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특하다", "대견하다"?…'어린 친구'들이 가르치고 '어른'은 배웠다

'12·3 내란사태'가 발생한 지 8일째인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많은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지난 3일부터 이어졌던 내란정국 속 단연 주목된 건 응원봉을 흔드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적극적인 참여였다.
 
시민 움직임을 사실상 주도한 이들로 인해, 그간 청소년과 청년들이 목소리를 낼 때마다 이들을 '기특하고' '대견하게' 여기거나 '어린 친구들이…'라고 바라보던 사회적 시선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미래세대 아닌 현재의 시민으로서'

한 참석자가 든 응원봉에 '탄핵'이라는 글자가 붙어있다. 김정남 기자

"바로 어제 기말고사 치고 온 중학교 1학년입니다. 제가 사회 기말고사 과목은 망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회는 살려야겠어서 여기 서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20살이 정치에 대해 뭘 아냐'고,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삶과 인생을 그르치지 말라'고. 하지만 저희는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더 이상 따를 수 없는 세대입니다."
 
"우리의 아픈 과거가 왜 반복돼야 합니까?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투쟁과 집회로 국민들의 수많은 피로 이루어졌다는 걸 잊지 말고 그 정신 유지합시다."
 
응원봉이 수놓은 대전 은하수네거리에 청소년과 청년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간관계상 다 오르지 못할 정도로 발언을 희망하는 이들이 많았다.
 
매일 은하수네거리에서 대전시민대회를 준비한 윤석열 정권 퇴진 대전운동본부의 신윤실 상황실장은 "젊은 세대들이니까 말을 되게 좀 귀엽게, 그리고 신세대 같은 말로 하지 않을까라는 것도 '어른'들의 편견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목을 끌되 재기발랄함에 그치지 않고 깊이 있고 묵직한 발언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신 상황실장은 "우리의 일상을 지키고 안전과 생명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 나서자고 호소하는 모습에 저희 준비하는 팀들도 굉장히 공감하고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응원봉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대전시민대회 참석자들. 김정남 기자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 든 한 피켓에는 '청소년은 미래세대가 아니라 현재의 시민'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모집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를 막는 청소년 시국선언'에는 4만9052명의 청소년이 참여했다. 시국선언에서 대독된 청소년 의견 가운데는 "학교가 우리에게 가르쳤다. 왜 군사독재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지, 왜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하는지, 소수자에게 연대하고 인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나갈 줄 알아야 하는지. 그러나 글로 읽기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지식은 얼마나 무용한가", "아무도 뽑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한 청소년이 성인이 된다고 제대로 뽑고, 알고,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등이 있었다.
 
지음의 활동가는 "청소년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해주는 시국선언이 존재함에 매우 기쁘다", "우리는 마냥 어리고, 미숙하고, 기특하고 대견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의견 또한 전하며, "청소년이 타인의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한, 조직화 된 공적 공간의 부재와 제도적으로 청소년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회를 이제는 바꿔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안기기도 했다.
 

동등하게 또 동반자로…

민주동문회와 재학생이 함께한 시국선언. 김정남 기자

지난 13일 대전에서 열린 시국선언에는 '졸업생'과 '재학생'이 함께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에 동참한 졸업생들이 중심이 된 대학별 민주동문회 구성원들과 현 재학생들이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시국선언에 참석한 목원대 이해천 학생은 "이제 선배님들이 만들어주신 민주주의가 가득한 세상을, 역사가 바로 선 세상을 저희도 함께 만들어가보려 한다. 역사의 주인으로서 이 사회 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목소리 내보려 한다"고 말했다.
 
목원대 민주동문회 윤덕중 회장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축적해온 민주주의의 성과들을 끊임없이 (청소년·청년 세대가) 삶 속에서 체화하고 있었고 다만 그것이 겉으로 표현되지 못했고 또는 경쟁사회 등의 세태에 짓눌려있었을 뿐"이라며, "계기가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민주주의를 외치고 평화와 통일을 외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고 있던 세대이고 그것이 분출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튜브 갈무리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 유튜브 클립에는 '나이 60에 새로운 노래 외우기 힘들지만 힘내서 싸우렵니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 아래에는 '전 막 50… 배우러 왔어요'라는 답글이, 또 '멋져요 저희도 민중가요 열심히 배워가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민중가요 외우고 있어요~ 어떤 노래든 소리 내서 함께 불러요'라는 화답이 이어졌다. 응원봉 문화에 대해 '어린 친구'들이 가르치고, '어른'들은 배우고 동참하는 움직임도 활발했다.
 
윤석열 정권 퇴진 대전운동본부의 신윤실 상황실장은 "예전에는 거리로 나와 주먹을 들고 격하게 시위를 하는 형태였다면 본인들이 할 수 있는 형태, 응원봉이라든지 축제처럼 즐기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과정이 또 젊은 친구들만 신나는 과정이 아니라 기성세대와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서로의 노래도 교류하는 그런 과정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래세대가 아닌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동반자로서의 모습이 이번 집회 과정에서 뚜렷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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