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아상 좀 먹으면서 해도 되죠? 너무 허기가 져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허겁지겁 빵을 베어 물며 환하게 웃었다. 세계경제포럼이 열린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밤(현지시간 22일) 동행 기자단과 다보스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포럼 정규 프로그램 참여는 물론, 각국 정상급 인사들을 비롯한 글로벌 최고경영자들과의 개별면담이 시시각각 잡히면서 김동연식 출장 일정엔 제대로 된 끼니를 넣을 '틈'이 없었다.
다보스 포럼을 위한 해외출장 5박 7일(18~24일) 일정에서 이동 중에도 그는 손에서 서류들을 놓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향하는 열차에서는 세계 유수 언론사들 앞에서 발표할 영문대본이 4차례에 걸친 수정 끝에 완성됐다.
김 지사에게 시차적응은 무의미해 보였다. 호텔방에서 참모들과 함께 밤샘 토론을 하면서도, 노트북 앞에 앉아 도청 간부들에게 트럼프 2기 대응전략 마련과 설연휴 비상대응을 원격 지시했다.
12.3 내란사태로 촉발된 국가적 위기 상황은 그를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로 가든 진이 다 빠질 정도인데, 이번엔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 같다." 일정 말미에 경기도 한 관계자는 이번 출장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말했다.
출국 전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를 받은 상태였다. 정치적 주목도냐, 국가경제 회복이냐. 늘 그랬듯 선택은 '진정성'이었다.
김 지사는 "워싱턴과 다보스를 놓고 진지하게 검토했는데, 과감하게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경제올림픽인 다보스 포럼에서의 금메달 같은 성과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크게 3가지다.
국제 지도자·언론 앞에 선 김동연, 위기의 대한민국 '메신저'
김 지사는 "경제부총리 출신 국가대표로서 한국경제의 잠재력과 회복탄력성을 설명하면서 우리 경제에 대한 '확실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데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힘을 줬다. 내란 사태로 위기에 처한 국가경제 회복을 위해 한국경제의 저력을 알렸다는 취지다.
이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는 불법 계엄 선포의 주체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빠른 탄핵'과 '조기대선', 또 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에 대한 심판에 따른 '정권교체'를 들었다.
김 지사는 2단계로 정책 가치의 대전환을 제시했다. "새 정부가 재정(확장), 미래산업, 기후변화, 사회안전망 등에서 정책을 선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트럼프 2기와 대외경제 위기 대응을 위해 '경제전권대사'를 여야정 합의로 임명하는 솔루션도 얘기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국가경제 '불확실성 제거'를 위한 대외적 메시지들은 포럼 내 여러 세션과 미팅 등을 통해 다각도로 전파됐다. 미국과 영국, 중국, 말레이시아, UAE 등 20명 가까운 해외 유수 언론사 기자, 편집장 등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리더 브리핑'이 첫 번째 무대였다.
다만 김 지사는 해당 회의에서 만난 지도자들에게도 "한국의 저력은 여전하다"는 의미를 전하면서 자신의 명함에 'Trust in korea(한국을 믿어라)'를 적어줬다고 한다.
또 이날 얀 르 빨레 S&P 글로벌 신용평가사 사장과도 만나 한국경제에 관한 대외신인도 전망과 과제 등을 논의하며 향후 적극적 협력을 당부하기도 했다.
글로벌 유니콘-韓 스타트업 '협업 비즈니스' 채널 확대
김 지사는 포럼 첫날 '이노베이터 커뮤니티 리셉션'에서 인공지능, 바이오, 기후테크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경기도와 협력 관계를 강화할 글로벌 알짜 유니콘(회사가치 1조 원 이상의 스타트업) 기업 20여 개를 직접 선정(타깃)해 CEO들과 집중 면담했다.
이를 토대로 포럼 마지막 행사인 '경기도와 혁신가들'을 통해 도와 도내 스타트업, 해외 기업 등이 협업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간 김 지사가 주력해 온 '스타트업 천국 경기도'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이와 함께 미래산업 분야의 여러 글로벌 대기업 CEO들과도 잇따라 만나 도내 연구개발(R&D)센터 및 클러스터 조성 계획과 지자체·대학·기업 간 협업 방안 등을 제안했다.
'청정 전기를 향한 경주' 세션에서는 보다 효율적인 신재생에너지 시스템 혁신 등에 관한 논의에 참여하는가 하면, 미국 블룸에너지(연료전지·탈탄소화 서비스)와 이콜랩(용수처리), 시스코(IT) 등 글로벌 기업 CEO들과 경제협력을 의논했다.
정권교체 후 새 정부에서의 정책적 '밸류 체인지(가치 변화)' 사례를 직접 만들어낸 셈이다.
김 지사는 "올해 다보스에서 세계 지도자들은 지능형 시대의 뉴 그로스(새로운 성장)를 논하며 부주제로 신성장모델 발굴, 기후변화, 사람에 대한 투자, AI기술개발 등을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와의 관계에 있어 국내 정치 지도자들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국내 지도자들은 이런 것들과 완전히 유리돼 있고, 불확실성을 야기하는 문제에만 몰두하면서 정치적 계산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리더들이) 우물 안 개구리가 돼서는 안 되고, 미래의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데 보다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라인까지 올라 탄 金…대통령급 외교 인맥
미국 유학파인 김 지사는 영어로 모든 프로그램과 개별면담을 막힘없이 주도했다. 지난 미국, 유럽 출장에서도 김 지사는 해외 정상급 인사들의 관심사를 파고드는 스몰 토크(소소한 일상 소재의 대화)로 라포(상호 신뢰 관계)를 형성해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 취임식에 가지 않고도 김 지사는 WEF를 찾은 트럼프 1기 핵심 참모들을 잇따라 만나 외교적 교두보를 마련해 나갔다. 트럼프식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게리 콘 IBM 부회장과 백악관 수석대변인 출신인 사라 샌더스 미국 아칸소주지사 등을 차례로 만났다.
게리 콘 부회장이 골드만삭스그룹 사장을 거쳐 지금은 글로벌 첨단산업을 선도하는 IBM을 이끌고 있는 만큼, 김 지사는 자신의 시그니처 산업정책 분야인 인공지능과 데이터, 클라우드 등에 관한 견해를 공유했다.
김 지사는 "IBM에는 경기도 공공기관, 대학 등과 공동 R&D 센터 사업을 비롯해 양자역학 기술 인재 양성, 양자 관련 스타트업 등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며 "AI 클러스터, 데이터센터 구축과 청정에너지 사업 추진 등에도 협력 관계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사라 샌더스 주지사는 '배터리·모빌리티·스타트업' 분야에 대한 공감대를 앞세우면서, 이에 관한 김 지사의 협력 강화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김 지사는 "트럼프 대통령과 밀접한 인물들을 다양하게 만나 협력 관계를 다지고 교두보를 만든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 외에 미국 부통령을 지낸 엘 고어와의 세 번째 만남을 통해 김 지사가 앞세워 온 기후변화 대응에 관한 의견을 나눴고, 싱가포르 경제부총리와 프랑스 통상장관과도 만나 협력을 약속하고 초대장을 나눴다. 프랑스 장관과는 전화번호로 채팅앱 친구를 맺으며 우의를 다졌다.
앞서 내란 사태 국면에서도 그는 외교 상대국 지도자들과 경영인 등에게 한국에 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2500통 넘는 '편지'를 보내며, 경제외교에서의 충격 완화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