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아이 때려 숨지게 하고 용서 구한다…방청석은 '거짓말'[법정B컷]


가을의 문턱을 넘던 지난해 10월, 반묶음을 한 긴 머리에 녹색 수의를 입은 피고인이 서울고등법원 형사 법정에 들어섰습니다. 생후 1년을 조금 넘긴 아이를 한 품에 안은 채였습니다. 아기의 머리카락이 한 올이라도 보일 새라 이불로 꽁꽁 싸맨 채 피고인석으로 향했습니다.
 
구치소에서 낳은 아이까지 데리고 온 그가 저지른 죄는 아동학대살해죄입니다. 
40대 이모씨는 2022년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자신의 의붓아들 시우의 온몸을 때리고 찌르고 16시간 동안 의자에 묶어 놓고 학대해 결국 숨지게 했습니다. 아이가 친모를 닮았다거나 자신이 유산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멍투성이였던 열두 살 시우는 입안 화상으로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해 체중이 29.5㎏까지 줄었습니다. 8살 어린이 정도의 몸무게에 불과합니다. 아이는 '홈스쿨링'을 명목으로 학교도 가지 못했습니다. 이씨는 아이에게 새벽부터 성경 필사를 시키고 다하지 못했을 땐 방에 가두고 때렸습니다.
 
오늘의 '법정B컷'은 대법원을 거치며 극적으로 '아동살해죄'가 인정된 시우 사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대법원 "사망 예견할 수 있을 것" 다시 보라

애초 1·2심에선 계모의 '학대치사'만 인정돼 징역 17년이 선고됐습니다. 그러다 대법원이 "아이가 죽을 줄 알면서도 학대를 이어간 살해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며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에서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2024.7.11. 대법원 3부 故 이시우군 사건
 피해아동을 보호·양육할 뿐 아니라 자신의 학대행위로 피해아동의 위와 같은 상태를 야기한 피고인은 불확정적이나마 이러한 위험 내지 가능성을 인식하거나 예견하면서도 이를 무시한 채 2023. 2. 4부터 2023. 2. 7 피해아동이 사망할 때까지 심한 구타와 결박을 반복하는 등 중한 학대행위를 계속해 감행하고, 신속히 치료와 구호를 받아야 할 상황에 있던 피해아동을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피고인 A에게는 아동학대살해죄에서 살해의 확정적 고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

대법원에서 극적으로 돌아온 이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계모의 살해죄를 인정했을까요, 그렇다면 징역 몇 년을 선고했을까요.
 

'학대 원인' 아이 잘못으로 돌린 피고인


먼저 피고인 신문이 있던 한 달 전으로 가보겠습니다. "처음 피해아동과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관계는 어땠습니까"라는 변호인의 첫 질문이 시작되자 피고인은 대뜸 눈물부터 쏟았습니다. 아이는 '보물'이었다며 오열하기까지 했습니다.

"아이에게 고급 브랜드 옷도 입히고 애정을 쏟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법원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방청석에는 답답한 한숨이 간간이 끼어들기도 했습니다.

2024.12.05. 서울고법 형사2부 故 이시우군 사건 피고인 신문 中
피고인 측 변호인: 흠, 피고인은 욕설도 하고 피해 아동에게 드럼 스틱이나 얇은 플라스틱 옷걸이, 선반 받침용 봉으로도 체벌했는데 이렇게 한 이유가 있습니까?
피고인: (고개 절레절레) 뭔가…그냥 잘못된 행동을 할 때마다 그거에 대한 중단의 방법이 체벌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변호인: 피고인이 회초리를 들면서 아이에게 상처나 멍이 생겼거든요. 피고인 보셨습니까?
피고인: 네
 
변호인: (아이 몸에) 멍이나 상처를 보고 어떤 생각 들었습니까?
피고인: 하…죄송합니다.
 
변호인: 아이가 잘못했어도 많이 아플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피고인: (기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고개 절레)
 
변호인: 피해아동이 잘못했다고 생각했을 때 체벌 외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았나요?
피고인: 아니요. 다른 방법들도 수차례 시도하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으나, 그게 되지 않을 때 그럴 때 제가 잘못된 방법을 썼던 것 같습니다.

