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경호처 From 박정훈…위법명령 '불복종' 정당

왼쪽부터 김성훈 경호처 차장·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을 앞두고 경호처장 직무대행을 맡게 된 '강경파' 김성훈 경호처 차장이 결사 항전 태세를 갖추는 양상이다.

그러나 경호처 내부는 동요 분위기가 역력한 가운데, 김 차장이 일선 직원들을 '방패막이'로 떠미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최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무죄 판결처럼 위법한 명령은 복종할 의무가 없다는 판례들이 수두룩하다는 점은 이번 경호처 대응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보인다.

'강경파' 김성훈, 내부 단속부터…일선 '동요'는 계속 

윤석열 대통령 체포 저지를 주도한 박종준 전 대통령 경호처장이 10일 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서 조사를 마친 뒤 청사를 나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경호처 등에 따르면 박종준 전 경호처장이 사직하고 경찰 조사에 응하는 등 사실상 '백기투항'한 가운데, 전면엔 김성훈 경호처 차장이 나서는 상황이다.

김 차장은 경호처 내 대표적인 '강경파'로 분류되며 일각에선 윤 대통령 부부의 핵심 측근이자, '김건희 여사 라인'으로 보기도 한다.

경호처 내부에선 1인자였던 박 전 처장과 2인자인 김 차장, 3인자인 이광우 경호본부장 간의 의견차가 있었다는 전언도 나온다.

내부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는 "박 전 처장과 김 차장, 이 본부장 간의 시각차가 계속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합리적 온건파였던 박 전 처장과 강경파이자 정통 경호공무원 출신인 김 차장, 이광우 경호본부장 간에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대응을 두고 온도차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박 전 처장은 유혈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확재정부 장관에게 여러 차례 중재를 건의했다고 한다.

이제 직무 대행으로 1인자 자리에 나선 김 차장은 내부 단속 및 결집부터 나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와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 2차 체포 영장 집행을 이번 주중에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1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경비인력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경호처 내부망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는 것은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글이 올라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호처 관계자가 올린 이 게시물에는 "수사기관의 영장 집행에 대한 협조가 필요하다", "정당한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을 폭행한 경우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하고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인 경우 특수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한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해당 글은 삭제됐었는데 김 차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시를 받은 소속 간부가 이에 불응하자, 전산 담당자를 통해 삭제토록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내부 반발이 거세지자 이 게시글은 다시 복원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차장은 경호처 간부들을 소집해 이른바 '정신교육'을 실시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 차장은 체포영장 집행 저지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반등하고 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경호처는 김 차장의 발언 부분에 대해 "확인해 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 차장이 내부 기강을 다잡아도 일선 직원들 중심으로 분위기는 심상치 않은 양상이다. 수뇌부의 강경 대응 지시를 따를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서는 건 대통령 경호법에 규정된 경호 대상자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 활동 범위에 벗어난 근거가 없는 행위라는 우려도 흐른다.

김 차장은 경호처 간부회의에서 자신을 향해 "윤 대통령을 비호하기 위해 경호처 조직과 직원들을 볼모 삼고 있다"며 사퇴를 요구한 한 부장급 간부에 대해 대기발령 조치를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박정훈 무죄가 준 '메시지'…"위법 명령 불복종 정당" 판례 다수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시민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황진환 기자

무엇보다 위법성이 명백한 명령에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는 다수의 판례들이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큰 상황이다.

최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1심 무죄 선고가 대표적 사례다. 박 대령은 재작년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채상병 사건'의 초동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해 항명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에 재판부는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이 사건 이첩 당일 '중단 명령'을 내린 것에 대해 정당하지 않은 명령이라고 보고, 이에 따르지 않은 박 대령의 결정이 문제 없다고 판단했다.

과거 대법원 판례들은 좀 더 명확하게 이 부분을 규정하고 있다.

1999년 대법원은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 부장의 비서실장이 대선을 앞두고 허위 사실로 특정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책자를 발간·배포·기사 게재 등을 한 행위와 관련, 상관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정당 행위의 요건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공무원이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상관은 하관에 대해 범죄행위 등 위법한 행위를 하도록 명령할 직권이 없다"며 "하관은 소속상관의 적법한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있으나 명백히 위법 내지 불법한 명령인 때에는 직무상의 지시명령이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2015년 국정원 내 허위 공문서 작성 지시 명령 사건에 대해서도 "공무원이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상관은 하관에 대해 범죄행위 등 위법한 행위를 하도록 명령할 직권이 없는 것"이라며 "하관은 소속 상관의 적법한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있으나 명백히 위법 내지 불법한 명령인 때에는 직무상의 지시명령이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고 되풀이했다.

판사 출신 차성안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SNS에서 "법원이 발부한 체포·수색영장 집행의 저지처럼 위법함이 명백한 명령에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며 "이번에 나온 채 상병 사건의 박정훈 대령 무죄 판결은 물론 그 전에도 다수의 판결에서 확인된 확고한 법리"라고 강조했다.

경호처 내부 동요가 이어지는 가운데 김 차장과 이 본부장은 거듭된 경찰 소환 요구에도 응하지 않으면서 '버티기'에 나서는 상황이다.

경찰은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김 차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검찰에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공수처와 경찰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재집행을 이번 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