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가장 가까운 2차 병원 '4시간 48분'…지역의료 붕괴 '골든타임' ②사라지는 마을, 학교…대한민국 '소멸 쇼크' 현장 보고서 ③"지역에 돈이 안 돈다"…기업·청년 실종보고서[영상] ④어르신 돌보고, 음악가 꿈 키우고…내 고향 지키는 '기부금' ⑤한은이 띄운 '대입 지역비례선발제', 지방소멸 해법인가? ⑥'유치가 아닌 기획' 지역활성화 투자펀드로 일으키는 지역 경제 ⑦"생활인구 확보해야 소멸 막는다" 팔 걷어붙인 위기 지역들 ⑧이주노동자 없인 지역도 없다…'노동력' 아닌 '구성원'으로 (계속) |
농촌 인력의 99%는 이주노동자다. 이들은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농어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이제 이주노동자들은 지역소멸을 막을 유일한 해법이 되고 있다.
하지만 열악한 처우와 차별적 제도 앞에 이들의 삶은 제자리걸음이다. 이주노동자를 단순히 '노동력'이 아닌 지역의 미래를 함께할 '구성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금 내고 사는데…우리 아이도 지원 필요해요"
"아이가 태어나면서 기쁨도 커졌지만, 걱정도 함께 커졌습니다."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LPG 가스통들이 세워진 전북 익산의 한 아파트. 파키스탄 출신 무함마드 샤히드 라자크(40대)씨가 그의 부인, 8개월 된 아들과 함께 취재진 앞에 앉았다. 13년 동안 한국에서 성실하게 일해 온 그는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가 됐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기쁨과 함께 걱정이 서려있다.
월급 250만 원으로 세 식구가 살아가기에는 빠듯하다. 특히 모유 수유가 어려운 아내 굴나즈 샤히드(20대)씨는 매달 분윳값으로만 30~40만 원을 지출해야 한다. 예전에는 월 100만 원이면 충분했던 생활비가 이제는 150만 원을 넘었다.
샤히드씨는 정부의 출산지원금 100만 원 외에는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 아내는 가족비자(F-3) 소지자라 취업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샤히드씨는 "한국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지만, 한국 아이들이 받는 혜택은 하나도 받지 못해요"라고 답했다.
전국의 자치단체들이 저출산·고령화를 극복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정책을 발표하는 현실은 이들이 받는 차별을 더욱 선명히 한다.
한 전문가는 배우자의 취업과 복지는 이들이 지역에 정착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한다.
전북대 설동훈 교수는 "배우자도 원하면 취업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한국인이 누리고 있는 보육과 교육 혜택도 그들에게 똑같이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주노동자에게도 기능 수준에 걸맞은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며 "시장 임금의 급여 수준이 지켜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샤히드씨는 아직 한국말이 부족하지만, 그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는 "우리도 매달 매년 세금을 낸다"라며 "한국 사람처럼 지원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비용 지원, 무상교육 등 한국 아이들이 당연히 받는 혜택에서 그들의 아이는 제외된다.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외국인 자녀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하는 곳은 서울과 경기, 인천, 경남, 경북 등 5곳이다. 이 5곳의 광역단체를 제외하고 자체적으로 보육료를 지원하는 기초자치단체는 15곳에 불과하다. 전국 226곳의 시군구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9곳의 자치단체가 보육료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
아내 굴나즈씨는 한국 문화와 교육을 사랑해 아이를 이곳에서 키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가 자동으로 미국 시민권을 얻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 태어난 그들의 아이는 '외국인'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 영주권을 꼭 받고 싶어요." 샤히드씨의 간절한 바람이 전해졌다. 그러나 그의 가족이 꿈꾸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여정은 아직 안개 속에 가려져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한 전문가도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를 강조한다.
성요셉노동자의집 김호철 사무국장은 "(이주노동자들이) 자녀와 배우자를 동반해서 가족이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뿌리를 내릴 것"이라며 "(한국인과 같은) 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주민 가정의 아이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며 "단순히 어린이집·유치원·학교를 다니는 것뿐만 아니라, 방과 후 교실 등 교육활동에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비닐하우스·컨테이너?…공공 기숙사·빈집 활용 대안
지난 몇 년 동안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이 사회적 문제로 제기됐다. 한 이주노동자는 최근에도 자신의 SNS에 폭설이 쌓여 기울어진 비닐하우스 지붕을 찍은 동영상을 올렸다. 이 비닐하우스 아래에 그의 컨테이너 숙소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월 45만 원을 내고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020년 8월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7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거실태조사에서 99.1%가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를 이용 중이며 그중 74%가 가설건축물(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내 조립식 패널) 형태의 숙소에서 주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사무국장은 "폐가 같은 곳에 구들장도 파여 있고, 난방도 제대로 안 되고,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곳도 있다"며 "컨테이너 숙소도 부지기수"라고 아직 개선되지 않는 현실을 강조했다.
이러한 현실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계절근로자에게 공공 기숙사를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2026년까지 전국 20개 지역에 기숙사가 건립된다. 전북 순창과 고창군에는 전국 최초의 계절근로자 기숙사가 완공됐다.