이씨는 신문 내내 학대 행위를 훈육 목적의 체벌로 포장하고 정당화했습니다. 책임의 화살을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시우에게 돌려버린 겁니다.
 
그것도 모자라 사망 전날까지 장장 16시간 동안 아이를 수건과 커튼 끈으로 의자에 결박한 행위까지 "시우가 '묶어 달라'고 해서 했다"라고까지 말합니다. 의자는 '생각하는 의자'로 스스로 행동을 절제하라는 의미였고, 필요하면 스스로 나올 수 있기에 풀어주지도 않았다고요.

2024.12.05. 서울고법 형사2부 故 이시우군 사건 피고인 신문 中
변호인: 피고인, 누적되는 스트레스 속에 살았던 걸로 아는데, 시우를 학대 행위를 하면서 스트레스 풀려고 했나요? 해소 되는 감정이 있었어요?

피고인: 아니요 왜 힘든 걸 자식한테 풀어요. (방청석 술렁이고 욕설도 나옴) 지치고 힘든 건 사실이었지만, 시우 잘못으로 시우를 꾸중했던 거지…그렇지 않습니다.

시우의 살이 빠진 건 ADHD 약 부작용 때문이라는 억지 주장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범행은 시우의 이상행동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고요. 하지만 피고인은 아이를 더 세심하게 보살피기는커녕 이것을 핑계 삼아 시우를 더 강하게 학대했을 뿐입니다. 시우의 몸에는 연필과 가위로 200회 넘게 찔려 피가 난 상처가 남아있었습니다.
 
한창 클 나이였던 시우는 1년도 안 돼 9kg 가까이 빠졌고,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는 위 속의 내용물이 30㎖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해요. 제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지 않은 거라고요. 흔한 햄버거나 과자도 만들어 먹일 정도로 시우는 제가 하는 음식을 잘 먹었어요. 왜 아이한테 음식을 주지 않아요"
 

'용서 구한다'…방청석은 '거짓말' 마라

'변명'으로 일관하는 피고인 태도에 신문을 하지 않기로 한 검사가 참다 못해 나섰습니다. 

2024.12.05. 서울고법 형사2부 故 이시우군 사건 피고인 신문 中
검사: 피고인 한 가지만 볼게요, 피고인은, 피고인의 행위로 피해자가 사망할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고 얘기했는데. 피해자가 사망한 후에 남편에게 전화해서 "나 살려줘. 용서해 줘. 다른 아이들 생각해서 나 좀 살려줘. 나 잡혀가면 어떡해"라고 이야기했어요? 왜 남편에게 전화해서는 피고인이 잡혀갈 걸 걱정했습니까?
피고인: (20초 정적) 아이가 일어나지 않아서…(고개 푹 숙임)
 
검사: 피고인 행위로 아이가 사망했고, 학대 행위로 아이가 사망했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니냐고요.
피고인: 아니요.
 
검사: 그럼 직후에 홈캠은 왜 뗐습니까? 왜 떼서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피고인: 남편이 통화되는 중이었고 통화 중에 욕이랑 화를 너무 많이 해서 순간적으로 남편이 오는 게 너무 무서웠습니다.
 
방청석: 거짓말!

검사가 시우가 집에서 사망한 직후 피고인이 119에 신고도 하지 않고 집안에 설치된 홈캠을 휴지통에 버려 증거를 없애려 한 걸 강조한 겁니다.
 
수사 단계부터 2년 가까이 시우 사건에 매달려온 검사는 "병원 안치실에서 시우를 처음 봤습니다. 오늘 낮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 몸은 심각하게 말라 있었고, 전신은 멍과 상처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몸이 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라며 변명으로 일관했던 이씨에게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검사의 구형이 끝나면 피고인에게도 말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자신의 아이 얘기부터 꺼낸 피고인은 자신 때문에 숨을 거둔 시우에게 용서를 구하겠다고 했습니다. 

