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19일 6개 쟁점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기로 하면서 야당이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민주당은 당초 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맞대응 카드로 '탄핵'도 한때 검토했지만, 일단은 유보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헌법재판관 임명, 김건희 여사 특검법, 12.3 내란 사태 특검법 등에 대한 한 총리의 선택을 지켜보며 압박을 더할 전망이다.
결국 행사된 거부권…"선 넘지 말라"며 견제 나선 민주당
한 대행은 19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국회의 입법권과 입법 취지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지만 정부가 불가피하게 재의요구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며 6개 쟁점법안(국회법 개정안과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 농업 4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상정, 의결했다.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정부로서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의결해 오신 것에 대해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특히 농업 4법 같은 경우, 시장경제 원리라든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 부적절한 측면들이 있다"면서 거부권 행사 이유를 설명했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명백한 입법권 침해이다. 한덕수 대행은 내란 공범, 내란 대행으로 남으려고 하느냐"며 "한 권한대행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윤석열과 내란 세력의 꼭두각시 노릇이 아니라 민의를 따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도 서면브리핑에서 "마지막 경고다. 한 권한대행은 선을 넘지 말라"며 "한 권한대행에게서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며 거부권으로 국회를 무력화했던 윤석열이 겹쳐 보인다"고 힐난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그가 선출되지 않은 '권한대행'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는 데 있어 현상 유지에 주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핰다.
윤 대통령만 해도 이미 역대 이승만 전 대통령 다음으로 많은 거부권을 행사했음에도, 한 총리가 반성 없이 비슷한 기조를 이어간다며 비판 강도를 높이고 있다.
조 수석대변인은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현재 상황에 대한 평가를 했고, 상황이 매우 엄중한 국면으로 흐르고 있다고 보았다"며 "한 대행의 6개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헌법재판관 임명 지연, 수사 방해, 김건희 특검과 내란 특검에 대한 후속 거부권 행사로 이어지는 전조가 아닌가 하는 심각한 평가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론 헌법재판관 임명·특검법 등 앞두고 속내 복잡…인사청문·국조 차근차근 추진
다만 공개적인 비판과는 별개로, 민주당은 한 대행에 대한 탄핵을 당장은 추진하지 않을 전망이다. '연쇄 탄핵 추진'이라는 정치적 부담은 물론,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한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 그리고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이라는 중대한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먼저, 야당의 입장에선 이번에 거부권이 행사된 6개 쟁점법안보다는 특검법과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의 우선순위가 더 높다. 12.3 내란 사태에 대한 수사와 함께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 대행이 6개 쟁점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같은 권한으로 헌법재판관 임명도 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민주당 지도부 한 관계자는 한 대행에 대한 탄핵 추진 여부를 묻는 질문에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면 되겠나"라며 "거부권을 행사했으니 헌법재판관 임명은 당연히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거부권 행사 뒤 "마지막 경고"라며 "선을 넘지 말라"고 했는데, 이는 곧 민주당이 설정한 '레드라인'이 6개 쟁점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더욱이 한 대행에 대한 연쇄 탄핵을 추진할 경우 국정 안정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윤 대통령 탄핵이 마무리된 이후 집권을 할 가능성이 큰 민주당으로서는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민심 이반에 귀를 기울이게 될 수밖에 없다. 한 대행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당 의원들의 요구에 따라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등 비교적 소통이 가능한 인사라는 평가들도 나온다.
한 대행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윤 대통령 측에서 헌재에 헌법소원심판 등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점도 민주당에는 부담이다.
헌법에는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관련 내용이 별도로 없기 때문에, 탄핵소추에 필요한 의결정족수를 재적의원의 3분의 2(200명)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실제 탄핵을 추진하게 될 경우, 이와 같은 상황이 정당성 문제와 함께 제도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조 수석대변인은 이에 대해선 일단 "헌법과 법률에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 요건과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 요건이 있고, 권한대행에 대한 요건은 없다"며 "일반적인 탄핵 의결 정족수(재적의원 2분의 1, 150석)이 적용된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라고 반박했다.
때문에 민주당은 일단 12.3 내란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면서 이 과정에서 나온 사실관계를 통해 여권을 압박하고, 동시에 오는 23·24일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마친 뒤 한 대행에게 임명을 재차 촉구할 방침이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검토 기준을 가지고 심사숙고할 계획"이라며 "특검에 대해서는 1월 1일까지 기한이 있고, 헌법재판관 임명은 일단 청문회가 끝나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