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변론준비기일을 12월 27일 금요일 오후 2시로 지정한다. 이 사건을 탄핵심판 사건 중 최우선으로 심리한다."
헌법재판소가 '12·3 내란사태' 등으로 탄핵소추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심리에 본격 착수했다. 헌재는 오는 27일 오후 2시 윤 대통령 탄핵심판 첫 변론준비기일을 열겠다는 입장과 함께 변론준비기일에서 검찰, 경찰 등의 수사 기록을 조기에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말 그대로 '준비절차'…복잡한 쟁점·증거 미리 정리
17일 헌재 등에 따르면 변론준비기일은 본격적인 변론에서 심리를 집중적,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명(受命)재판관의 주재로 열리는 변론의 예행 절차다. 말 그대로 '준비절차'인 셈이다. 수명재판관은 준비절차를 이끌면서 변론에 앞서 당사자들의 주장과 증거, 쟁점 등을 미리 선별, 정리하고 압축한다.
변론준비절차는 ①사건을 준비절차에 회부하기로 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②그 준비절차를 주재할 수명재판관을 구체적으로 지정하는 재판장의 명령으로 개시된다.
변론준비기일은 수명재판관의 지휘 아래 진행되고, 수명재판관은 변론준비기일에서 발언을 허용하거나 금지할 수도 있다. 석명권을 행사하고 석명처분을 할 수도 있으며, 일단 종결했던 변론준비절차 재개를 명할 수도 있다.
헌재가 신속히 검·경의 수사기록을 확보하겠다고 밝힌 점도 관심사다. 헌재가 의지를 밝힌 만큼 변론준비기일에서 증거 확보에 심혈을 기울일 것으로 보이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수사기관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과거 '국정농단'을 수사하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심판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에 관련 수사 기록을 제공하는 방안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수사 기록을 제공해 진행 중인 수사 상황이 노출되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헌재가 수사 기록 확보에 난항을 겪을 수는 있지만,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수사 기록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위법적인 행위라는 것을 판단하는 데 크게 문제가 없다는 이유다.
헌법연구관을 지낸 한 법조인은 개인 의견을 전제로 "지금까지 나온 국회에서의 군 사령관이나 지휘관들의 진술 내용들, TV 영상 화면에서의 대통령담화문 내용으로도 위헌적이고, 위법적이라는 게 여실히 드러나 있다"고 말했다.
朴 탄핵 때는? 변론준비기일 3차례 열려…40분 만에 끝나기도
헌재가 예고한 변론준비기일은 복잡한 사건에서 쟁점과 증거를 사전에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경우 주로 활용된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의 경우 3차례의 변론준비기일이 열렸다. 지난 2016년 12월 22일 열린 1차 변론준비기일은 박 전 대통령이 불출석한 채 40분 만에 끝났다. 헌재는 이날 기일에서 탄핵소추 사유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등 비선조직의 국정농단에 따른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 △대통령의 권한 남용 등 5가지 유형으로 정리하고, 양측은 대통령의 파면 사유를 증명하거나 반박할 증인을 각각 28명 혹은 4명씩 신청한 뒤 기일을 마무리했다.
5일 뒤 열린 2차 변론준비기일에는 국회 측과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이 관계기관 사실조회 신청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박 전 대통령 측은 탄핵사유의 객관성이 부족하다며 문화체육관광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 국민연금, 삼성, 대검찰청 등 16개 기관의 사실조회를 요청하며 사실상 '시간끌기'에 나섰고, 국회 측은 이에 맞섰다.
이어 3일 뒤 열린 3차 변론준비기일에서 박 전 대통령 측은 3만2천페이지가 넘는 최씨 등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을 검토하는 데 일주일 이상이 걸린다며 1차 변론기일 연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편 변론준비기일을 반드시 열 필요는 없다. 세 차례에 걸쳐 변론준비기일이 열린 박 전 대통령과 달리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는 변론준비기일이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