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50원대까지 거침없이 치솟았지만 추가 상승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현재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은 선진국은 물론 주요 신흥국과 비교해도 더 가파른 수준이다.
원화 가치의 저평가가 고착할 경우 금융시장의 선진국 편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주간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은 1452원에 장을 마쳤다. 지난 19일 환율의 주간거래 종가가 1451.9원으로 집계된 이후 3거래일 연속 1450원을 돌파한 기록이다.
환율 1450원을 넘은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15년 9개월 만에 처음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내년 기준금리 예상 인하 횟수를 기존 4차례에서 2차례로 줄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1400원을 오르내리던 환율은 내란사태 당일 야간거래에서 1442원으로 튀어 오른 뒤 주간거래 종가를 1410원부터 1430원까지 끌어올렸다.
외환당국의 정책 대응과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에도 불구하고 환율 방어 전선의 고점이 높아진 것이다. 당국은 추가적인 환율 변동성을 경계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환율에 대해 "단기적인 급변동은 다소 완화했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원화 가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크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iM증권 집계를 보면, 올해 달러 가치는 6.2% 상승한 반면 전 세계 통화 가치는 하락했다. 유로(-5.5%)와 파운드(-1.3%), 위안(-2.8%) 등은 하락폭을 한 자릿수로 막았고, 신흥국조차 통화 가치가 평균 9.7% 떨어졌다.
하지만 원화는 12.3% 빠졌다. 전 세계와 반대로 나 홀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펼치는 일본의 엔화(-10.8%)보다 하락폭이 크다. 브라질 헤알(-25.3%)과 멕시코 페소(-18.3%)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원화 가치 하락이 가장 크다.
기간을 트럼프 당선 이후로 좁혀도 통화 가치 하락은 유로(-4.6%), 엔(-3.1%), 위안(-2.7%), 신흥국(-2.3%) 등이지만 원화는 5%나 떨어졌다. 페소가 0.2% 상승으로 돌아선 가운데 헤알(-5.9%) 다음으로 원화의 가치 하락이 거세다.
이처럼 환율에서 드러난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내란사태 이후 더 심화한 것으로 보인다.
모건스탠리는 한국 주식시장의 비중축소 의견을 유지했고, 노무라는 내란사태 이전 제시한 내년 환율 전망치인 1500원에 도달하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며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7%로 제시했다. 특히 이달 한국 국채시장이 WGBI 선진국지수에 편입된 10월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투자가 순유출로 전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 부총리도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면서 "대외 신인도가 제일 중요하다. 정치적인 불확실성이 빨리 해소되는 것이 전제"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영향에 따라 코스피의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선진국 지수 편입 등 금융시장의 선진국 편입에 공을 들이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글로벌 자금의 달러 자산 선호 현상이 강화될 여지가 있다"면서 "정국 불안 장기화에 따른 경기 불확실성에 노출된 한국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의 추가 이탈 현상도 이어질 수 있어 원화 가치에도 부담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은 이어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월가에서 '선진국이라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있다는 것은 한국 금융시장이 자칫 이머징(신흥국) 시장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이러한 낙인효과가 해소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