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 폐광 후 줄잇는 복합산재 신청…신음하는 화순탄광 퇴직 광부들 ② 회복할 새 없이 수술·치료 반복하는 화순 폐광 광부들 ③ "법원 가서야" 화순 광부 80% 산재 불승인…수술·치료 하세월 ④ '위암'도 인정 탄광 산재…광부들은 몰랐다 (끝) |
"위염, 식도염, 십이지장염"…소화기 질환 달고 사는 광부들
화순광업소 막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광부들은 채굴 현장에서 급한 식사는 물론, 허리를 숙여 석탄을 캐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역류성 식도염과 소화 불량을 호소하는 일이 잦다.
2006년부터 화순광업소가 폐광할 때까지 17년 넘게 채굴 작업에 종사한 공병삼(55)씨는 퇴직 후 지금까지도 다량의 위염과 식도염 약을 복용한다.
공씨는 "석탄을 캐는 광부와 탄광 내부에서 일하는 지원 부서에서 일한 동료들도 식도염은 기본으로 갖고 있다"며 "현장 자체가 자연환경이라 변동성이 커 점심시간에 급히 밥을 먹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식사 공간도 석탄 분진 등 피해를 막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공씨는 "마스크를 껴도 분진과 먼지는 막을 수 없다"며 "밥을 먹기 위해 전등을 켜면 분진이 보이는데 사실상 그대로 노출된다"고 말했다.
비슷한 기간 동안 근무한 채탄부 소속 광부 김광현씨 등도 "현재 음식 섭취 등 식사할 때 문제가 있다"고 토로했다.
CBS노컷뉴스가 지난달 27일부터 2주 동안 실시한 '화순광업소 폐광 이후 광부·노동자 산재 실태조사' 결과 산재를 신청한 화순광업소 노동자 25명 중 절반이 넘는 15명(60%)이 '구토 증세, 섭식 장애, 소화불량'을 겪고 있다고 답변했다.
근로복지공단서 광부 '위암' 산재 인정…이례적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1월 강원 태백의 장성광업소에서 1988년부터 2011년까지 20여 년을 근무한 김문용(가명)씨의 위암을 질병 산업재해로 승인했다.
지금까지 광부들의 직업병은 진폐증 등 폐질환과 근골격계 질환이 대부분이었지만 소화계통 질환 산재 승인은 매우 이례적이다.
김씨는 지난 2015년 위암 판정을 받은 뒤 같은 해 암 절제 수술을 받았다. 이후 김씨는 2020년까지 추적 검사를 진행했다.
김씨는 마지막 병원 진료 3년 뒤인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에 자신의 위암을 산재로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김씨가 장기간 채탄과 보갱 등 업무를 수행해 다량의 석탄 분진, 석면, 결정형유리규산 등 유해물질을 흡입했다"며 "장기간 3교대 근무를 수행해 불규칙한 식사와 수면, 만성피로 등이 겹쳐 위암이 발병한 것"을 인정했다.
공단은 탄광에서 석탄과 분진에 섞인 결정형유리규산이 폐암을 유발하는 1급 발암물질은 물론 위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최근 연구 결과에 따라 광부들의 질병 산재로 인정했다고 설명한다.
"위암? 생각도 못했네요"…정작 광부들에겐 '금시초문'
그러나 소화계통 질환을 호소하며 위암 발병 등을 우려하는 대다수의 광부는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화순광업소에서 근무한 한 광부는 "함께 일한 동료 중 위암으로 수술을 받은 분들도 있다"며 "그럼에도 보통 위암은 산재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만난 화순광업소 채탄부 소속 산재 신청자 10명은 모두 "위암이 산재 신청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 듣는다"라고 답변했다.
강원 태백의 장성광업소 노동자의 위암을 산재로 승인받은 노무법인 이산 측은 "위암은 최근에서야 탄광 노동자의 직업병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화순광업소에서는 이와 관련해 산재를 신청하거나 승인받은 내역이 없다"고 말했다.
산재 전문가들은 위암의 산재 승인 사례를 두고 '소멸시효'를 넘기지 않아야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보험급여 소멸시효'에 따라 보험급여를 받을 권리는 3년 동안 행사가 가능하다.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손익찬 변호사는 "질병 산재의 소멸시효는 사고 산재와 달리 진료를 받을 때마다 계속 기산된다"고 설명했다.
위암 등은 주치의 소견으로 판정을 받은 지 수년이 지나도 추적검사 또는 약물치료로 인한 병원 진료가 이어질 수 있다.
손 변호사는 "위암 등 암 질환의 경우에는 수년 동안 추적검사·약물치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하기에 마지막 진료일이 3년이 넘지 않았다면 보상 급여 수령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산재 전문가 "광부, 폐질환처럼 소화계통 검사도 권고해야"
광부의 위암 산재 진단 사례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은 물론 탄광 노동자들에 대한 소화계통 질환 산재도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까지 정기 검사를 권고하는 수단으로는 근로복지공단에서 발급하는 진폐 검사 기록용 수첩이 있다.
'진폐 수첩'은 진폐의 예방과 진폐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발급되고 있다. 광부들은 해당 수첩을 소지하면 매년 1회 무료로 진폐 검사를 받을 수 있다.
화순광업소에서 근무했던 대다수가 진폐 검사를 받은 뒤 '진폐 수첩'에 이를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위암 등 다른 직업병에 대해서도 이 같은 수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노무법인 이산 산재보상센터 김정태 광주지사장은 "지금까지는 광부 산재의 초점이 진폐증이나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폐 관련으로 집중되어 있었다"며 "추적 검사도 위나 소화계통으로 권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도 탄광 근무와 위를 포함한 소화계통 질환의 연관성 연구는 적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며 "광업소 노동자들에게 위암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관련된 산재 승인 사례도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