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5명 중 1명'(전체 주민등록인구 5122만여 명 중 1024만여 명)이 만 65세 이상인 사회. '12·3 내란 사태'가 터진 지난해 연말, 한국은 예상보다 한 걸음 빨리 '초고령사회' 반열에 들어섰다. 유엔(UN) 기준으로 고령사회(전체 인구 14% 이상)에 진입한 지 7년 만이다.
정년연장 등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노인인구 증가를 상쇄할 저출생 추세 반전은 녹록지 않고,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인 '국민연금 개혁' 또한 탄핵정국과 함께 표류하는 모양새다.
내달 발표될 지난해 합계출산율(가임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9년 만에 반등할 것으로 보이나, 전반적 흐름 자체의 역전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인구전략기획부(인구부) 신설'은 현 정부에서 불가능할 거란 전망과 더불어, '포스트 윤석열' 체제를 본격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산율 '반등' 유력…"尹정부 정책효과로 보긴 어려워"
소수점이나마 내리막에 변화가 생길 경우, 이는 2015년(1.24명) 이후 9년 만의 반등이다. 분기 기준 출산율은 작년 3분기 0.76명을 기록하며 이미 오름세 전환에 성공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출생아 수는 19만 9999명으로 재작년 동기간 출생아(19만 6193명)를 웃돌았고, 특히 10월 월별 출생아는 2만 1398명으로 전년도 대비 2520명(13.4%)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인구동향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연말 출생아 수가 기대보다 많이 오른 것 같다. (연간 출산율이) 오르긴 오를 것"이라며 "다만 직전 해(2023년)에는 (전년 동기간 대비) 하반기 출생아 감소 폭이 10% 이상으로 컸던 만큼 기저효과가 나타나기 쉬웠던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한층 고무된 모습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주형환 부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제7차 인구비상대책회의에서 "(2024년) 합계출산율은 당초 예상한 0.68명을 훨씬 상회하는 0.74명 수준, 출생아 수는 23만 명대 후반을 기록할 것"이라며 "향후 더 큰 변화를 예고하는 희망의 신호"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현 정부 인구정책에 관여했던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前저고위 민간위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출산율의 일시적 반등은 인구구조상 어느 정도 '정해진 미래'였다며 "(잠정전망치) '0.75'는 호들갑 떨 수치도 아니고,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숫자(출산율)"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지난 몇 년 동안은 19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이 주로 아이를 낳았는데, 80년대 후반 출생아가 연간 62만~63만 정도"라며 "그랬다가 올해로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는 (만)31세가 된 94년생이 72만 명 가량 된다. (같은 출산율이어도) 이들이 아기를 낳으면 출생아가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임기 내 출산율 반등 및 '2030년 합계출산율 1.0명 회복'을 공언한 윤 정부의 정책효과 때문이라기보다, 모수(母數)가 커진 데 따른 착시효과라는 해석이다.
같은 센터의 이상림 책임연구원(前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모니터링평가센터장)도 비슷한 평가를 내놨다. 이 책임연구원은 "사람들이 (출산·양육 지원)정책을 시작한다고 아이를 바로 낳지 않는다"며 "'반등'이라기보다, '하락이 멈췄다' 정도로 보는 게 맞다"고 바라봤다.
'인구부' 공은 野로…"축소사회 대응 등으로 가야"
인구문제에 대해 수차례 해결 의지를 보인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부총리급 전담부처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비상계엄 여파로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가 되면서, '현상 유지'에 급급한 정부가 이 과제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 보는 시각은 '제로'에 가깝다.
인구부가 현실화되려면 정부조직법 개정이 필수인데, 탄핵 정국 속 여야는 첨예하게 대치 중이다. 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던 행정안전부는 내란사태 후폭풍으로 장관이 물러나며 수장이 공석인 상태다.
