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만큼 복지 '부정수급' 강조한 정부 없어"

'사회정책분야 2024 평가·2025 전망 노동시민사회 포럼'
연금개혁 관련 "미래세대 부담만 강조"…"분절적·시장주의적 보장정책"
의대 증원하며 '지역·필수의료 확충' 내세웠지만…"의료민영화에 근접"
"인구 대전환기, 핵심은 재분배…新정부 전 시민사회 아젠다 고민해야"

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사회정책분야 2024평가와 2025전망 노동시민사회 포럼'에 참여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윤석열 정부만큼 복지급여 관련 부정수급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정부는 처음 봤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이 주제를 주요 담론으로 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고, 거의 모든 소득보장 분야에서 부정수급 이야기가 어느 때보다 많이 나왔죠.
 
특정 사례를 일반화해 과장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8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사회정책분야 2024 평가와 2025 전망 노동시민사회 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서 이같이 말했다. 이는 지난해 국민연금 개혁 논의 과정에서 소위 '받는 돈'(소득대체율) 제고보다는 '내는 돈'(보험료율) 인상에 편향된 양상을 보인 정부의 기조와 상통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보건 분야에 있어서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초점을 맞춘 '문재인 케어'에 대해 날을 세우며, 건보 지출을 효율화해 재정건전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이렇게 확보된 재정여력은 필수의료 확충을 위해 쓰겠다는 방침도 강조했으나 실제로는 전공의 이탈 이후 가동된 '비상진료' 유지 등에 1조 원이 넘는 건보 재정이 소요됐다.

"現정부 소득보장, 굉장히 분절적이고 시장주의적"

약 5시간에 걸쳐 개최된 이날 포럼은 양대 노총과 참여연대·비판과대안을위한사회복지학회·비판과대안을위한건강정책학회 등이 공동 주최했다.
 
지난 한 해 사회정책 분야에서 추진·시행된 현 정부의 정책적 흐름들을 진단, 평가하고 올해 나타날 분야별 세부변화를 조망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12·3 내란 사태' 전에 기획된 이번 행사는 △총론 △소득보장 △돌봄 △보건의료 등 크게 4개의 키워드별 세션으로 진행됐다.
 
윤 대통령이 내세운 '3대(노동·연금·교육)' 개혁 중 연금개혁과 관련, '소득보장강화론' 입장을 대변해온 주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소득보장 정책은 굉장히 분할적인 동시에 시장주의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혹평했다.

'촘촘하고 두터운 약자 복지'를 슬로건으로 내건 데 대해서는 "오만한 관점"이라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취약계층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취약한 청년-기득권인 중장년' 등 일종의 도식화된 구도를 만들어 세대 분열과 분절적 복지를 정당화했다는 분석이다.

작년 초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의 공론화 과정에 참여했던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세대별 보험료 차등 인상'을 골자로 한 윤 정부의 자체 연금개혁안을 비판했다. 지난해 9월 정부가 발표한 모수개혁안은 요율은 현행 대비 4% 올리고(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은 현행 유지해 재정 안정에 방점이 찍혔다는 게 중론이다.
 
남 교수는 정부가 '미래세대 부담'만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재정안정론을 우세 담론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연금제도가 이대로 유지된다면, 청년 세대가 나중엔 '버는 돈의 35%(부과방식이용률)'를 보험료로 납부해야 한다는 관련 주장을 단적인 예로 들었다.

그는 "재정안정론은 고령화로 노동인구가 감소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그 줄어드는 노동인구가 만들어내는 노동소득에 부과되는 기여금으로만 연금 지출을 충당해야 한다고 한다"며 "이는 논리적으로 모순될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모순되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짚었다.

외부 요인과 관계없는 '재정 균형'이란 있을 수 없는데, 인구 등의 변수 관련 고려가 없다는 지적과 함께 공적연금의 존재 목적인 '사회적 부양' 개념도 찾아볼 수 없다고 언급했다.  

