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증언 등을 종합해 구성한 12·3 내란 사태 직전 국무회의는 시작부터 위헌과 불법으로 점철된 것으로 분석된다. 국무회의 개회, 안건 상정, 회의록 작성, 폐회 등이 전무하고 접견실에서 진행해 사실상 '간담회'에 불과했다는 시각도 나온다.
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은 "계엄에 반대했다", "경황이 없어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등으로 방어하며 '책임 회피'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계엄을 반대하기 위해 국무위원을 소집했다"는 논리를 들었지만, '절차적 요건'을 맞춰주려 했던 게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12·3 국무회의, 개의 없이 삼삼오오 모인 국무위원들
국무회의 규정 제6조에 따르면 국무회의는 구성원 과반수의 출석으로 개의한다. 현재 국무회의 구성원은 대통령과 총리, 국무위원(장관급) 19명 등 총 21명으로, 개의 요건은 구성원 과반수인 11명이 출석해야 한다.대통령은 의사봉을 두드리며 개회 선언을 한다. 하지만 3일 국무회의는 개회 선언은 전무하고 국무위원들은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번 사태 핵심 인물인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오후 8시쯤 서울에 도착해 이동 중 연락을 받고 대통령실로 들어갔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오후 8시 40분쯤 계엄 사실을 알았고 대통령실에 도착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오후 8시 50분쯤 대통령실에 왔다. 오후 9시쯤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가니 한 권한대행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상민 전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장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이 이미 있었다고 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후 9시 55분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오후 10시 10분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오후 10시 17분쯤,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계엄 선포 직전 가장 마지막에 대통령실에 도착했다. 이렇게 윤 대통령 포함 11명을 겨우 맞춘 것이다.
윤 대통령은 오후 10시 28분 대통령실 1층 브리핑룸으로 내려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안건 없이 귀띔으로 '계엄'…폐회 선언도 없이 급히 자리 뜬 尹
헌법 제89조와 계엄법 제2조에 따르면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듬성듬성 모인 국무위원들은 심의 안건을 보지 못했고 도착하는대로 귀띔으로 '계엄'을 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게다가 국무위원들이 모인 장소는 기존 국무회의장이 아닌 귀빈 등을 맞는 대접견실이었다.
윤 대통령은 오후 9시쯤 집무실에 와 있던 한 권한대행 등 국무위원 네댓 명에게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알렸다고 한다. 이후 국무위원들은 집무실을 나왔고, 한 권한대행과 최 경제부총리,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집무실을 오가며 설득을 시도했다.
윤 대통령은 집무실에 주로 있다가 계엄 선포를 앞두고 접견실에 잠시 들린 것으로 보인다. 송미령 장관의 기억엔 윤 대통령은 "누군가와 의논하지 않았다"며 첫 마디를 시작하고 2~3분 정도 머물렀다. 이후 조규홍, 오영주 장관이 도착하자마자 폐회 선언도 없이 자리를 이석해 떠났다.
국무위원들이 어리둥절하는 사이 계엄은 선포됐고 TV가 없던 접견실에서 휴대전화로 생중계를 지켜봐야 했다고 한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애초 오후 10시로 계획됐지만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윤 대통령이 당황했다는 전언도 나오고 있다. 조태열 장관이 기억하는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직전 마지막 답변은 "상황이 이미 다 종료된, 그런 급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더 이상 무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종합하면 대통령실이 행안부에 회신한 국무회의 관련 내용도 '허위' 의혹이 제기된다. 대통령실은 회의가 오후 10시 17분부터 10시 22분까지 진행됐으며, 안건은 '비상계엄 선포안'이 상정됐다고 밝혔다.
"종이 하나 없었다"…회의록 등 전무
헌법 제82조에 따르면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副署·서명)한다. 공공기록물법에 따르면 국무회의 같은 주요 회의에는 회의록, 속기록 또는 녹음기록을 작성해야 한다.회의록에는 구체적으로 회의의 명칭, 개최기관, 일시 및 장소, 참석자 및 배석자 명단, 진행 순서, 상정 안건, 발언 요지, 결정 사항 및 표결 내용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3일 국무회의는 이 모든 게 '전무'했다. 정부 관계자는 "계엄 전 국무회의에는 '종이 하나'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운영 및 회의록 작성 등을 담당하는 행안부 의정관은 불참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대통령실에서 회의록이 없다고 회신했고, 여전히 변함은 없다"고 밝혔다.
신군부 세력에 의해 선포된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 당시에도 국무회의 회의록은 있었고 의결사항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신군부보다 더 한 절차 위반인 셈이다.
일각에선 회의가 국무회의실이 아닌 접견실에서 이뤄진 것까지 감안하면 국무회의가 아닌 '간담회' 정도 아니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안건을 아무도 모르고 대통령은 몇 마디 하시고 나가고 사실상 회의도 아니고 간담회로 생각했다는 얘기도 나온다"며 "총리께서도 절차상 흠결이 있다고 여러 번 언급하지 않았느냐"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계엄 선포에는 헌법 제77조 4항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한다', 계엄법 제2조 '국방부 장관 또는 행안부 장관은 계엄 사유가 발생한 경우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계엄의 선포를 건의할 수 있다', 계엄법 5조 '계엄사령관은 국방부 장관 추천과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등을 모두 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엇갈리는 증언들…국무위원들 각자도생, 尹은 갈수록 불리
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은 대통령실이 호출해 대부분 영문을 모르고 접견실에 도착했다고 주장했다.반면 한 권한대행은 자신이 국무위원들을 불러 모았다며 "국무회의를 개최하려고 했었던 것은 계엄의 그런 절차적 흠결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국무회의를 명분으로 국무위원들이 모여서 좀 더 많은 국무위원이 반대하고 또 의견을 제시하고 걱정을 제시함으로써 계엄을 막고자 하는 것이었다"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계엄에 반대했다는 인원 규모도 엇갈린다. 한 권한대행은 참석 국무위원 전원이 반대했다고 했지만 이상민 전 장관은 2명 정도 반대했다고 밝혔다. 국무위원들은 "반대했다", "경황이 없어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등을 주장하고 있다.
야당은 한 권한대행을 포함해 국무위원들이 이번 사태에 '발 빼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지난 13일 국회 긴급 현안 질문에서 "걱정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왜 정족수를 맞췄나, 계엄의 절차적 요건, 헌법상 절차를 맞추기 위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전원 다 반대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거짓말, 국무회의 계엄 막기 위해 개최했다는 것도 거짓말, 헌법상·법률상 계엄에 반드시 필요한 국무회의 개최해서 절차적 요건 충족시키게 만들었으면서 이제 와서 법적 책임 회피하려는 것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형법 87조에 따르면 내란 우두머리, 지휘자, 모의자, 부화뇌동해서 따르는 부화수행, 단순 관여자까지 처벌하고 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비상계엄이라고 판단했으면 아예 회의 요건을 충족시켜주지 않고 자리를 나오는 게 맞다"며 "국무위원들의 책임 회피라고도 보여지는데, 이럴수록 윤 대통령에게는 불리한 구도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