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오세훈 서울시장 측근들에 따르면, 오 시장은 무상급식 논란으로 전격 사퇴한 이후 고(故)박원순 전 시장의 당선 소식을 듣고 조금은 안심했다고 한다. 자신이 추진했던 주요 시책 가운데 괜찮은 것들은 어느 정도 계승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인으로 돌아간 오세훈은 그의 말마따나 '생병을 앓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강르네상스를 비롯해 그가 추진했던 거의 모든 정책이 말 그대로 '지워졌기' 때문이다. 박 전 시장 재임 당시이던 지난 2018년,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정말 배 아파서 낳은 자식같은 정책들이, 다 애착이 가고 정말 자부심이 느껴지는 그 정책들이 새로 들어온 시장에 의해 별 고민도 없이 다 뒤집히고, 취소되고, 무효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내 심정이 어땠겠어요? 뭐 반성을 떠나서 정말 내 발등을 찍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괴로웠던게 사실이죠."
그는 '피눈물을 흘렸다'는 표현으로 당시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같은 맥락으로 지난해 6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대선 출마의 조건으로 '대안'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도시를 완전히 개조한다는 건 시장을 한두 번 해서 바뀌는 건 아니다. 아직 서울시에 할 일이 넘쳐흐르고 내 손으로 완성하고 싶은 일도 많다…내가 시장직을 이어가지 못하더라도 정책 기조가 이어져야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런 분이 대안으로 있다면 선택이 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말한 '대안'은 현실에는 없다. 외려 지금 서울시장을 놓고 나오면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될 것이고, 현 정국에서는 민주당 측 후보가 선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민주당 소속 시장 후보가 또 다시 오세훈 지우기를 한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미래다.
이 점에서 시장직을 놓고 나가더라도 차기에 같은 당 후보가 당선될 것이 확실해 보이는 홍준표 대구시장과는 고민의 위치나 무게가 사뭇 다르다.
여기에 더해 서울시장을 중도 사퇴하는 모습이 2011년 무상급식 사퇴와 겹쳐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오 시장 스스로도 지난달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이같은 고민을 토로했다.
"어쨌든 중도에 사퇴한 전력이 있는 제가 다시 또 서울시장직을 사퇴하고 대선에 출마한다는 건 사실 상당히 부담이죠. 유권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고요. 그러나…공인으로서의 경험 이것을 좀 더 큰 단위의 나라에서 써야 된다고 하는 요구도 분명히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두 개의 큰 요구 또 책임감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될지 참 고민이 깊고요…"
오세훈의 풀지 못한 숙제는 그래서 '고민 중'이라는 단어로 축약된다. 오 시장의 측근 그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보수의 구원투수로 이제는 더 큰 정치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갑론과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승산이 희박한 싸움일 뿐'이라는 을박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것. 이는 "야당 후보도 아니고 여당 후보로 나서는 상황인데 일단 대통령 탄핵 국면이 정리가 돼야 결단을 해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핵심 측근의 말로 대변된다.
오 시장도 지금은 대권 행보를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다. 새해 첫 간부회의에서는 직접적으로 '시장직을 내려놓고 출마할 의사는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0일 새해 첫 직원조례에서도 '내년(2026년)까지 싱가포르를 제치고 글로벌 톱5를 달성하자'며 임기 마지막까지 뛰겠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기도 했다.
자신이 이끌어 온 '서울 대개조'를 완성하고 싶다는 애착, 또 그것이 지워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트라우마를 넘어설 정도로, 그를 향한 '시대의 부름'이 강력해질 것인가. 그것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권 도전 여부를 가를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명태균 리스크'에 대해서는 세간의 관측과 달리, 오세훈 시장을 잘 안다는 이들은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그 근거로 '오세훈 법'을 든다. 오 시장은 정치자금법 개정 등 자신이 주도한 이른바 '오세훈 법'으로 돈 선거를 근절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과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퇴장하면서 쓰고 남은 후원금도 모두 기부할 정도로, 돈 문제에 대해서는 결벽증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니 명태균에게 돈을 줬거나 주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은 '제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이미지는 만에 하나 명태균 관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고 가정하면 역으로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앞으로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