"미래 취약층 더 많아질 것…공적보장 사각지대 줄여야"

이에 동의한 주 교수는 노동시장이 다변화되고 고령노동자 유입이 느는 상황을 들어 '보통의 시민'을 포괄하는 충분한 소득보장에 대해 더 활발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교수는 "고령화와 디지털화, 기후위기, 고용불안정 심화 등 우리가 당면한 도전들은 소득보장체계의 혁신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취약해질 위험을 가리키는 것"이라며,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등 기존의 공적 소득보장을 내실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올해에는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대폭 줄여야 한다며, 특수고용노동자의 국민연금 직장가입자 전환 등을 구체적 과제로 제시했다. 주 교수는 또한 "호황을 누리는 몇 안 되는 업계인 플랫폼기업들이 사회보험료 부담에서 더 이상 벗어나선 안 된다"며 "복수의 사업자가 한 노동자에 대해 보험료를 내는 것이 불가능한 게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이미 국민연금에서는 시간제 노동자에 대해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를 넘겨 장기화되고 있는 '의료대란' 등 의·정 사태에 대한 진단도 나왔다.
 
'보건의료' 부문 발제를 맡아, 지난해부터 이어진 의료대란 및 현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을 분석한 정백근 국립경상대 의대 교수. 이은지 기자

경상국립대 의대 정백근 교수는 정부의 의료개혁을 두고 "지역·필수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의사인력 확대가 중심이지만, (정부 정책의 일환인) 지역인재전형 비율의 확대는 입학조건이다. 졸업 후 진로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내다봤다.
 
정 교수 본인이 연구한 결과, 경상국립대 졸업 의사들에게 관내 의료취약지 근무 의향이 있는지 물었을 때, 다른 지역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과 비교해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되레 정부의 개혁 정책들은 국립대병원의 총인건비·정원 규제 완화 및 지방의료원 위탁운영 등 지역·필수의료 공급체계를 '민영화'하는 방향에 가깝다고도 비판했다. 건보 수가에 기반한 필수의료 재원 또한 지역 각 격차를 심화하고 있다며, 이미 의료인프라가 무너진 지역은 정부의 일반 예산과 별도 기금을 활용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경상국립대 의대 정백근 교수 발제자료 중 발췌. 민주노총 등 제공

이밖에 작년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중요성이 커진 돌봄 분야와 관련해선 "'바우처' 등의 부적절한 수단으로 돌봄서비스 대상을 '쪼개기'하고 있다"며 '무늬만 통합 돌봄'(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양난주 교수)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양 교수는 "(정부가) 단순히 시범사업만 늘릴 것이 아니라, 사업과 급여 신청, 구매가 다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돌봄서비스의 전면적 재편이 필요하다"고 봤다.

'무늬만' 통합돌봄·필수의료 확충…"탄핵 이후 고민해야"

포럼 총론 관련 최영준 연세대 교수 발제자료 중 발췌. 민주노총 등 제공

한편, 이날 사회정책 분야 총론을 담당한 최영준 연세대 교수(前비판과대안을위한사회복지학회장)는 우리 사회가 인구구조 변화 등 대전환기를 맞아 국가·시장의 권력은 비대해진 반면, 노동·시민사회계의 힘은 약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 교수는 "(지금의 탄핵 국면이 정리되면) 새 정부가 들어설 거라 확신하고 있다. 다만, 그때 (시민사회 진영이) 규범적 구호만 외쳐선 안 된다"며 "기존의 제도에 매몰되기보다는, 디지털·인구·기후 등의 변화를 어떻게 녹여서 더 진보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인구 전환시대의 핵심은 재분배"라고 강조했다.
 
"국가 비교연구를 하다 보면, 불평등이 높은 사회일수록 사람들이 저항을 안 해요. 그걸 새로운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건데, 우리 사회도 장착 직전에 와있어요. '능력주의'에 대한 10대와 20대의 명백한 선호가 그걸 보여줍니다. '비토' 세력으로서가 아닌 대안 세력으로서의 노동·시민사회가 어떤 아젠다를 제시하고 사람들을 설득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결정적 시기'가 2~3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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