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중도보수' 선언에…당 안팎서 "정체성은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종민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중도보수' 선언으로 당 안팎에서 때 아닌 이념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이 극우 성향으로 치닫는 와중에 생긴 합리적 보수의 빈틈을 채우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당의 정체성을 외면한 언사라며 불편해하는 내부 기류가 적잖게 읽힌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실용주의 기치 아래 외연을 급박하게 확장하면서 스텝이 꼬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李 '중도보수' 언급에 비판 목소리 '봇물'


이재명 대표가 중도보수를 언급하고 하루 뒤인 19일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특히 비명계를 중심으로 거친 반응들이 이어졌다.

비명계 원외 모임인 '초일회'는 입장문을 내고 "당 대표가 당내의 민주적 토론과 숙의 과정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민주당을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말했다는 게 참 놀랍다"며 "이 말이 진지한 검토 속에서 나온 말이라면 정계개편을 해야 할 참이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의 중도보수 발언은 지난 18일 한 유튜브 방송에서 나왔다. 당시 이 대표는 "민주당이 중도보수 정권으로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 우리는 진보정권이 아니다"라며 "진보 진영은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집권당인 국민의힘을 대신해 민주당이 합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나온 발언이었지만, 보수와 오른쪽을 언급한 동시에 진보 정당임을 부정하는 어투로 전달되면서 논란을 샀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윤창원 기자

이 대표의 발언을 두고 쏟아진 비판의 목소리가 일제히 '정체성'에 초점을 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없다"고 꼬집었고,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이 대표) 혼자 규정하는 건 월권"이라고 거들었다.

비명계 인사인 박광온 전 의원은 "중도보수의 길로 가야 한다는 건 내 집 버리고 남의 집으로 가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초일회 간사인 양기대 전 의원은 "민주당은 적어도 중도를 아우르는 진보개혁정당"이라며 "민주당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발언에 귀를 의심했다"고 일침했다.

비슷한 반응은 당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비명계는 물론 친명계 의원들마저 표정 관리 속에 당혹감이 감지된다.

계파색이 옅은 한 민주당 의원은 "철학이 없다 보니 아무 얘기나 하는 것"이라며 "이 대표가 대세이다 보니 문제라고 생각해도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친명계 중진 의원은 "이 대표 발언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그렇다고 이 대표의 중도보수 발언에 동의할 수 있다고는 선뜻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도보수' 반복한 李…"스텝 꼬인 꼴" 지적


이 대표의 '갈 지'(之)자 행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는 모양새다. 주 52시간 예외 조항에 대한 입장 변화 등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외연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보인 엇박자가 이번 중도보수 발언에서도 드러났다는 평가다.

양 전 의원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진보 개혁'을 외치며 표를 얻었다.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필요할 때마다 정당의 가치를 뒤집는다면 어느 국민이 그 정당을 신뢰하겠냐"고 비판한 이유다.

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가 발언을 수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한 민주당 인사는 "외연을 확장하자는 말까지는 괜찮은데 중도보수라고 하면 결국 보수라는 말이다"며 "그렇게 말하면 잘못된 거고, 안되는 거다. 어떤 이유에서 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수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민주당 인사도 "선거용 발언이라고 해도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건 수용하기 어렵다. 이 대표가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오지만, 이 대표가 입장을 번복할 지는 물음표다. 이미 여당에서 이 대표를 겨냥해 '말바꾸기' 공세를 펼치고 있는 마당에 이번 발언마저 다시 담으면 공세의 빌미를 줄 수 있어서다.

실제 이 대표 역시 유튜브 방송 이튿날에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은 원래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보수"라며 "진보 정당은 정의당과 민주노동당 이런 쪽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같은날 MBC '100분 토론'에서도 "유럽 기준으로 민주당이 소위 좌파 또는 진보라고 할 수 있나. 거기에 전혀 못 미친다"며 "오른쪽이 다 비어 있는데 우리가 건전한 합리적 보수 역할도 해야 하지 않겠나"고 되풀이했다.

한 민주당 인사는 "이 대표도 자신의 발언이 이렇게 후폭풍을 몰고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당의 정체성을 논의 없이 규정한 터라 해명이 불가피할 텐데 동시에 국민의힘이 공세를 벼르고 있으니 이도저도 못하고 스텝이 꼬인 꼴"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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