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온 국민의 평온한 밤에 계엄 폭탄을 던진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만에 탄핵됐다. 첫 탄핵 표결이 좌절된 후 여당 대표와 국무총리가 내란죄 피의자에 대해 '질서있는 퇴진'이란 궤변을 주장하는가 하면, 윤 대통령은 스스로 절대 물러날 생각이 없음을 밝혀 온 국민의 속을 답답케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연일 용산 대통령실과 국회,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범죄자 처단을 촉구했고, 내란에 가담하거나 방조한 인사들은 줄줄이 전말을 실토하고 있다. 마침내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기까지 숨 막혔던 11일을 짚어봤다.
계엄 선포에 뜬눈으로 지새운 밤…6시간 만에 해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10시 15분쯤 긴급 브리핑을 통해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에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를 비롯해 언론·출판·집회 등에 대한 금지 및 통제가 담겼다. 파업 의료인이 48시간 내 복귀하지 않을 시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계엄 선포 직후 야권 의원들은 긴급하게 국회로 집결했고, 우원식 국회의장은 계엄군을 피해 담을 넘어 국회로 진입했다. 국회로 진입하려는 계엄군과 국회 보좌관 등 관계자들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이 펼쳐졌다.
4일 새벽 1시쯤 국회는 재석 190명, 찬석 190명 만장일치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 의원 18명도 표결에 참여했다. 계엄 선포 약 2시간30분 만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새벽 4시 30분이 다 돼서야 "국무회의를 통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해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투입된 계엄군이 철수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퇴장한 국민의힘 105명…'내란' 尹 탄핵 실패 '충격'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계엄 선포 직후엔 "위헌·위법한 계엄 선포"라고 일갈했지만, 이튿날부턴 다소 입장이 바뀌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론이 빗발치는 가운데 모호한 입장을 유지하던 한 대표는 결국 7일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하는 것으로 당론을 정했다.
반쪽이 텅 빈 국회에서 야권 의원들은 국민의힘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표결 참여를 호소했다. 같은 시각 국회 앞에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던 시민들도 본회의장 현장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애타게 국민의힘 의원들을 불렀다. 그러나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만 표결에 참여했다.
이튿날인 8일 한 대표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질서있는 퇴진'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을 탄핵 시키기보단 조기 퇴진 로드맵을 마련하고, 대신 여당과 한 총리가 국정운영을 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방안은 전혀 법적 근거가 없고 위헌적 행위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란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2선 퇴진'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듯 곧바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사의를 수용하며 인사권을 행사했다.
국민의힘엔 '내란의힘' '국민의적' 등 내란 동조자라는 비난이 쏠리며 당 해체 요구가 빗발쳤다. 평소 개혁적 성향으로 당과 대통령에 대한 소신발언으로 지지를 받아온 김재섭 의원 등 젊은 의원들의 지역구 사무실은 시민들의 분노로 초토화됐다.
터져 나오는 내란죄 고발…검·경 수사 각축전
12·3 내란 사태 당일 대통령의 내란에 자발적으로 혹은 얼떨결에 가담하거나 방조한 관계자들의 참담한 고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은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후 "이번 기회에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하라"며 "국정원에도 대공수사권을 줄 테니 우선 방첩사를 도와 지원하라. 자금이면 자금, 인력이면 인력 무조건 도우라"는 말을 들었다고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증언했다.
국회 국방위원회에 나온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의결 정족수가 아직 다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계엄 당시 국회에 투입됐던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707특수임무단의 김현태(대령) 단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비슷한 증언을 했다. 김 단장은 "1~2분 간격으로 (곽종근 사령관에게) 전화가 왔고, '국회의원이 (의사당 안에) 150명을 넘으면 안 된다고 한다. 끌어낼 수 있겠느냐'는 뉘앙스였다"고 밝혔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계엄 발령 3시간 전에 안가에서 관련 지시사항을 전달받았고, 윤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막기 위해 6차례 전화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고 체포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증언했다.
탄핵 실패 이후 더 빠르게 수사 시계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한 김용현 국방장관은 8일 새벽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로 자진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김 장관은 10일 구속됐다.
같은 날(10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특수단)은 조 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내란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현직 경찰청장이 체포된 첫 사례다.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까지 가세해 조직의 명운을 걸고 수사 각축전을 벌이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도 가까워지고 있다.
내란 사태 11일 만에 탄핵…드디어 대통령 직무 정지
지난 12일 12·3 내란사태 이후 두 번째 담화를 발표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조치는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 행위"라며 '내란 혐의'에 반박했다. 한동훈 대표는 "사실상 내란을 자백하는 취지의 내용이었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탄핵으로 입장을 공식 전환했다.
반면 친윤계인 권성동 신임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14일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다시 당론으로 정했다. 1차 탄핵 투표에서처럼 집단 퇴장하지 않고 표결엔 참석하지만 여전히 윤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재적의원 300명 중 찬성 204명 반대 85명 기권 3명으로 통과됐다. 12·3 내란 사태 발생 11일 만에 범죄 피의자의 국정운영을 멈출 수 있게 됐다.