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초유의 후보 박탈 사태는 적반하장? 韓 배드민턴 회장 선거위원장부터 심각한 결격 의혹

지난 8일 대한배드민턴협회장 선거에 나선 김택규 후보의 결격을 결정한 선거운영위원회 공고문. 협회

지난해 이른바 안세영(삼성생명)의 작심 발언 파문으로 홍역을 겪은 한국 배드민턴이 또 한번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제32대 대한배드민턴협회장 선거에서 한국 체육 사상 초유의 후보 자격 박탈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를 주도한 협회 선거운영위원회가 위원장을 비롯한 다수의 위원이 애초부터 자격 미달이거나 결격이 심각하게 의심될 만한 상황인 것으로 드러났다.

협회 선거위는 지난 8일 오재길 위원장 명의로 "선거 관련 규정 제15조(후보자 등록) 규정에 따라 김택규 후보의 후보자 결격 사유를 심사한 바 회장 후보 결격자임을 공고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귀 후보는 공금 횡령 및 배임 등으로 입건되었고, 보조금법 위반으로 협회에 환수금 처분을 받게 하고, 문체부로부터 해임 권고를 받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선거위는 또 "동 규정 제13조(후보자의 자격), 본 협회 정관 제26조(임원의 결격 사유) 제1항 제12호, 동 규정 제15조 제5항 제1호에 따라 후보자 등록 결정을 무효로 한다"고 전했다. 이에 김택규 현 회장은 후보로 등록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를 밀어붙인 오 위원장이 오히려 위원 결격자라는 강한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달 구성된 선거위에 들어올 수 없는 정당인이라는 지적이다. 협회장 선거 관리 규정 제4조 2항은 정당의 당원은 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직 변호사인 오 위원장은 체육계, 언론계, 법조계 인사들로 이뤄진 선거위 위원으로 위촉됐다. 협회는 선거위원 위촉 당시 정당의 당원이 아님을 본인 스스로 확인하는 자격 요건 등을 포함한 취임 승락서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1차 회의 이후부터 오 위원장의 결격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모 정당의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협회는 오 위원장에게 정당인이 아니라는 확인서 제출을 요청했다. 그러나 오 위원장은 차일피일 확인서 제출을 미뤄오다가 지난 10일에야 정당인이 아니라는 문서를 협회에 보냈다. 협회 관계자는 "해당 정당에서 발행한 확인서가 아니라 본인이 작성한 문서로 자필 사인이 첨부됐다"고 설명했다.


배드민턴협회장 선거 후보 등록이 불허된 김택규 현 회장. 윤창원 기자

그런데 협회는 오 위원장이 정당인이 아니라고 밝힌 10일 문제적인 상황을 확인했다. 오 위원장과 A 위원의 정당 활동을 강력하게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협회는 지난달 1차 회의 이후 위원들의 결격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민원과 공문을 받은 뒤 각 위원들의 정당 가입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7명 위원 중 5명은 정당인이 아니라고 확인이 됐지만 오 위원장과 A 위원은 아니었다. 협회 관계자는 "두 위원만 인증 번호를 추가로 입력해야 확인이 된다고 하더라"면서 "이후 수 차례나 확인 작업을 거쳤지만 마찬가지였다"고 전했다.

결국 10일에야 사태가 파악됐다. 이 관계자는 "이날 오 위원장의 정당 가입 여부를 확인했더니 탈당했다고 나오더라"고 밝혔다. A 위원 역시 탈당했다고 확인된 상황. 협회 관계자는 "해당 정당 당원이 아니면 아니라고 확인이 되고, 탈당했다면 탈당했다고 나온다"면서 "그러나 당원이 본인 당원 여부 조회를 해보니 인증 번호를 넣어야 하더라"고 말했다. 인증 번호를 넣어야 한다는 답이 나오면 사실상 당원이라는 얘기다.

그동안 오 위원장이 정당 가입 여부에 대한 확인서 제출을 미뤘던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선거위가 구성된 지난달 하순부터 해를 넘긴 지난 10일 이전까지도 정당인이었을 가능성이 지극히 높은 상황이다. 특히 A 위원은 모 정당에 당비를 내고 있다고 밝히면서 선거위에서 사퇴했다. 정당인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은 것인데 A 위원은 선거위 출범 당시부터 결격이었던 셈이다.

이미 선거위는 앞서 2명의 위원이 사퇴했다. 이들 중 1명은 지난해 모 언론과 인터뷰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김 회장에 대해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심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 협회로 다수의 민원이 접수되면서 자진 사퇴했다. 종목 단체장은 1회 연임할 경우 공정위 심사 없이 도전할 수 있는 규정이 있어 논란이 거셌다. 다른 1명은 다른 단체 스포츠 공정위 소속으로 역시 애초부터 위원 자격이 없었다.

