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연기 보며 피식피식 웃은 건…" 김규태 감독 '트렁크'[EN:터뷰]


김규태 감독은 △아이리스(2009)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우리들의 블루스(2022) 등을 연출했다. 김규태 감독(오른쪽). 넷플릭스 제공

습관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나올 때면 혼자 피식피식 웃음을 짓는다. 넷플릭스 시리즈 '트렁크'를 연출한 김규태 감독의 해명(?)이다.

"예상치 못한 배우의 연기가 나오거나 연기가 흡족할 때 나도 모르게 웃게 돼요."

일종의 감탄이자 만족이다. 이러한 습관은 '트렁크'를 촬영할 때도 나왔다고 한다.

작품 속 한정원 역을 연기한 공유도 "감독님이 모니터 앞에서 시청자처럼 보다가 입 벌리고 킥킥 웃더라"고 귀띔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김규태 감독은 "공유가 모니터링을 하다 왜 웃냐고 물어보더라"며 "이 습관을 말하면서 서로 웃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 후 내가 어느 부분에서 웃는 지를 보는 재미가 있다고 하더라"며 "공유도 이 포인트를 감독이 굉장히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자신감을 갖고 그 부분을 계속 살려 나갔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을 웃게 만든 장면은 △클럽에서 샹들리에에 대한 트라우마로 불안한 심리를 드러낸 한정원의 모습 △작품 후반부 햄버거 가게에서 노인지(서현진)를 바라보던 한정원의 눈빛 △한정원과 노인지가 함께 탱고를 추는 장면 △녹화된 CCTV를 통해 노인지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본 한정원의 감정 등이다.

그는 "공유는 배우로서 타고난 센스가 있는 것 같다"며 "이 센스는 가르치거나 학습해서 되기보다도 본능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연기 잘하는 배우는 감독과 작가가 의도하는 대로 계산적으로 측정해서 감정을 전달하려고 한다. 가끔은 그 계산했던 것들이 (연출자에게) 들킬 때도 있다"며 "그런데 공유는 그냥 본능적으로 하는 것 같다"고 감탄했다.

"서현진 연기 짜릿…칸 가야겠다고 말했다" 웃음

김규태 감독은 노인지와 이서연(정윤하)의 인물에 빨강과 파랑을 의도적으로 대비시켰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트렁크'는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로 비밀스러운 기간제 결혼 서비스의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한정원과 노인지의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가는 미스터리 멜로물이다.

특히 결혼매칭업체 NM 직원인 노인지는 이서연(정윤하)의 의뢰로 한정원과 다섯 번째 기간제 결혼을 하게 된다. 이 같은 결혼은 노인지에게 있어 '직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처럼 쉽지 않은 노인지의 감정을 표현하는 서현진을 보며 김 감독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엄청난 완벽주의자더라"며 "작품 속 인물의 범위에서 완벽성을 추구하는 스타일이었다. 카약을 타는 것도, 탱고를 추는 것도 주변에서 잘한다고 말하는데 본인은 아니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소수자인 남편 서도하(이기우)의 갑작스러운 증발로 충격을 받은 노인지의 모습을 언급했다. 해당 신에는 노인지가 오열하며 고개를 숙였고, 이 과정에서 그의 경추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 감독은 "노인지의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식의 그림이 필요해 여러 가지를 상의하던 중에 서현진이 보여 준 것"이라며 "전위예술 같은 느낌이어서 짜릿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서도하가 떠난 이후 홀로 호숫가에 남아 있는 노인지의 피폐함과 고통에 대한 모습도 필요했는데 서현진의 멍한 눈빛을 보고 굉장한 쾌감을 느꼈다"며 "훨씬 절박하고 더 깊이 있게 표현하더라"고 감탄했다.

그러면서 "영상 언어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쉽지 않은 일"이라며 "그래서 칸 가야 할 거 같다고 얘기했다"고 웃었다.

