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레전드가 축구화를 벗었다.
구자철이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구자철은 "은퇴를 수 년 전부터 생각하고, 준비했다. 근육이 버티지 못한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시간이 반복됐고, 미련 없이 축구화를 벗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와 제주에서 은퇴하는 것이 꿈이었다. 꿈을 이뤄 감사하다"고 말했다.
구자철은 한국 축구의 레전드다. 연령별 대표팀 주장을 거쳤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주장을 맡았다. 프로 생활도 화려했다. 제주SK FC에서 데뷔해 독일(볼프스부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마인츠), 카타르(알가라파, 알코르)를 거쳐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20세 이하 대표팀에서 16경기(5골), 23세 이하 대표팀에서 16경기(5골), 그리고 국가대표로 76경기(19골)를 소화했다. 20세 이하 월드컵을 시작으로 올림픽, 월드컵 무대를 모두 밟았다.
구자철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사실 축구화를 신고 있을 때가 아니다. 런던 올림픽에서 단상에 올라갈 때, 동메달을 목에 걸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상대에서 대한민국 국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활짝 웃었다.
각급 대표팀에서만 29골을 넣었다. 그 중에서도 2009년 20세 이하 월드컵 미국전 페널티킥, 2011년 아시안컵 호주전 골, 2016년 우즈베키스탄과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골은 구자철에게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다.
구자철은 "미국전에서 페널티킥을 넣은 뒤 팔을 벌리고 세리머니를 했다. 이 전율을 위해 과정의 고통을 이겨냈구나 하는 느낌이 아직도 팔에 남아있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아시안컵 호주전이다. 중요한 경기에 골을 넣었을 때의 짜릿함이 있다. 공을 잡고, 원하는대로 터치가 되고, 원하는대로 구석으로 찼을 때의 짜릿함이 아직 발 끝에 남아있는 것 같다"면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의 우즈베키스탄전 골도 이상하게 잊혀지지 않는다. 홍철이 크로스를 올리고, 김신욱이 떨구고 내가 왼발로 골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이내 "죄송한데 3+1은 안 될까요"라면서 한 골을 추가했다. 바로 런던 올림픽 한일전(동메달 결정전)에서 넣은 골이다.
구자철은 "사실 메이저 대회에서 다 골을 넣었다"면서 "올림픽 때 자꾸 골이 안 들어갔다. 1, 2차전에서 연거푸 골대를 맞혔다. 필요할 때 넣겠다는 생각으로 참았다. 사실 브라질전(4강)에서 골을 넣고 싶었다. 한국 최초 메이저 결승이라는 대기록을 만들고 싶다는 이상한 욕심에 사로잡혔다. 골이 안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간 한일전에서 1년 전 아픔과 부끄러움을 털어낸 골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당연히 아쉬운 순간도 있다. 바로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다. 여전히 구자철에게는 아픈 기억이다.
구자철은 "아픔과 속죄, 아쉬움이 있다. 지금까지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면서 "그 때 너무 어렸다. 프로필에 대표팀 최연소 주장, 월드컵 주장 타이틀이 따라오는데 개인적으로는 자랑스럽지 않다.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들에게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당시 그런 생각이 부족했다. 그 경험을 통해 성장했지만, 내 부족함 때문에 결과가 아쉬웠다. 특히 월드컵이라는 대회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덕을 볼 수 있는 분들에게 죄송하다. 아직 2014년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 축구 선수 구자철을 더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구자철은 제주SK FC 유스 어드바이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제주를 위해, 또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하겠다는 계획이다.
구자철은 "내가 받았던 사랑, 누린 경험을 통해서 우리 세대에서는 한국 축구를 위한 변화에서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면서 "독일에서 행정, 유소년 파트에 심혈을 기울였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구자철은 어떤 축구 선수로 기억되고 싶을까.
구자철은 "우리나라 최초로 올림픽 동메달을 딴 멤버 중 한 명으로 기억되면 행복할 것"이라면서 "2014년에는 아픔을, 2012년에는 즐거움을 준 것 같다. 즐거움을 준 선수, 팬들을 기쁘게 했던 선수로 남고 싶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