오 위원장과 사퇴 의사를 밝힌 A 위원까지 합하면 전체 7명의 위원 중 절반이 넘는 인원이 애초부터 결격이거나 위원으로서 금도를 넘은 행위를 한 셈이다. 선거가 열리기도 전에 중립적인 위치에서 선거를 관리해야 할 위원들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격이다.

이와 관련해 CBS노컷뉴스는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11일 오후 오 위원장에게 연락했는데 "행사에 참석 중이라 통화하기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정당인 관련 제보와 관련해 한 가지만 확인해달라고 했지만 오 위원장은 답변을 피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후 의혹에 대한 반론을 듣고 싶다고 문자를 남겼지만 끝내 오 위원장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배드민턴협회장 선거운영위원회 소속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비판을 담은 언론 인터뷰로 결국 사퇴한 김공 위원의 기사. 더 팩트 기사 캡처

후보 자격 발탁도 무리한 결정이었다는 지적이다. 선거위가 근거로 삼은 김 회장의 공금 횡령 및 배임 등 입건은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또 문화체육관광부의 해임 권고는 협회 스포츠 공정위의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선거위가 월권에 해당하는 후보 자격 불허를 공고한 것이다.

상위 단체인 대한체육회도 선거위의 잘못된 해석이라는 입장이다. 체육회 담당자에 따르면 김 회장은 이미 출마를 위해 직무가 정지된 상태의 후보자로 임원의 결격 사유 적용은 전혀 무관하다는 의견이다. 또 사법 기관의 처벌을 받지도 않은 가운데 후보 등록이 불허된 상황에 대해 체육회 실무자는 "이번처럼 체육 단체장 선거에서 후보가 등록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지난 8일 선거위 당시도 협회는 후보 등록 불허와 관련해 체육회에 문의했다. 협회 관계자는 "당시 선거위원들이 무리한 결정이라고 오 위원장을 만류했다"면서 "체육회 담당자에도 문의해 아직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할 정할 사안이라는 답을 받아 선거위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도 오 위원장이 '변호사인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며 김 회장에 대한 후보 결격자로 등록 불허를 밀어붙였다"고 귀띔했다.

결격자가 절반이 넘을 수도 있는 선거위가 오히려 회장 후보에 대한 결격을 결정한 적반하장의 모양새다. 결격 결정 자체도 규정에 어긋나거나 무리한 적용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에 김 회장은 지난 9일 법원에 선거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후보자등록무효결정 효력정지등 가처분 신청서'는 "1. 제32대 회장 선거 관련 후보자 등록 무효 결정의 효력을 정지한다. 2. 제32대 회장 선거에서 회장 후보자의 지위에 있음을 임시로 정한다. 3. 2025년 1월 16일 개최 예정인 회장 선거에서 김택규 회장을 후보자에서 제외하고 선거 절차를 진행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거위가 중립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의혹은 배드민턴뿐만이 아니다.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위는 정몽규 현 회장과 관련된 일부 인사들이 위원을 맡고 있다는 의혹 속에 지난 10일 위원 전원이 사퇴했다. 선거는 무기한 연기됐다.

지난해 파리올림픽에서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로 대한민국의 깊은 감동을 선사한 안세영. 이후 작심 발언으로 대표팀 및 협회 운영이 개선됐지만 회장 선거를 앞두고 혼탁한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2024.8.5 파리=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KO 황진환 기자

한국 배드민턴은 지난해 파리올림픽 여자 단식 금메달을 따낸 안세영의 대표팀 및 협회 운영에 대한 비판 발언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문체부의 사무 검사와 규정 변경 권고 등으로 협회는 지난달 조치 요구 사항 25건 중 16건을 이행했고, 6건은 개선 중이라고 밝혔다. 안세영이 바랐던 개인 후원과 비국가대표의 국제 대회 출전 등이 이뤄질 전망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김 회장에 대한 보조금법 위반 여부 등은 문체부와 협회 사이에 의견 다툼의 여지가 있는 상황이다. 체육계 일각에서는 체육회 이기흥 회장과 대립각을 세워온 문체부가 종목 단체장에 대해 무리한 징계를 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배드민턴협회장 선거도 하기 전에 선거위부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형국이다. 이미 축구협회 선거가 무기한 연기된 가운데 체육회장 선거도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배드민턴 협회장 선거 역시 선거위 문제로 정상적으로 진행될지 미지수다.

배드민턴협회장 선거는 오는 16일 대전 선샤인호텔에서 열릴 예정이다. 대구배드민턴협회 최승탁 전 회장과 한국실업배드민턴연맹 전경훈 전 회장,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원광대 김동문 교수(이상 기호 순)가 일단 후보로 등록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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