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의 나라 노르웨이.오슬로시의 ''''바이킹선 박물관''''에서 바이킹시대의 배를 볼 수 있었다. 1,0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온 바이킹 배를 직접 대하는 감회가 컸다. 바이킹은 ''강 하구에 머무르면서 통과하는 배를 습격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800-1000년경 유럽에서 북미까지 광범위하게 원정을 나가 침략을 거듭한 집단이다.
박물관에는 온전한 배 2척과 골격만 드러난 1척이 전시되어 있다. 이처럼 바이킹 시대의 배가 온전히 보존된 데는 당시 순장 풍습에 의해 배와 함께 순장품에 대해 고령토로 진공 · 밀폐처리를 완벽하게 했기 때문이다. 1904년 바이킹 시대 배가 처음 발견되었다고 하니, 이런 보존 방법이 없었다면 후대 사람들은 영원히 진품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박물관의 바이킹 배 3척은 온전한 형태를 간직한 오세버그 배와 곡스타드 배, 그리고 골조만 남은 투네 배이다. 앞의 이름은 발견된 지명을 딴 것이다.
전함인 곡스타드 배는 길이 24미터로 가장 큰 규모이며 노 젓는 구멍이 18개이다. 이 배는 완벽한 유선형으로 미적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뿐만 아니라 바이킹 배의 특징인 브이자형 배 밑바닥의 날렵함이 잘 드러나 있다. 시속 64킬로미터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이 배는 ''''치고 빠지기''''에 알맞게 건조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전함도 이런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울돌목의 밧줄에 일본 배가 걸렸을 때 맥을 못추고 수장되었던 것이다. 반면 거북선은 바닥이 평평하게 건조되었다.
투네 배는 뼈대만 남아 있지만 바이킹 배 건조방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바이킹 키는 155cm
#프람호 박물관: 탐험가 난센
노르웨이는 바이킹의 후예답게 난센과 아문센처럼 탐험가들이 존재한다. 8월 23일, 오슬로시에 있는 프람호 박물관을 방문했다. 프람호 박물관에는 북극 해류를 연구하기 위해 제작한 항아리 모양의 배 프람호가 전시되어 있다. ''''전진''''이라는 의미의 프람호는 길이 39미터, 물건을 가득 실었을 때 800톤이나 되는 배다.
그 뒤 아문센은 프람호를 인수해 1911년 12월 남극점을 가장 먼저 밟는 영광을 누렸다.
난센의 북극 탐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오슬로 국립대 박노자 교수는 자신의 저서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에서 이렇게 평한다. ''''난센의 본의는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세계를 앞서가는 바이킹 영웅들의 후예, 강력하고 용감한 노르웨이인''''이라는, 자기도취적인 민족주의를 은근히 조장하고 있던 노르웨이 언론자본들에게 세계신기록을 세운 대탐험의 기회였다. 다른 나라 사람보다 먼저 최북단에 우리의 깃발은 꽂은 난센은 신생 노르웨이 민족주의의 최고 역할 모델이 되었다.''''
노르웨이는 오랜 식민지배를 받아온 역사를 지녀 우리처럼 민족의식이 강하다. 노르웨이는 덴마크에 이어 스웨덴의 식민 지배를 받아오다 1905년에 독립을 하였다.
바이킹 하면 해적질하던 야만인으로 생각해왔던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바이킹이 지방의회의 선구자''''라는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바이킹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다. 그는 자신의 저서 <민주주의>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노르웨이 스테인셰르라는 가까운 마을에서는 바이킹 자유인들이 약 6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노르웨이어로 팅(Ting)으로 불리는 재판회의를 가졌던 커다란 돌로 구성된 배 모양의 바위군을 볼 수 있다. 900년까지 자유 바이킹들의 의회들은 트론드헤임 지방뿐만 아니라 스칸디나비아의 다른 많은 지방에서도 결성되었다. 팅으로 불리는 재판회의는 대개 커다란 입석에 의해 표시되는 공개된 들판에서 이루어졌다. 바이킹들은 자유인들에게 적용되었던 평등의 논리를 기반으로 그들의 회의체를 고안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기원 하면 그리스 · 로마만 떠올렸는데, 이와는 별개로 바이킹이 민주적 전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웠다.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아시아에는 오히려 서구보다 훨씬 더 이전에 인권사상이 있었고, 민주주의와 상통한 사상의 뿌리가 있었습니다."라고 강조했듯이, 우리가 서구민주주의에 대해 지나친 숭배를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