"인물간 미묘한 심리 전달"…한정원 집 그리고 호수

김규태 감독은 작품 속 복잡한 인물 심리를 전달하고 싶어 전체적인 분위기를 불편하면서도 낯설고 어둡게 표현했다고 했다. 이 때문에 한정원의 침실도 더 차가운 톤으로 설정했다고 전했다. 넷플릭스 제공

김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인물 간의 미묘한 심리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특히 한정원과 노인지의 관계에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작품이 한 살인사건을 뚫는 사건적인 미스터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며 "형체는 보이지만, 명확하게 그 본질을 꿰뚫어 볼 수가 없어 자꾸만 들여다볼 수밖에 없도록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인물에 대한) 이해와 공감도가 점점 쌓이게 되면서 시청자들이 극 중 인물과 결합하길 바랐다"며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던 한정원과 노인지가 점차 회복하고 살아남는 과정을 응원하게 되는 패턴으로 이어지길 기대했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이러한 미묘한 심리를 표현하는 장치로 한정원의 집을 언급했다.

그는 "곡선이 주는 어떤 부드러움이나 따듯함보다는 차가움과 폐쇄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며 "거대한 샹들리에와 나선형 계단, 원형 기둥 등을 통해 묘하게 뒤틀려 있거나 옭매여 있는 느낌을 전달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한정원의 집. 넷플릭스 제공

특히 그는 샹들리에가 주는 상징성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폭력적인 아버지(김은석) 밑에서 자란 한정원에게 샹들리에는 감시의 존재이자, 어머니의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직접적인 매개체여서다.

김 감독은 "미적인 부분에서 감탄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폭력성 또한 존재해야 했다"며 "외형적인 이미지와 의도했던 심상이 결합되는 형태로 나와야 했기에 재질감과 형태에 대해 고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인지의 공간도 설명했다. 그는 "노인지 자신만의 공간은 호수였던 것 같다"며 "서도하의 집은 본인의 장소가 아닌 껍데기로만 있는 외로운 공간이다 보니 노인지는 호수를 통해 평안을 찾았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려한 트렁크 제작 역시 난이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원작 소설에서 트렁크가 에르메스, 샤넬 등과 같은 고가 명품 브랜드로 설정돼 있다 보니 시청자들을 납득시키는 게 중요했다"며 "다행히 클래식한 형태와 문양, 색을 계속 변형하면서 설득력 있는 이미지가 나왔던 거 같다"고 밝혔다.

"엘리베이터 장면 고민 많았어…음악이 힌트"

한정원과 노인지가 부부가 되면서 잠옷 의상도 신경썼다고 한다. 그는 "의상팀이 배우 스타일리스트하고 협의 과정을 거쳤다. 특정적인 신만큼은 정확하게 의상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고 떠올렸다. 넷플릭스 제공

김 감독은 촬영하면서 유독 까다로웠던 장면으로 1화 말미에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신을 꼽았다.

그는 "배우들의 안전도 그렇고, 현장감 살리는 걸 감안했을 때도 동선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떨어지는 샹들리에와 이를 막으려는 노인지의 모습을 교차하는 방법을 썼다"며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한정원을 보호해 주는 느낌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노인지와 이서연이 제대로 맞붙은 엘리베이터 안 다투는 장면에 대해선 "실제 공사장 엘리베이터에서 촬영할 건지 아니면 CG 작업에 의해 세트장에서 촬영할 건지 여러 의견이 나왔다"며 "결과적으로 실제 공사장에서 찍게 됐지만, 걱정을 많이 한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배우들에게는 공사장 소음과, 덜컥거리는 엘리베이터로 인해 연기하는데 쉽지 않은 환경이었을 것"이라며 "안전하게 잘 끝낼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시간 안에 잘 촬영했다"고 덧붙였다.

김규태 감독. 넷플릭스 제공

김 감독은 끝으로 음악을 의도해 배치했다고 강조했다.

"정원의 트라우마를 이야기할 때 신경을 거슬리게 하거나 끼익하는 느낌의 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과거와 현재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타이밍에선 신시사이저를 통한 템포감이 있는 음악을 배치하려 했죠. 시제적인 모호한 부분에 대한 힌트를 (음악을 통해) 주려고 했어요."

이어 "연출자들이 시청자들에게 감정적인 힘을 전달하기 위해서 음악으로 주도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 작품도 그런 부분을 적절하게 또 과감하게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트렁크'는 공개 2주차 41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 (비영어) 부문 3위를 기록했다.

브라질, 이집트, 홍콩, 인도, 싱가포르, 나이지리아, 아랍에미리트 등 41개국 톱10에도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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