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착륙 참사 발생 2주째인 11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원인 조사에 속도가 붙은 모습이다. 미국으로 보낸 블랙박스 비행기록장치(FDR)는 데이터 인출을 하루 만에 완료하고 현재는 검증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서는 사고기 엔진에서 발견한 조류 충돌 증거인 깃털 등에 대해 분석을 의뢰하는 등 정밀조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달 29일 오전 9시 3분 발생한 이번 사고 원인 조사는, 사고기가 무안공항 활주로01 방향으로 접근하다 오전 8시 57분 관제사의 조류 충돌 주의를 듣고 8시 59분 조류충돌(버드스트라이크)로 인한 메이데이(긴급 조난 요청) 선언 뒤 복행(고 어라운드)해 반대 방향 활주로19 중간 지점에 9시 2분 동체착륙하기까지 기체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를 밝히는 게 핵심이다.
아울러,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 콘크리트 둔덕형 방위각시설(로컬라이저)의 설치 형태와 공항 운영·관리 등의 과실 여부는 경찰 수사와 국회 조사를 통해서도 규명될지 주목된다.
美서 FDR 데이터 인출 완료…검증 뒤 내주 귀국 예정
사조위 등에 따르면 미 워싱턴 소재 교통안전위원회(NTSB) 본부에서 분석 중인 FDR은 현지 시간으로 9일 데이터 인출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완료, 검증 작업을 시작했다.
사조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현지시각) 7일부터 수리를 시작해 데이터를 인출하기까지 3일 정도가 걸렸고, 검증 작업은 2~3일 정도가 추가로 소요된다"며 "데이터가 온전하게 남아있는지 등 검증이 마무리되면 데이터를 갖고 한국으로 오게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 내에서도 검증 작업을 또 해야 한다"며 "그런 전체 과정이 끝나고 나면 (진행 상황과 사실 정보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언론 등에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증 결과 인출된 데이터에 별다른 이상이 없을 경우 조사관들은 오는 13일 귀국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고 원인 조사는 우리 측 사조위 조사관들과 미국 측 NTSB, 연방항공청(FAA), 항공기제작사 보잉 및 엔진제작사 GE 등이 참여하는 한·미 합동조사단이 진행하고 있다.
이 중 참사 당일 현장에서 수거한 블랙박스 중 온전하게 발견된 조종실음성기록장치(CVR)는 국내에서 데이터 추출과 음성파일 전환, 녹취록 작성까지 완료했다. CVR엔 사고 직전 2시간 분량의 음성기록이 온전하게 저장된 걸로 알려졌지만, 내용은 공개된 바 없다.
FDR은 최장 25시간 비행 고도와 운항 정보를 모두 담고 있어 항공기 사고 시 원인을 규명할 '열쇠'로 꼽히지만, 이번 사고 현장에서는 기록저장장치와 전원공급장치의 연결부가 파손된 채 발견돼 미국으로 이송해 별도의 장비로 문제를 해결했다.
FDR은 사조위 조사관 2명이 지난 6일 오후 비행기로 이송했는데, NTSB 측에서도 사전 협의를 거쳐 도착한 이튿날부터 바로 수리에 착수하는 등 조사에 속도를 냈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CVR과 CCTV, 관제 교신 기록 등과 시간대별로 내용을 살피는 작업을 거치기에 최종 보고서 도출에는 수개월 이상 소요될 전망이지만, 사조위는 유의미한 사실 정보는 중간 단계에서라도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입장이다.
국내에서도 현장 조사와 엔진 및 기체 잔해 정밀조사가 병행되고 있다. 사조위는 우선 사고기 한쪽 엔진에서 발견한 조류 깃털과 혈흔 등이 뒤엉킨 흙을 국립생물자원관에 분석 의뢰한 상태다. 어떤 조류와 충돌했는지를 밝히는 게 핵심인데, 다음 주쯤이면 결과가 나올 걸로 보인다.
이밖에도 사고기가 충돌한 둔덕 안쪽에서 조류 1마리의 사체가 발견됐지만, 상태가 비교적 온전해 이번 사고와는 관련성이 적다고 보고 있다고 사고위 측은 전했다.
사고기 동일기종·국내 공항 항행안전시설 전수조사 결과는?
사고 원인 조사와 별개로,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종합적인 재발방지 조치에 착수했다.
국토부는 우선 국내 11개 모든 항공사를 대상으로 둔덕 위에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공항에 취항하는 경우 운항 경험이 많은 조종사 위주로 운항하고, 운항 때마다 특별교육을 하도록 하는 긴급 안전조치를 시행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둔덕 형태 로컬라이저가 항공정보간행물(AIP)이나 항공고시보(NOTAM)에 고지가 안 돼 있기 때문에 우선 둔덕이 있는지 여부와 높이 등 내용을 조종사들에게 교육 형태로 알리고, 또 AIP에도 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토부는 사고기와 동일한 보잉737-800 기종을 운용하는 국내 6개 항공사 101기의 정비이력 등을 전수조사하는 특별안전점검을 참사 이튿날인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실시했다.
무안공항의 콘크리트 둔덕형 로컬라이저가 이번 참사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자, 전국 공항 항행안전시설 현지실사도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진행했다. 국토부는 사고 발생 초기 무안공항 외에 여수공항과 포항경주공항 등에도 활주로 끝에 유사한 둔덕 형태의 구조물이 설치됐다고 밝혔는데, 정확한 현황은 이번 실사 이후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 같은 점검조사 결과와 그에 따른 후속 조치 계획 등에 대해선 분석을 마치는 대로 브리핑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이번 참사 발생 직후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꾸려 지난 3일까지 매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대응 상황을 발표하다가, 이후 브리핑을 원인 조사에 진전이 있을 때 수시로 진행하도록 전환했다.
아울러, 국토부와 행정안전부 등 각 부처에서 임시조직 형태로 꾸린 피해자 지원센터를 일원화한 '12·29 여객기 사고 피해자 지원단(가칭)'을 오는 20일 출범한다.
오는 18일엔 무안공항에서 합동 추모식을 개최한다. 이번 사고 희생자 179명은 모두 가족 품으로 돌아가 장례를 마쳤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제주항공 2216편 탑승자는 181명(승객 175명, 승무원 6명)이며, 생존한 승무원 2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한편 이번 참사 원인 규명은 경찰 수사와 국회 차원에서의 조사를 통해서도 진행된다.
전남경찰청 제주항공여객기사고수사본부는 국토부 부산지방항공청 무안공항출장소와 제주항공 서울사무소 등 압수수색과 무안공항 및 제주항공 관계자 10여 명 참고인 조사 등을 진행한 데 이어,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 조사 시기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는 지난 8일 본회의에서 '12·29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자 및 유가족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안을 가결했다. 국민의힘 7명, 더불어민주당 7명, 비교섭단체 1명 등 15명으로 구성되는 특위 활동 기한은 오는 6월 30일까지다. 위원장은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이, 민주당 간사는 이수진 의원이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