야 하는 과제가 앞에 놓여 있다"고 관련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