2024.12.05. 서울고법 형사2부 故 이시우군 사건 피고인 최후진술 中
웃어도 욕을 먹고, 울어도 욕을 먹어야 하는 저였지만, '지 새끼만 소중하냐'는 시간 속에서도 뻔뻔할 만큼 아이를 키우는 저는 세상에 돌아갈 자신이 없었기에 남은 아이에게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책임이 18개월이라는 허락된 시간뿐이었습니다. 이 법정으로 시우 엄마가 있는 곳에 아이를 안고 들어올 때마다 아이 머리카락 하나조차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
 
(갱지에 미리 써온 최후진술문 꺼냄)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용서를 구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런데 용서를 구해야 할 아이가 없기 때문에 그런 제가 무슨 염치로 누구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지, 애미로서 자식을 지켜주지 못하고 아프게 한 죄, 보호하고 사랑해야 할 의무 다하지 못한 죄, 더 인내하고 기다려 주지 못한 죄, 저는 계모라고 비난받아도 마땅합니다. (…) 

변호인은 "때려서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때린 게 아닙니다"며 살인죄 적용이 부당하다고 강변했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17년→30년…2년 간 싸움 이어온 친모

주문. 피고인을 징역 30년에 처한다.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2부는 지난 7일 아동학대살해죄를 인정해 이씨에게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장 입에서 형이 떨어지자, 박수가 터졌습니다. 방청석에서는 "합당한 판결입니다"라고 외치며 재판부에 고개를 숙인 이도 있었습니다.
 
그제야 시우의 친모도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는 "살인죄가 인정됐어. 살인이"라며 작게 반복해 말했습니다. 긴 싸움이었습니다. 그동안 "친모는 무얼 했냐"는 말과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1인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매번 방청을 함께 와주고 진정서를 써주는 시민들도 함께였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2025.01.07. 서울고법 형사2부 故 이시우군 사건 선고 中
재판장: 피고인이 피해아동에게 한 학대행위는 그 내용이 가학적이며, 그 강도 또한 11세(만나이)의 아동이 버텨내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중략) 피고인의 지속적·반복적인 학대행위로 인해 피해아동은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돼었고, 정서적으로 피폐해졌습니다. 피해아동은 친부 A로부터도 학대받고 외면당했으며 사망 무렵에는 등교마저 중단해 가정 안팎에서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 피고인이 피해아동의 방 등에 홈캠을 설치해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통제하였으므로, 피해아동은 자신의 방 안에서조차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아동을 보듬기는커녕 철저히 냉대하며 학대행위를 지속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아동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느꼈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도저히 가늠하기 어렵다고 판결문에 적었습니다. 친아버지로부터도 폭언과 폭행을 당해 도움을 청하지도 못한 채 학대행위에 무분별하게 노출돼 상당히 취약한 상태였다고요. 친부는 징역 3년이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시우의 일기장에는 철저히 가해자였던 피고인의 애정을 갈구하고 자신을 자책하는 내용으로 빼곡했다고 합니다. 재판부는 시우 사건을 이렇게 규정했습니다.

2025.01.07. 서울고법 형사2부 故이시우군 판결문 中
 이 사건은 피고인이 자신이 보호하여야 할 대상인 피해아동을 상습적으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하고 방임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생활기능의 장애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른 피해아동에게 재차 가혹한 학대행위를 해 끝내 피해아동을 사망하게 한 사건이다.

일반 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또는 무기 징역, 5년 이상의 징역인데 반해 아동학대 살인죄는 사형 또는 무기 징역, 7년 이상의 징역입니다.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아동에 대한 살해죄를 더 중하게 처벌하라는 거죠. 
 
하지만 아동학대 살해죄는 인정되기도 어렵고, 인정되더라도 형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모두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정인이 사건'의 양모도 무기징역이 선고됐다가 항소심에서 징역 35년으로 감형됐습니다. 

친모는 선고 직후 "많은 아이에게 빛이 될 수 있는 판례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습니다. 어머니는 기자와 통화에서 시우를 잃은 그날 이후 "자신은 감옥보다 더 큰 고통 속에서 매일매일 벌 받는 기분으로 살아간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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