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국정 운영을 주도권을 둘러싼 여야의 양면 압박 속에서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한 대행 측은 그간 해왔던 '당정협의회' 채널을 선호하는 여당과, '국정안정협의체'를 요구하는 야당 사이에서 분명하게 선을 긋지 않고 국회에 공을 넘긴 상태다.
17일 국무회의에 야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6개 쟁점 법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해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여부에 관한 공식적 판단을 보류한 것 역시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으로 풀이된다.
野 '국정안정협의체', 與는 거부…정부 "여야 협의"에 공 넘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에 관한 탄핵소추안 의결 이후 국정 혼란을 정비하자는 취지에서 국회와 정부가 함께하는 국정안정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한 대행은 이후 우원식 국회의장과의 접견에서도 이에 관한 요청이 언급되자 "여야·정부가 협조해 조속히 국정 안정이 이뤄지길 기대한다"며 "정부가 먼저 협조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여당은 이러한 협의체 제안을 거부한 상태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에 즉각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며 "고위당정 또는 실무당정협의 등을 통해 윤석열정부 임기 끝까지 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한 대행을 예방한 자리에서도 조속한 당정 협의 재개 등을 요청했다.
여야가 각기 다른 형태의 협의 채널과 방식을 요구하는 가운데, 정부는 우선 원론적인 입장을 취하며 사실상 여야에 공을 넘겼다.
정부 관계자는 "국회 내에서 여야 협의가 진행되면 정부가 언제든 참여해 함께 국정을 의논해 나가겠다는 뜻"이라며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여야의 뜻을 토대로 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정부 국정 운영 기조의 단절 여부를 포함한 한 대행 체제의 방향성을 둘러싸고 여야 모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만큼, 신중한 모양새를 보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양곡법 등 6개 법안 거부권 여부도 우선 보류…"끝까지 여야 의견 듣겠다"
한 대행이 17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주재하는 첫 정기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과 국회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하고, 따라서 거부권 행사에 대한 공식적인 판단을 보류한 것 역시 이와 같은 취지로 해석된다.일각에선 한 총리가 당장 이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섰지만, 우선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다.
한 대행은 우 의장과 접견에서도 "정부의 모든 판단 기준을 헌법과 법률, 국가의 미래에 두겠다"고 밝혔는데, 그간 한 대행이 총리로서 밝혀 온 양곡법 등에 관한 입장을 고려한다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12·3 내란 사태' 이후 급강하한 국민 신뢰 문제를 비롯해, 거부권 행사를 '적극적인 권한 행사'로 해석하고 비판하는 야당의 견해를 고려하면 무작정 거부권을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 대표는 "거부권 행사는 여야 간의 정책적이고 정치적 입장 차이가 반영된 것이기에 그 어느 한쪽을 거부한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적 편향일 수가 있다"고 했다. 따라서 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시 탄핵 카드가 다시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총리실 관계자는 법안 상정 보류에 관해 "충분한 숙고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가 미래를 위해 모든 판단을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한이 남아있는 한 정부가 국회와 소통하려고 한다"며 "마지막까지 여야 의견을 들은 다음, 이번 주중 재의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