고창군이 빈 모텔을 리모델링해 만든 공공 기숙사는 이주노동자들의 안정적인 거주 공간이 되고 있다. 42개의 호실과 층별 화장실, 지하의 공용 샤워실과 식당을 갖췄다. 겨울철임에도 10여 명의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머물고 있다. 시설에 감탄한 이들은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국에 오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지난 7월 한국에 들어온 몬잔티(37)씨는 "건물이 엄청 깨끗하고 에어컨도 있고 난방도 있다"며 "화장실, 샤워실도 다 있으니 엄청 좋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노동자들은 좋지 않은 숙소에서 지냈다고 하는데, 여기 와서 깜짝 놀랐다"고 덧붙였다.
산산(28)씨 또한 "기회가 된다면 계속해서 오고 싶다"며 "캄보디아에서도 농사를 했기에 이 정도 일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자녀도 같이 데려오고 싶다"며 "교육도 한국에서 시키고 싶다"고 했다.
자치단체 관계자는 공공 기숙사 건립 사업은 1석 3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고창군 관계자는 "근로자들에게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며 "유휴시설을 리모델링 해 지역 경관을 개선하는 효과도 봤다"고 말했다.
빈집을 활용하는 움직임도 있다.
전북 완주군과 우석대 지역문제 중점 연구소는 학생들과 함께 완주군 삼례읍의 빈집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지역의 빈집 현황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파악해 활용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완주군은 이미 방치된 다가구 주택을 지역민과 대학생, 유학생, 이주노동자 등이 활용할 수 있도록 리모델링한 경험이 있다.
전국의 빈집은 8만 8866곳에 달한다. 전북 1만 3687곳, 경남 1만 613곳, 경북 1만 406곳, 전남 1만 399곳 순이다.
빈집과 폐교 등을 활용해 현재 계절근로자에게만 공급되고 있는 공공 기숙사를 다른 비자 소지자까지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설 교수 "2020년대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선진국"이라며 "꿈을 이루기 위해 찾아온 외국인 근로자에게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꽤 괜찮은 아파트를 지어서 제공해야 한다"며 "공짜가 아닌 월세를 받으며 주거지를 제공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농촌 지탱하는 이주노동자…"노동력 아닌 사람"
농어촌의 인구감소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농어업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러자 이주노동자들은 지역소멸 위기의 해결책으로 '지목'되고 있다. 동시에 이들을 '대체인력'이 아닌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지난 11월 28일 찾아간 전북 고창군의 한 쪽파 농장.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 모두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노동자였다. 이 농촌에서 일하는 99%가 이주노동자다. 한국인보다 이주노동자들을 더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전북대 설동훈 교수는 "총인구를 측정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한국인만 포함하는 주민등록 인구는 감소하고 있다"면서도 "외국인을 포함한 상주인구는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상주인구) 증가는 외국인 근로자의 도입 확대로 인한 것"이라며 "(이는 이주노동자가 노동력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는 것으로, 한국 사회와 경제의 필수적 요소가 됐다"고 부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농가는 크게 늘었다. 3~6개월 근로자의 경우 2010년 994가구에서 2020년 5983가구로 6배 증가했고, 6개월 이상 장기 근로자는 3487가구에서 1만 2092가구로 3.5배 늘어났다. 농업 분야의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는 가파르게 높아졌다.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269만여 명 가운데, 단순업무 종사자는 약 49만 7천 명이다. 한국계 중국인 8만여 명을 비롯해 베트남 7만여 명, 캄보디아 5만여 명 등이 한국 농어촌을 지탱하고 있다.
단순히 노동력으로 여겨졌던 이들은 우리 사회의 필수적 요소가 됐다. 이제 이들은 지역소멸을 극복할 유일한 해법으로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단순 노동력 수급이 아닌,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질 전반을 고려한 종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소멸의 해법으로 이주노동자를 바라보기 전에, 이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과 정책의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설 교수는 과거 코로나19 시기의 재난지원금을 예시로 언급했다. 그는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와 유학생, 난민들에게는 코로나19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이 땅에 영구 정착할 사람이 아니기에 차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 미국은 합법 체류하는 사람 모두에게 지급했다"며 "이 차이에서 우리의 복지 시스템이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주민의 인권 증진을 위해 일하는 한 활동가는 "이주노동자들 또한 사람"이라며 "이대로는 이들도 지역을 떠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주민친구 센터 송은정 센터장은 "정부가 고용허가제(E-9 비자)만으로는 노동력 부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지역특화비자, 계절노동자 비자 등 다양한 비자를 만들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는 이주민들을 노동력으로만 생각하고 끌어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주민들은 노동력이 아닌 사람"이라며 "이들도 우리처럼 태어나고, 성장하고, 가정을 꾸리고, 늙고, 아프고, 죽는 생애주기를 겪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종합적인 정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정부는 땜질 식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역소멸의 문제도 단순히 출산율 저하만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공공 인프라 부족과 의료·교육 격차가 심해지면서 사람들이 지역을 떠났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주민들도 같은 문제에 직면하면 지역을 떠날 것"이라고 우려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