향후 탄핵심판 결과에 따라 조기대선이 유력한 가운데 사실상 '인구부의 공은 야당에게 넘어갔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조 센터장은 "(인구정책 측면에서) 앞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의 시간'"이라며 "과거 집권 시처럼 젠더 문제나 일·가정 양립만을 강조할 경우, 우리는 계속 이 상태대로 가면서 (출산율이) 0.75가 0.76이 되면 좋아하고, 0.74면 큰일났다고 얘기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큰 틀에서 '축소사회' 대응을 포함한 인구전략을 실제 '기획'하는 부처가 만들어져야, 복지사업을 산발적으로 나열한 '백화점식 정책'을 벗어날 수 있다고도 봤다.
조 센터장은 윤 정부의 인구정책이 이전의 현금성 복지 강화 등의 연장선상이었던 것은 '패착'이라 보면서도 "인구부 작명만큼은 '신의 한수'라 본다. (변화될) 인구로 미래를 기획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고 밝혔다. 당장의 소소한 출산율 제고를 넘어, "앞으로 10년간 교육 등 제도·정책을 잘 바꿔놔야 (연간) 20만 명 태어난 다음세대가 아이를 더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임연구원도 "아직 인구부가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질지에 대한 논의가 (너무) 없다. 초고령사회와 연계해 '노인 복지'(확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미래 교육과 국방, 지방소멸 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가져가야 한다"고 봤다. 또 "대통령실 등이 거의 '공백' 상태다 보니 제5차 저출산·고령화사회기본계획(2025~2029)을 만들 주체도 없는 상황"이라며 올 5~6월까지 정치권을 중심으로 관련 '사회적 담론'이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반기內' 연금개혁?…"與野 극적 합의 없이 불가"
지난해 9월 정부가 '더 내고, 그대로 받는'(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2%) 자체 개혁안을 내놓은 연금개혁도 전망이 어둡긴 마찬가지다.
앞서 '내는 돈'(연금보험료)을 현행 대비 4%p 올리자는 데까지는 대체로 합의가 이뤄졌지만, 이외 정부안은 '논란을 더 키웠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뜨거운 감자였던 '세대별 보험료 차등인상' 및 '자동조정장치'(인구구조 변화 등에 따라 연금액이 조정되는 제도) 도입에 대해, 여야 간 입장 차도 좁혀지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초고령사회 대응의 최우선 현안으로 '상생의 연금개혁'을 꼽고 있다. 우선 기발표한 안(案)대로 상반기 내 개혁 완수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기일 복지부 제1차관은 지난 8일 '2025 주요업무 추진계획' 관련 브리핑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개혁 지연으로 매일 885억 원의 국민 부담이 날로 가중되고 있다. 가장 좋은 연금개혁은 '가장 빠른' 연금개혁"이라며 "정부개혁안을 토대로 조속히 국회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착실히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금년 초가 마지막 '골든타임'이 될 것"이라며 "소득대체율에 대해서는 약간 이견이 있지만 국회 논의의 장이 열리게 되면 (보험료 인상 등) 서로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바로 (개혁안 입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야권의 최대 관심사가 '내란 극복'인 상황에서 쟁점이 많은 연금개혁 불씨를 살리기는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근 국회에서는 몇몇 의원실에서 개별적으로 여는 세미나 외 '논의다운 논의'가 실종됐다는 푸념도 나온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정책위원장은 "(올해 연금개혁 여부는) 누구도 예측을 못할 것 같다. 너무 안갯속"이라며 "추진 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대통령실은 (그 주체가) 아닐 테고, 부처에게 강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가 이미 (모수개혁) 방안을 냈기 때문에, 탄핵 추진과정에서 국회가 민생법안을 특별히 챙긴다는 취지로 '논의 테이블'이 굴러간다면 의외로 급진전될 수도 있다"며 "그 경로 외 다른 동력은 없는 것 같다"고 내다봤다.
반면, 작년 초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 결과('소득대체율 50%'案)와 상이한 정부안은 현 시국에서 강행할 정당성이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남찬섭 교수는 "구조개혁은 특성상 어차피 금방 하기는 어렵다"며 "만약 정권이 교체된다면, (공론화안과 유사하게) 모수개혁만이라도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