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달 야당이 단독 처리한 6개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떠오르면서, 더불어민주당이 대응책을 두고 고심에 빠졌다.
민주당은 국정 안정을 위해 한 대행에 대한 탄핵 추진을 일단 하지 않기로 한 상황이지만, 그가 실제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에는 이를 정치적으로 견제하면서도 국정 혼란을 막고 이재명 대표의 대권 행보까지 추진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
거부권 행사 여부 결정해야 하는 한덕수…與는 "거부권 행사", 野는 "직무대행이란 점 강조"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 대행은 오는 19일이나 20일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6개 쟁점법안(국회법 개정안과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 농업 4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앞서 농림축산식품부와 기획재정부는 이미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들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고,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도 지난 13일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바 있다. 거부권 행사 시한은 오는 21일까지다.
다만 한 대행은 당초 17일 정례 국무회의에서 법안 재의요구안을 상정·심의·의결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다가, 숙고할 시간을 며칠 더 버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가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탄핵 정국 속에서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의 협조를 얻기 요원해질 전망이어서다.
야당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을 '적극적인 권한 행사'로 보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이날 원내대책회의 뒤 "한 대행이 '직무대행'이라는 점을 강조하겠다. 선택적 거부권 행사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며 "한 대행은 내란 과정에서 너무 소극적인 (반대) 역할을 하거나, 적극적으로 공모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혹의 당사자이다. 국정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현명한 판단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지난 15일 "거부권 행사는 여야 간의 정책적이고 정치적 입장 차이가 반영된 것이기에, 어느 한 쪽을 거부한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적 편향일 수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거부권 행사하면…대응은 해야 하고, 탄핵하자니 국정 혼란·민심 이반 우려의 '딜레마'
다만 한 대행이 실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아직 있는 만큼, 민주당도 이에 대한 방책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곧장 한 대행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기에는 국정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정치적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또다시 탄핵을 추진한다면, 윤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 뒤 국정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도 상당한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도 15일 "이 대표는 "너무 많은 탄핵은 국정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일단은 탄핵 절차를 밟지 않기로 했다"고 말한 바 있다.
때문에 민주당은 '국정 혼선'을 막아내면서도 한 대행을 정치적으로 견제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 견제 방안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탄핵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윤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 이 대표가 대권 주자로서 부상하고 있는데, 중도 확장이 필요한 상황에서 민주당은 입법 공세를 벌이는 정당성과 명분을 국민들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놓고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아직 공식적인 단위에서 대응책을 논의하지는 않았다"며 "이 대표의 대권 행보를 염두해서 무조건 타협하거나 무조건 강경책으로 간다는 식의 노선이 있을 수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당내에서 뾰족한 해답이 아직 나오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조만간 결단을 내려야 하는 국무총리실은 여야간 협의 쪽에 보다 방점을 두는 분위기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거부권 행사에 대한 질문에 "가장 좋은 것은 국정안정을 위한 협의체가 이뤄지고, 거기에서 충분히 논의가 돼서 방향을 정하는 것"이라며 "21일이 시한이기 때문에 그 전에 협의체가 꾸려져서 충분히 논의가 되면 아주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