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명 탄생" 70년간 산모·아이 지켜온 일신기독병원

지난달 일신기독병원서 30만 번째 아이 태어나
6·25전쟁 때 개원, 70여년 간 치료·돌봄 실천
선교자 맥켄지 자매가 설립…전쟁 당시 피난민 안식처 역할

지난달 일신기독병원에서 태어난 30만 번째 아기가 부모님 품에 안겨 있다. 일신기독병원 제공

70여 년 동안 무려 30만 명이 넘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첫 울음을 터뜨린 병원이 있다. 바로 부산 최초의 여성·영유아 전문 병원인 일신기독병원의 이야기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부산지역 여성과 신생아의 건강을 지켜온 일신기독병원은 저출생·초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지역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30만 번째 아이 탄생" 지역사회와 함께한 축하

평일 오후 부산 동구에 있는 일신기독병원. 병원 곳곳에서는 부모 손을 꼭 잡고 병원 복도를 걸어다니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산부인과 진료실 앞에는 젊은 부부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의료진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등 활기를 띠었다.
 
이곳에서는 개원 이래 30만 명이 넘는 아이가 태어났다. 30만 번째 신생아는 건강한 남자아이로, 지난달 13일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왔다. 병원은 지난 19일 축하 행사를 열고 많은 이들과 특별한 날을 기념했다.
 
행사에는 병원에서 태어난 5만 번째 아이부터 소아과 의사가 된 20만 번째 아이, 다둥이를 출산한 가족들, 부산시 관계자 등이 참석해 30만 번째 아이 탄생을 축하했다. 몇몇 가족은 각종 공연을 준비해 선보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의 아낌없는 축하에 산모 이혜람(36)씨도 벅차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씨는 "가족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감사패까지 받아 참 감사하고 기쁘다"면서 "남편과 11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나이가 좀 있던 터라 걱정하던 차에 선물처럼 와준 아이다. 건강하게만 자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6·25 전쟁 때 개원, 피난민들 안식처부터 산파 역할까지

일신기독병원에서 30만 번째로 태어난 아이를 위한 축하 행사가 열렸다. 일신기독병원 제공

올해로 개원 73주년인 일신기독병원은 그동안 부산지역 여성과 신생아 건강을 위해 헌신해왔다. 처음 문을 연 건 6·25 전쟁 당시인 1952년으로, 호주 장로교 선교사이자 의료인인 맥켄지 자매가 설립했다.

당시 의사였던 매혜란, 간호사였던 매혜영 자매는 주변의 도움으로 유치원 건물을 빌려 '일신부인병원'이란 이름으로 개원했다. 병원은 피난민들뿐만 아니라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고 홀로 자식을 돌보는 여성과 산모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이들 자매는 1980대까지 의료 환경이 열악한 대저와 철마 등 농어촌 지역을 직접 방문해 환자를 돌보기도 했다. 또 남녀 쌍둥이가 태어나면 딸을 굶기는 차별이 존재하던 시절 아이를 모두 데려와야 치료를 해주거나 구호품을 제공하는 '쌍둥이 파티'를 열기도 했다.

맥켄지 자매는 생전 "병원을 시작할 때부터 우리 도움이 필요한 환자는 반드시 치료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며 "치료할 수 있는 한 누구도 돈이 없다는 이유로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특별한 순간으로 채워진 역사…병원 "지역 사회서 사랑 실천할 것"

일신기독병원 신생아 집중치료지역센터에서 한 아기가 치료받고 있다. 김혜민 기자

개원 이래 30만 명이 넘는 아이가 태어난 만큼 병원에는 특별한 사연도 많다. 1967년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할아버지부터 엄마, 딸까지 3대가 태어나기도 했고 1980년에는 병원에서 네쌍둥이도 탄생했다. 한 부부는 10남매 가운데 7남매를 일신기독병원에서 낳았다. 1992년 10월에는 하룻밤에만 46명의 아이가 세상과 만나기도 했다.
 
지난해 불법체류자 신분인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직후 출생등록도 하지 못한 채 홀로 남겨진 동민이(가명)를 위해 일신기독병원 간호사들이 백일잔치를 열어준 따뜻한 사연도 많은 이들에게 주목 받았다. 1.2㎏로 태어났던 동민이는 지역 사회의 도움으로 부산의 한 기관으로 옮겨져 돌봄을 받고 있다. [관련기사 24.07.03 CBS노컷뉴스=외국인 부모에게 버려진 중증장애아 '동민이'…출생신고조차 안돼]
 
부산시는 일신기독병원이 지역 의료 체계를 크게 개선한 점을 인정해 2022년 생활문화 분야의 '부산미래유산'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일신기독병원은 저출생이 심각해지는 현실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병원이 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일신기독병원 홍경민 원장은 "신생아 중환자실을 1차 병원에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그럼에도 산모들의 안전한 출산을 위해 유지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맥켄지 자매를 통해 병원을 세웠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그동안 해왔던 국·내외 선교활동을 이어가고 의료진을 보강해 생명을 살리겠다. 공의를 행하는 병원, 사랑을 실천하는 병원이 되겠다"고 말했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