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복 인천시장의 반복된 '말 바꾸기'가 인천 정치권을 정쟁으로 몰고 있다.
최근 12·3 내란 사태와 이재명 선고, 예산 확보 등 주요 현안을 둘러싸고 상반된 의견을 반복적으로 내면서 광역자치단체장과 보수여당의 중진 사이에서 '역할 갈등'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유정복 "국정 혼란, 민주당·이재명 때문"…인천시의회 극한 대립
19일 인천 정치권에 따르면 인천시의회는 최근 유정복 인천시장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문구를 놓고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들 간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발단은 유 시장이 지난 16일 SNS에 올린 글이었다. 유 시장은 "지금까지 정상적 국정운영이 불가능했던 것은 국회에서 탄핵을 일삼아 왔던 무소불위의 민주당과 당 대표 1인을 위한 계속된 의회 폭주 사태 때문"이라며 "국정을 혼란에 빠트렸던 중심에는 언제나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재명 대표의 국정협의체 구성 제안은 점령군처럼 국정을 접수하겠다는 얘기"라면서 "이제는 의회 폭거로 오늘의 사태를 야기한 야당과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에 대해 심판해야 할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과 이 대표를 겨냥해 '국정 혼란 책임론'을 제기한 것이다.
해당 글이 나오자 민주당 소속 인천시의원 10명은 다음 날인 지난 17일 인천시청사 내 유 시장의 집무실로 항의 방문해 사과를 요구했다.
민주당 소속 인천시의원들은 성명을 통해 "윤석열 탄핵을 외친 국민들의 노력을 단순한 정치적 술수로 치부하는 게 지자체장이 할 말이냐"며 "망언을 철회하고 시민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시정 운영에 집중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인천시당도 논평을 통해 "유 시장은 정쟁을 유발할 여력이 있으면 진심으로 민생에 주력하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국민의힘 소속 인천시의원들도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의 행동을 비판하면서 갈등은 더욱 증폭됐다. 국힘 인천시의원들은 "민주당 시의원들의 이번 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내년 회기부터 '실력행사'를 예고했다. 이와 함께 인천시의회 민주당 원내대표의 사퇴도 촉구했다.
인천시의회는 전체 의원 39명 가운데 국민의힘 소속이 25명, 민주당 12명, 무소속 2명으로 구성됐다. 국힘 소속 의원들이 과반수다.
국힘 인천시당도 논평을 내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이 항의 방문할 당시 유 시장은 인천상공회의소 등 지역 경제인들과 비상경제정책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며 "인천시 행정부의 업무를 방해하고 정치 선동에 나선 민주당 시의원들은 행정부와 인천시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탄핵 반대→찬성·尹 책임론→李 책임론"…국힘 시도지사협의회 '와해'
그동안 유 시장은 '12·3 내란 사태'를 두고 여러 차례 입장을 번복했다. 그는 내란 사태 다음 날인 지난 4일 자신의 SNS에 "국정혼란과 국민 불신을 가져온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매우 유감"이라고 입장을 밝혔다.이후 유 시장이 대표로 있는 국민의힘 시도지사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지난 4일과 6일 잇따라 입장문을 내며 윤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지난 4일에는 윤 대통령의 사과와 정국 안정대책 발표를, 6일에는 윤 대통령의 2선 후퇴와 책임총리가 이끄는 비상거국내각 구성을 각각 요구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유 시장은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이틀 전인 지난 12일에는 자신의 SNS에 "윤 대통령의 계엄선포로 인해 야기된 현 시국으로 국정은 마비되다시피한 혼돈의 상황"이라며 "사태를 일으킨 윤 대통령의 잘못 때문이고, 그 책임도 대통령이 져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대표로 있는 협의회가 아닌 인천시장의 입장이라면서 "탄핵만은 피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국회는 국민의 뜻을 존중해주길 바란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유 시장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인 지난 16일에는 "지금까지 정상적 국정운영이 불가능했던 것은 국회에서 탄핵을 일삼아 왔던 무소불위의 민주당과 당 대표 1인을 위한 계속된 의회 폭주 사태 때문"이라고 재차 입장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유 시장이 대표로 있던 협의회도 사실상 '와해' 수순을 밟게 됐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5일 자신의 SNS에 "중앙당 지도부가 탄핵소추의 책임을 지고 해체된 마당에 국힘 시도지사협의회도 해체할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 "시도지사 전체의 탄핵 반대 결의를 이틀도 지나지 않아 모임을 주도했던 회장인 인천시장과 서울시장이 다른 시·도지사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탄핵 찬성으로 번복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홍 시장은 "더 이상 국민의힘 시·도지사 모임의 이름으로 행동 하기가 어렵게 됐다"며 "유감이지만 각자가 그 지역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정치적인 견해는 개인이 각자 내는 것으로 정리하자"고 덧붙였다.
"인천발전 여야없다"…李 의원직 상실형 선고에 "사법부 응원" 뒤통수
유 시장의 입장 번복은 지난달에도 있었다. 그는 지난달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인천시-민주당 인천시당 당정협의회'를 연 뒤 자신의 SNS에 "오직 인천! 인천발전에 여야가 없다"며 "내년도 인천시 예산 확보를 위한 막바지 활동에 주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 시장은 당시 추경호 국힘 원내대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과 찍은 사진들을 공개했다.인천에는 지역구 14곳 가운데 윤상현(인천 동미추홀갑) 의원과 배준영(인천 중·옹진·강화)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모두 민주당 소속 의원이 선출됐다. 이 가운데는 이재명(인천 계양을)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박찬대(인천 연수갑) 원내대표, 맹성규 국토교통위원장(인천 남동갑) 등 민주당 주요인사가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유 시장은 민주당 인천시당과 당정협의회를 한지 9일 뒤인 지난달 16일 자신의 SNS에 "정치권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그들만의 이기주의와 탐욕에 빠져있기 때문에 나라를 분열과 갈등으로 내몰고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고 있다"며 "정치적 혼란과 국민 갈등을 해소하고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가 사법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좌도 우도 아니고, 보수도 진보도 아닌 오직 진실과 정의만을 강조해왔다"며 "유일한 희망이며 믿음인 사법부를 믿고 응원한다"고 강조했다.
이 글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다음 날 올라온 점에 비춰 이 대표에 대한 저격 글로 해석됐다. 인천 발전을 위해 이 대표를 포함한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적극 소통하겠다고 밝힌 지 열흘 만에 입장을 바꾼 셈이다.
당시 민주당 인천시당은 논평을 통해 "본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고려한 언사를 멈추고, 지지부진하고 방치된 시정에 먼저 집중하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인천시는 내년도 예산으로 국고보조금 5조8697억원을 확보했다. 올해 확보한 5조4851억원보다 3846억원(7%)이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인천시의 내년도 국고보조금 예산 증액 폭은 광주 4.4%, 부산 4.3%, 대전 4.1%, 경북 3.6% 경기 3.1%, 대구 2.4%, 경남 2.1%, 충북 2.0%, 전남 1.8%, 울산 0.47%, 강원 –1.2% 등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축에 속한다.
특히 올해 예산 심의가 증액 없이 감액만 반영한 '감액 예산안' 통과라는 유례없는 상황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결과다.
인천의 한 정치권 인사는 "유 시장이 여당의 중진이라는 당내 역할과 인천시장이라는 자치단체장 역할에 적합한 메시지를 SNS라는 한 창구에서 내보내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것으로 보인다"며 "인천시장으로서의 입장은 인천시 대변인으로, 당내 중진으로서의 소통 창구는 SNS로 하는 등 소통 창구 정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